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좌 소양강·우 북한강, 상 일터·하 거주지의 경계에 선 ‘사랑의 다리’

손아람 작가

춘천 소양2교

춘천 시민은 물론 전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인 소양2교는 여러 개념들의 경계에 놓여 있다. 다리 좌우로 강의 이름은 소양강에서 북한강으로 바뀌고, 다리 상하로는 주민들의 일터와 거주지가 갈린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춘천 시민은 물론 전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인 소양2교는 여러 개념들의 경계에 놓여 있다. 다리 좌우로 강의 이름은 소양강에서 북한강으로 바뀌고, 다리 상하로는 주민들의 일터와 거주지가 갈린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춘천 가는 기차’, 김현철)

기차를 혼자 타는 건 너무 쓸쓸한 일이다. 특히 경춘선처럼 역사적인 데이트 철로라면. 이 노선 위로 새로 도입된 고속열차는 아예 ‘청춘열차’로 명명되었을 정도니까. 가수 김현철이 ‘춘천 가는 기차’에서 떠올린 추억은 내 부모님의 추억이자 그 추억의 소산인 나의 추억이며, 적어도 수십만의 커플이 공유하는 추억이기도 하다. 지금도 경춘선 종착지인 춘천역에는 풋풋하게 사랑을 시작하는 젊은 연인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추억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들은 주택가 골목 사이마다 숨어있는 아늑한 카페들을 찾거나, 의외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한약방에서 새어나오는 생강차 향기에 붙들리거나, 재래시장의 베트남 상인이 말아 내놓는 쌀국수 국물에 마음을 빼앗길 준비를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도시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물가를 향해 걷게 된다.

물의 기운은 일년 내내 춘천에 스며 있다. 호수에서 피어오른 습한 물안개가 구릉을 타고 오르는 날과 수면 위로 맑은 하늘이 내려앉는 날이 교대하고, 어느새 닥친 맹렬한 눈보라가 누그러지면 도시는 봄비로 축축하게 젖는다. 많은 이들이 봄을 떠올리지만 춘천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의암호는 물결 무늬를 머금은 채로 얼어붙고,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은신한 중도의 자작나무 숲은 금속처럼 반짝거린다. 엽서로 박제해두고 싶은 고요한 정경 앞에 연인들은 얼어붙은 듯이 걸음을 멈춘다. 드문드문 강가에 버려진 나룻배들 위로 이끼가 자라나 있다. 분위기에 취해 강의 저편을 향해 무작정 걷다가는 탈진할 수도 있다. 한강의 두 지류가 도시의 옆구리에 걸려 있지만 물 위로 놓인 다리는 많지 않다. 춘천에서 강을 건넌다는 것은 때로 수십킬로미터를 돌아간다는 뜻이다. 나룻배의 노를 과감히 집어들 수도 있겠지만, 연인들은 대개 도심에서 가까운 소양2교를 건너게 된다. 이 다리는 여러 개념들의 경계에 놓여 있다. 다리의 좌우로 강의 이름은 소양강에서 북한강으로 바뀌고, 다리 상하로는 주민들의 일터와 거주지가 갈린다. 오후 내내 돌아다닌 연인들 역시 다리를 건너 먹자골목에 진입하기 전에는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저녁의 문제는 춘천을 방문한 모든 여행자들의 마음을 한번씩은 심란하게 만든다. 철판에 볶은 닭갈비냐, 숯불에 구운 닭갈비냐.

춘천은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이며 세련된 정취 ‘매력’
연인들·예술가들·실연한 예술가 등 세 부류의 사람들 불러들여

물의 도시 춘천을 감도는 세련된 정취는 한 세기 동안 세 종류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연인들, 예술가들, 연인 사이의 문제에 사로잡힌 예술가들. ‘소양강처녀’의 작사가 반야월은 세번째 부류였다. 국민가요의 탄생을 기리는 소양강처녀상은 소양2교 남단에 세워져 있지만, 그가 이곳을 방문했던 때는 다리가 준공되기 한참 전이었다. 쪽배를 빌려 탔던 그의 시야에 해 저문 소양강, 외로운 갈대밭,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 사이로 조용히 노를 젓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 담겼다. 그 순간 반야월은 모던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긴 해도 어쨌든 한국의 클래식이라 부를 만한 여성상을 떠올려냈다.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을. 노랫말 속 소양강처녀는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는’ 님의 맹세를 기다리는 중인데, 문자 그대로라면 이것은 춘천에 야자 열매가 열릴 때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비극적인 상황이다. 춘천은 동백꽃이 개화하는 북방한계선 위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아마 작사의 의도는 아니었을 테고, 춘천을 배경으로 하는 또 하나의 전설적 연애담인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을 염두에 둔 구절로 보인다. 동백꽃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산 출신이었던 반야월은 몰랐을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에 언급되는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의 방언이었다.

