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붕괴의 기억, 대형 참사는 ‘사회적 구성물’이 와해돼 일어난다

손아람 작가

성수대교

강북에서 바라본 성수대교.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고 있다. 1994년 10월21일 아침 붕괴 참사가 발생해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1997년 다시 다리를 세웠고, 이후 왕복 8차선으로 확장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강북에서 바라본 성수대교.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고 있다. 1994년 10월21일 아침 붕괴 참사가 발생해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1997년 다시 다리를 세웠고, 이후 왕복 8차선으로 확장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영화 <벌새>의 배경은 1990년대 초반이다. 대한민국은 벌새의 근면성실이 절대규범인 개발도상국 시대를 지나는 중이고, 중학생 은희는 이 사회적 정상성의 규범 앞에 끊임없이 순종을 요구받는다. 그런 어느날 갑자기 성수대교가 무너진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면 애초부터 아무것도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벗어난 ‘선진국’ 시대의 눈으로 보아도 25년 전의 영화 속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다. 영화와 현실 사이의 시간 간격은 1990년대를 묘사하기 위해 쓰인 소품들이 아니라, 무너진 다리를 담아낸 화면을 볼 때 느껴지는 차분한 마음의 거리로 다가왔다. 나는 영화 속 은희와 동년배다.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일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도 충격적인 재난 실화를 용기있게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얼마나 드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고통을 직시하거나 비평의 단서로 삼을 수 있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장례식장에서 용납되는 표현의 범위가 극히 제한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비극과의 충분한 거리를 자가 아닌 달력으로 어림잡지만, 그때가 오면 다른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2000년대에 태어난 지금의 중학생들에게, 영화 <벌새> 속에서 허리가 끊긴 성수대교의 모습은 어떤 느낌일까? 문법이 뒤틀린 문장처럼 그저 터무니없게 보일 뿐인지도 모른다. 폭파된 한강대교가 피란민과 함께 재로 변해 피어오르는 사진을 봤을 때 내 첫인상이 그랬다. 시간이 흐르면 사회적 기억은 역사책에 수록될 자료로 천천히 밀려난다. 사진의 채도와 함께 기억도 물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불에 타오르던 용산참사 사건 망루도 겪었던 과정이다. 그것은 20대였던 내 눈에 비친 이 사회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지난 10년간 같은 사진을 들고 학생들과 띄엄띄엄 만났다. 모두가 비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진이 일부만 알아보는 사진이 되었고, 들어는 봤지만 보는 건 처음이라는 아이들이 늘어나며 교실의 구성은 바뀌어갔다. 그 아이들도 언젠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컴컴한 바다의 표면이 반쯤 집어삼킨 선박 사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감정은 모두가 똑같이 공유할 수 없지만 머리로는 이해되는 사실들이 있다. 사람이 죽었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모든 일이 태엽시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고, 고장난 부품을 바꿔 끼우듯이 오류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다리를 만든 시공사? 현장을 통솔한 관리인? 공사를 감독한 공무원? 안전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행정기관? 그들 모두? 그들 모두에게 결과를 예견할 만한 기회가 있었나? 크고 작은 개별적인 실수와 소홀함이 쌓여서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엄청난 참사를 만들어냈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건 정당한 일일까? 그중 누군가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정상 작동 않는 사회 충격 재난
성수대교 붕괴 책임 범위 혼란
‘과실범의 공동정범’ 요건 확대
당시 이례적이고 파격적 판결
“법이 사람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 ‘위’에 있지 않다는 사례”

법원은 성수대교 사건 판결에서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이론을 내세웠다. 각 단계에서의 과실이 성수대교가 붕괴한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합쳐져 다리가 붕괴했다면 관련자들이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수대교를 비롯해 1990년대에 연달아 일어난 대형 참사를 다루면서 법원은 이 입장을 확립했다. 다음해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가깝게는 세월호 침몰 사건의 판결문에서도 이 법리를 발견할 수 있다.

뉴스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종휘 변호사 역시 <벌새>의 은희처럼 10대 소년이었다. 이제 그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아침과 퇴근하는 밤마다 성수대교를 건넌다. 공교롭게도 그는 2016년 참여연대를 대리하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고발장을 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사건 때문에 역대 처음으로 임기 중 행위에 대한 ‘공동정범’으로서 30년이 넘는 형량을 선고받은 대통령이 되었다. 성수대교 사건에 적용된 ‘과실범의 공동정범’ 이론의 의의를 묻기에 더 적당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관련자 각각에게 분명히 과실은 있었지만, 성수대교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그중 무엇인지 입증하기는 어려웠죠. 모두 무죄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사안이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의 주관적 요건을 크게 확대한 매우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것이었죠. 학계에서는 자신의 과실을 넘어서는 타인의 과실까지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실범의 공동정범 이론을 비판하던 법학자들도 판결의 결과는 수긍했다는 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결과는 그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거죠. 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이 그렇게 확대될 수 있다면, 정치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법과 정책의 핵심적인 목표예요. 대형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의 한계는 존재할 수 없고, 사실상 법으로 그 한계를 설정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김종휘 변호사의 이 대답은 전문가로서 내놓는 법률적인 의견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가진 정치적인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언제나 공평하거나 기계적이지 않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사회적 참사에 있어 정치 권력이 감수하는 책임의 한계는 명백히 존재했고, 법은 보통 사람을 과감하게 공동정범으로 지목할 때와는 달리 훨씬 까다롭고 섬세하게 적용되었다.

