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야말로 ‘아이돌 덕질’의 민낯을 볼 수 있는 때다. ‘덕후들의 축제날’이기 때문이다. 4월 13일 뉴이스트 콘서트장을 취재했다. 뉴이스트 동호 팬이자 경향신문 사내 덕질 1인자인 네오 기자(가명)가 콘서트장을 간다고 해서다. 네오 기자는 재작년 팬미팅부터 지난해 국내 콘서트 3번, 대만 콘서트 1번 등 이번이 아홉 번째 콘서트다. 이번 콘서트는 뉴이스트 멤버 5명이 다 모인 첫번째 콘서트로 4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3일간 3회 열렸다. 네오 기자는 이번에 ‘올콘’했다. ‘올콘’은 열리는 모든 콘서트를 다 간다는 뜻이다. 이번 콘서트는 13만원. 금토일 ‘올콘’을 하면 39만원이다. 같은 가수의 콘서트를 여러 번 가는 이유는 뭘까. “부모님은 ‘뭐하러 3일치 다 가느냐’ 이야기하시는데 세트가 매일 바뀌고 노래 구성도 다르고 무대 연출도 다르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요.”
[영상]“굿즈는 소속사에 화력을 보여주려는 거죠” | 이슈파이 ‘덕질학개론-이론편①’
‘올콘’하는 이유
콘서트를 온다고 해서 공연만 즐기고 끝은 아니다. 네오 기자가 콘서트에 오면 ‘할 일’을 정리했다.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준비물이 필요하다. 먼저 복장. 네오 기자는 검정색 후드티를 입고 나타났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는 ‘동호’인데 왼쪽 가슴에 타투가 있어요. ‘포기하지 말자’는 뜻의 라틴어인데요. (그 글씨로) 팬들이 자수로 새겨서 만든 후드티예요.” 그 다음은 슬로건. ‘끝까지 강동호’, ‘서로가 서로에게 천국’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슬로건을 공연 동안 머리 위로 흔들면 글씨가 빛에 반사돼 가수가 그 글귀를 읽을 수 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너를 좋아하는 팬들이 이렇게 많이 왔다’ 알려주려는 거예요. 보통 공연장에서는 한 손에 슬로건 들고 또 한 손에 응원봉을 들거든요. 멀리서 보면 반사가 돼요. 반사되는 소재에서 ‘강동호’ 이름 보이면 (가수가) ‘내 팬들이 왔구나’ 생각하게 되겠죠. 응원하고 팬들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소품이에요.”
네오 기자가 콘서트를 즐기는 순서대로 따라가봤다. 먼저 ‘러브 존’에서 소속사가 팬들에게 주는 포토카드와 엽서를 받았다. 포토카드를 받으려면 당일 콘서트 티켓과 공식 팬클럽 가입 카드,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 하루에 한 번만 배부하기 때문에 이같은 확인 절차를 거친다. 네오 기자는 이날 ‘민현’, ‘아론’의 포토카드가 나왔다. 금요일 콘서트에서는 동호와 아론을 뽑았는데 5명 멤버 모두의 카드를 모으기 위해 일요일 콘서트에서 포토카드를 한 번 더 뽑은 후에 교환할 계획이다. ‘러브 존’에는 포카를 교환하려는 ‘러브’(뉴이스트 팬들을 가리키는 이름)들로 가득했다. “민현이 구해요”, “아론이 구해요”라고 서로 필요한 것을 말하면 갖고 있는 사람이 교환해주는 구조다.
‘러브 존’ 옆에는 ‘롤링 캡슐’이 있다. ‘가챠 돌린다’고 표현하는 뽑기다. ‘러브’를 상징하는 색인 분홍색, 초록색 뽑기통에 ‘키링’이 나온다. “저는 오늘 네 번을 돌릴 작정입니다. 어제 한 번 줄섰는데 멤버가 5명이라 5명 모으려면 4번을 서야 돼요. 횟수 제한은 없는데 줄을 계속 서면 힘드니까요.” 첫번째 줄 설 때 옆에 같이 섰다. 한 번 줄이 줄어드는게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15분 정도. “오늘은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편이에요.” 그러나 두 번째까지 줄을 같이 서고는 비켜섰다. 계속 서 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네오 기자는 힘든 기색 없이 계속 줄을 섰다.
‘가챠 돌리기’가 끝나자 공식 굿즈 판매 부스로 갔다. 그러나 이미 살 만한 것들은 다 매진. 안타까워하던 차에 주변에서 빨간색 ‘백호상자’를 발견했다. 백호는 네오 기자가 좋아하는 멤버 동호의 다른 이름이다. ‘백호상자’는 굿즈를 무료로 나눌 수 있는 상자였다. “포토카드, 스티커 양심 있게 조금만 집었습니다.” 그리고 네오 기자는 엽서에 이렇게 적었다. ‘언제나 행복을 주는 동호에게. 항상 고마워요 노래해줘서. 언제까지나 무대 밑 객석에 있을게요. -WZ 2019. 4. 13’
어떤 점 때문에 네오 기자는 덕질에 빠졌을까.
“같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게 좋아요. 가수랑 팬이랑 같이 커가는 느낌요. 애를 키우는 책임감과 유사한 감정을 느껴요. (팬들이 아이돌을) ‘내 새끼’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 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될 때가 있어요. 더 잘해주고 싶고 이런 무대에 서는 게 꿈이라고 하면 설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거죠.”
