빨간 제비 모양의 우체국 마크가 달린 모자와 외투를 입고, 마찬가지로 우체국 로고가 박힌 트럭을 몰고 다니며 “택배왔습니다”를 외치는 이들. 흔히 알려진 ‘우체국 택배’의 모습이다. “민간 업체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고 약간 비싸지만 정확하고 믿을 만한 서비스”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다만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집배원인지, 택배기사인지” 헷갈려하는 소비자들도 왕왕 있다.
29일 경향신문의 유튜브 채널 <이런경향-와플>은 우체국 위탁 택배 종사원 윤중현씨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윤중현씨의 하루는 해도 뜨지 않은 오전 4시30분부터 시작된다. 간단한 세수를 마치고 인천 부평구의 물류센터로 출근하면 끝없는 박스의 행렬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두시간여에 걸쳐 크기도 모양도 각양각색인 상자들을 차곡차곡 트럭에 싣고 난 뒤 시동을 걸면, ‘뛰고 오르고 내리고 나르고 배달하는’ 본격적인 노동의 하루가 막을 올린다.
오래된 단독주택이 밀집한 인천 미추홀구의 한 동네가 윤씨의 배달 구역이다. 지난 5년간 수천번도 더 오간 골목을 손금 들여다보듯 하는 그이지만 차량 속도는 절대로 20㎞를 넘기는 법이 없다. “골목골목, 차 사이사이마다 사람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확인하면서 운전을 하죠.” 이날 그의 차량에 실린 박스는 총 168개다. 배달 시간을 지키려면 2~3분에 한 집 꼴로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집배원이냐는 오해는 수도 없이 받아봤다. “일단 외모(복장)부터 집배원 외모다 보니 대부분의 분들은 집배원이라고 생각을 하시죠.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분들이 ‘편지 보낼 때 어떻게 보내냐’고 물어보시는 일도 굉장히 많아요.”
현실은 딴판이다. 윤씨는 집배원도 아니고, 우체국과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도 않다. 윤씨 같은 위탁 택배원은 우정사업본부의 자회사인 우체국물류지원단과 계약을 맺는다. 등기 소포를 정규직 집배원들과 나누어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우체국이 ‘갑’이라면 윤씨는 ‘병’ 정도에 놓여 있는 하청 관계다. 그래서 직업 안정성은 굉장히 취약하다. 2년 단위로 개인사업자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객 민원이 발생해 주의·경고가 누적되면 계약이 해지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나마 최근 생긴 노조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독소조항”이라며 항의해 개선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안정성만 놓고 보면 공무원 신분의 집배원보다는 민간 택배기사에 더 가깝다.
구역 특성상 연식이 오랜 빌라에 사는 고객이 많다. 무거운 짐을 지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덧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래도 윤씨는 좀처럼 우체국 마크가 찍힌 겉옷과 모자를 벗는 법이 없었다. 윤씨의 설명이다. “위탁택배원이라도 국가공무원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계약서에 쓰여 있거든요. 우편법의 적용도 받고요. 그러다 보니 (우체국을 상징하는) 옷을 벗을 수 없고 여름에는 더워도 반바지를 못 입어요” 의무는 공무원 규정에 따르지만 혜택은 그렇지 못한 아이러니다.
“서비스 품질을 높이라는 요구가 저희한테도 내려와요. 서비스 품질이라는 게 뭔가요. 한사람 한사람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기분 좋게 해 드리라는 건데,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 감정노동까지 요구하면 많이 힘들죠.” 간혹 적적한 노인들이 “말동무 잠깐 해 달라”며 손을 잡아끄는 일도 있다. 고객들의 “감사합니다” 반가운 인사를 뒤로 하고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이런경향-와플>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