용산 등 대형 참사 판결 논거
농성자도 공동정범으로 처벌
검찰의 화염병 논증 논쟁거리
세월호 판결도 같은 법리 발견
대통령·선장 부작위는 다른가
생명 못 지킨 책임 소재 가려야

용산참사 사건의 화재 현장에 있었던 농성자들도 공동정범으로 처벌을 받았다. 화재는 망루 안에서 일어났고, 누구도 발화점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검찰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이 휘발성 연료에 불을 붙였다고 추정했다. 누가 화염병을 던졌는지, 어떤 화염병에서 불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농성에 관여한 사람 모두가 공동정범으로, 공동으로 사람을 죽인 피의자로 간주되었다. 이날 사고로 여섯 명의 농성자와 한 명의 경찰이 죽었지만, 검찰이 주장한 것은 죽은 경찰에 대한 책임뿐이었다. 모든 농성자의 공동 책임이 된 어떤 화염병 하나가, 같은 공간에서 경찰 한 명은 죽이고 농성자 여섯 명은 죽이지 않은 셈이 되어버렸다. 농성자들을 공동정범으로 엮어 처벌하기 위해 검찰이 무리하게 구성한 화염병 논증은 아직까지도 논쟁거리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공동정범>이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강바닥으로 떨어져나간 성수대교 상판에서 소방대원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강바닥으로 떨어져나간 성수대교 상판에서 소방대원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형 참사는 수많은 블록으로 이뤄진 사회적 구성물이 와해되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납득할 만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반드시 물어야만 한다. 법적 책임의 추상적인 확장은 공공의 안전과 공공의 감정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므로 명백한 정치성을 띠게 된다. 마법의 화염병을 창조해낸 이 주관적 확장의 인과 고리는 공공의 권력까지는 좀처럼 수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사고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정치적인 이유로 빠른 진압을 밀어붙인 경찰 지휘권자는 용산참사에 책임이 없었는가? 성수대교의 균열을 미리 보고받고도 가리기에 급급했던 서울시 고위직 공무원들은? 세월호 사건 당시 구조 자원의 효과적인 동원을 명령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반나절 동안 은둔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부작위는 구조를 일찌감치 포기했던 세월호 선장의 부작위와 완전히 다른가? 더 멀리 나아가서,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했던 계엄군의 지휘권자는 왜 살인의 공동정범이 아닌가? 법원의 증거불충분 판단을 뒤집으려는 사람들은 40년 가까이 발포 명령을 내린 이름을 찾아 헤매고 있다. 손가락으로 명확한 지점을 가리킬 수 없는 건 똑같아도, 군대의 발포는 성수대교를 무너뜨린 안일함이나 시위대의 손을 떠난 화염병과는 다른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떤 차이가 있기라도 한 걸까? M16 소총에서 튀어나온 탄환은 너무 빨라서,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공동정범의 그물마저 구멍을 뚫고 지나가는가?

내가 성수대교를 걸어서 건널 용기를 낸 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한강의 모든 다리 가운데 가장 안전하게 복구했다고는 들었지만 차를 타고 건너기도 내키지 않던 다리였다. 상류와 하류 양쪽을 조망할 수 있는 한강의 굽은 길목에 놓인 성수대교 위 서울 전망은 매우 아름다웠고, 수십년 전 허리가 끊겼던 경간 근처에는 잠시 묵념하고 갈 비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제야 다리를 단순히 복구한 게 아니라 완전히 재건축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말 못할 의심과 두려움이 내 마음속에만 몰래 숨어 있던 것은 아니다. 붕괴 전까지 하루 평균 10만대가 넘던 성수대교의 교통량은 다리를 재개통하고 나서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성수대교가 원래의 교통량을 회복한 때는 재개통 후 무려 10년이 지나서였다. 우리의 기억이 충분이 희석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희미해진 곳에 벌어지는 일들이 달력처럼 반복되었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고, 책임을 묻는 질문이 쏟아지고, 공동정범의 명단에 올라갈 이름들이 금세 가려졌다. 명단이 지나치게 가혹한 기준에 따라 작성되지는 않았는지를 논하는 것은 법률가들의 몫이다. 내 궁금함은 그 반대쪽 방향에 있다. 이 명단의 길이는 충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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