보통 아이돌 팬덤이라 하면 ‘유사 연애 감정’으로 여겨진다. 네오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래봤자 걔가 너 봐주는게 아닌데 왜 좋아하냐.’ 연애 감정으로 오해하는 게 있어요. 사실 실제 많은 덕후들의 감정에는 거리가 있어요. 어떤 미친 사람이 연예인이랑 사귀려고 덕질을 하나요.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니까 덕질을 해요. 지금은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가페적이고 헌신적 사랑이예요(웃음). 에로스가 아닙니다(웃음).”
오후 4시. 콘서트 시각(6시)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덕메’를 만날 시간. ‘실친(실제친구)’이었지만 같이 덕질하며 ‘덕메’가 됐다. 덕메는 ‘뉴이스트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용이다. “3701 숫자는 ‘러브’라는 뜻인데요. 팬클럽 이름이 러브여서. 로고에 맞춰서 자수를 의뢰해서 사제로 만든 굿즈입니다. 인터넷 통해 업체에 의뢰했는데 디자인도 예쁘게 나와서 만족하며 쓰고 있어요. 약간 일코용인데 비공식 같은 공식 숫자죠. 팬 굿즈인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요.” 일코는 언제 하냐고 물었다. “좋아하는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다른 (아이돌) 팬인 사람이랑 취향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일상 생활에선 최대한 숨겨요.”
오후 5시가 넘자 콘서트장에 본격 입장하기 시작했다.
들어가기 직전 네오 기자는 떨린다면서 망원경을 꺼냈다. “제가 공연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되고요. ‘오늘도 잘해야 할 텐데’ 이런 기분요. 자리가 좀 멀다 보니까 망원경이 있고 없고 차이가 좀 있어요. 저는 그냥 들어가서 무대를 보면서 영점을 잡아야 하니까 여기선 쓸모가 없고.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가보겠다’는 네오 기자의 등이 당당했다. 콘서트가 끝난 뒤 29일 뉴이스트가 컴백했다. 네오 기자는 말했다. “보통 월요일 컴백해서 그주부터 활동 시작하거든요. 콘서트 끝나자마자 컴백 티저가 멤버별로 뜰 거고 사전 앨범 공동구매 절차 나올 거고 여러가지 바쁠 겁니다. 덕질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바쁘고…”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덕질은 조건 없는 사랑”
콘서트는 안 가고 콘텐츠로만 즐기는 사람, 콘서트만 가는 사람, 콘서트도 가고 노동도 해야 하는 사람. ‘덕질’의 농도(?)도 팬마다 다르다.
최유미씨(28·가명)는 워너원을 좋아하게 되면서 국내 콘서트, 팬미팅부터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소속사에서 만드는 공식 굿즈를 빠짐없이 샀다. 그 다음은 ‘노동.’ 앨범이 나오기 전에 스밍을 통해 음원 사이트에 ‘차트인’을 시켜야 한다.
“앨범 나오기 전에는 (팬들끼리) ‘어떻게 해야 순위권에 진입할 수 있을까’ 방이 생겨서 회의도 하고 전략도 짜요. ‘음총팀(음원총공팀·팬클럽 내에서 스트리밍 목록을 짜주는 팀)’에서 내려온 지령(?)이 있는데요. 트랙 리스트를 정리해서 공유하고 다운은 몇시에 하라고 공유를 합니다. (곡을 한 시간 내내 들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만 곡이 카운팅되기 때문에 한 시간에 몇 번 들어갈 수 있게 공유하는 거예요.”
덕질을 하면서 소비 규모가 크게 늘었다. 밝힐 수 없는 금액을 썼지만 행복하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소비 행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비싼 스피커를 모으거나 오래된 LP를 수집하는 것과 다른 행위일까. 최씨는 ‘덕질’을 ‘일’로 연결시켰다. ‘덕업일치’다. “제가 덕질하는 게 소문이 났고 사내에서 공모전이 열렸는데 제 아이디어가 채택됐어요. 대전에서 일하다가 서울 본사에서 제 아이디어로 한번 시작해보자 해서 올라오게 됐습니다.” 신사업의 내용을 묻자 ‘비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돌 관련한 신사업이라고만 적어주세요.” 덕업일치의 비결은 “덕질에 온마음을 다해서”라고 했다. “정성을 가져야죠. ‘얘네가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정말 제 모든 것을 걸었어요.”
덕질과 현업을 연결했기 때문에 자랑스럽기도 하다. “다들 저보고 제 최애(가장 좋아하는 아이돌)가 저를 살렸다고 해요. 그애에게 인생 바쳐야 한다고요. 고등학교 때 동방신기를 좋아할 때는 숨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덕질을 하는 걸 왜 숨겨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숨길 수가 없어요. 너무 좋아서 더 떠들고 싶으니까요.” 물론 부모님은 ‘미쳤다’고 하신다. “워너원 마지막 콘서트표 양도가가 1400만원으로 거래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저희 부모님이 ‘너 4번 다 가는데 한 번만 가고 나머지 표 팔면 차도 뽑겠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럴 수 없어요. 제가 가지 않은 콘서트가 ‘레전드’란 말이에요.”
최씨는 해외 콘서트도 21시간 만에 다녀왔다. 오전 9시에 비행기를 타서 오후 3시에 현지 공항에 도착, 바로 콘서트장으로 이동해 오후 6시 콘서트를 보고 다시 밤 12시에 비행기를 탄 후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 강행군이라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덕질의 ‘효능감’은 뭘까. “취미를 갖고 취미에 미친 것이 저는 덕질이라고 생각해요. 이 덕질이 사랑이 없으면 되질 않아요. 제가 아이돌에게 이렇게 한다고 해서 아이돌이 저한테 뭘 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내 최애가 잘 됐으면 좋겠고 좋아서 이것저것 해주고 싶고.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