춘천을 배경으로 한 ‘소양강처녀’와 ‘동백꽃’은 국가대표급 사랑 이야기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은 전통적 연애 서사의 두 극단으로 갈라선다. ‘동백꽃’의 점순이는 소양강처녀처럼 약속의 시점이 도래할 때까지 소극적인 자세로 남자를 기다릴 인내심이 없다. 대신 마음에 둔 남자를 동백꽃이 핀 숲속으로 먼저 끌고가서 넘어뜨려 버린다. 이렇게.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동백꽃’, 김유정)

김유정 ‘동백꽃’·반야월 ‘소양강처녀’의 전통 연애 서사 극과 극
사랑의 본질은 불변…작가에 허용된 발언 범위는 시대 따라 변해
조작한 사회적 개념들을 얼마나 관대하게 수용하느냐와 관련

김유정이 여성인물에 부여한 주체성과 능동성, 여성을 향한 사회적 압력을 연인 사이의 문제로 쉽게 환원시키지 않는 균형감각은 시대를 앞서나간 문학적 미덕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여성인물들은 탁월한 안목보다 억압된 성적 욕망에서 기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대 내내 범죄적인 구애 행각을 일삼았던 김유정은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한 채 스물아홉의 나이에 요절했다. 늘 깊은 우울에 잠겨 있고 말까지 더듬는 그의 모습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테고, 그로 인해 우울함은 한층 깊어졌던 것 같다. 1936년 김유정은 교양잡지 ‘여성’의 특집란에 <그분들의 결혼 플랜 -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의 남성편을 맡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좀 더 적절할는지 모릅니다. 늘 주위의 인물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없는 우울을 낳습니다.” 자신과 똑같이 우울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김유정의 자학적인 어조에 비해, 박봉자가 쓴 바로 옆장의 여성편은 트위터로 옮겨도 무방할 만큼 경쾌하게 읽힌다. “일해보겠다는 마음이 앞선 까닭인지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귓등으로 듣지 않았고, 부모님이나 오빠가 상대를 정해놓으시고 결혼하라고 말씀한 적도 여러번이었으나 굳이 마다하고 듣지 않았지요.”

1997년 준공한 소양2교는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아치 형태로 디자인했다. 부근에 소양강처녀상과 노래비, 쏘가리동상 등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준공한 소양2교는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아치 형태로 디자인했다. 부근에 소양강처녀상과 노래비, 쏘가리동상 등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스스로 밝힌 이상형인 ‘우울한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박봉자의 당당한 태도는 김유정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날 이후 김유정은 박봉자에게 구애 편지를 30통 넘게 연달아 보냈다. 답장은 한 통도 돌아오지 않았다. 광기 어린 구애가 그게 처음은 아니었다. 스무살 때 처음 본 판소리 명창 박녹주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3년 동안, 김유정은 연모의 감정을 죽이겠다는 협박과 피로 쓴 편지와 흉기 시위로 표현했다. 그러나 박녹주의 급소를 제대로 노린 공격은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피하는 거냐?”며 윤리적 잣대를 들이댄 질문이었다. 훗날 박녹주는 까딱 잘못하면 자신이 돈에 좌우되는 천한 여자로 여겨질 것 같아서 두려웠다고 술회한다. 현대적인 개념으로는 ‘가스라이팅’이었던 셈이다. 한 세기 늦게 태어났으면 김유정의 문학적 성취는 한 줌 재로 산화하고 말았을 것이다.

실연의 고통 속에서 붕괴한 김유정은 춘천으로 내려와 골방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자신이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환상의 여인’이 등장하는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들을 써내려간다. 이른 봄이면 생강나무꽃이 화사하게 피는 춘천 남쪽 실레마을에 위치한 김유정전시관의 벽면은 후대 문인들의 경배와 찬미의 헌사로 도배되어 있지만, 모퉁이 한쪽의 영상자료 속 박녹주의 장난기 어린 한마디처럼 정곡을 찌르는 문장은 없는 듯하다. “그이가 그렇게 훌륭한 소설가일 줄 알았더라면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게 해줄 것을 그랬지?”

사랑 이야기가 세상을 앞질러나간 적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야기는 그 시대의 다른 이야기를 앞지를 수 있을 뿐, 언제나 세상을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간격이 크게 벌어지고 관계가 형편없이 어그러진 때조차, 두 연인 사이의 감정은 전적으로 그 세계의 구조만큼 불평등하거나 비대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착취하거나 속일 수는 있어도, 소유하거나 빼앗을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니까. 심지어 현대적인 이론으로 중무장한 두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감정은 평등하게 교환할 수 있는 자원이 되지 못한다. 권력을 독식한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은 사랑하는 여성 때문에 전전긍긍하거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한 적이 정말로 없었을까? 수평적 관계맺기를 아예 모르는 남성에게 마음을 다 열어줄 여성이 과연 있었을까? 조선시대라고 모든 여성이 정조 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기만 했을까?

사랑의 본질은 절대로 변하지 않지만, 사랑에 대해 쓰는 작가에게 허용된 발언 범위는 시대를 따라 변한다. 이것은 작가가 재능을 한껏 발휘해 조작하는 사회적 개념이 얼마나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지와 관련이 있다. 소양강처녀의 등 뒤로 피고 지던 동백꽃이 점순이가 감자 캐던 실레마을의 생강나무 숲을 거쳐 가상의 도시 옹산까지 내려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보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여성인물 동백이는 김유정이 한때 그랬듯 집착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소양강처녀처럼 때가 되면 돌아오겠다는 정분의 맹세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성춘향과 이몽룡 이래 사랑 이야기 속에서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낡은 억압은 물론 여성을 감각적인 욕망의 주체로만 축소하는 현대적인 시도마저 가뿐하게 넘어서 버린다. 그런데도 여전히,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잘만 작동하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은 현실처럼 느껴지는 환상이 아니다. 환상으로 각색된 현실에 가깝다. 이야기가 진짜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순간이다.

작가는 형이하학적 세계에 서툴러 공상의 언어 통해 발전시켜와
사랑의 형식적 가능성 제약, 경험 아닌 공상 통해 전파될 수밖에

젊은 연인들은 두 손을 맞잡고 소양2교를 건넌다. 손을 잡는 것은 하나의 관습이다.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거나, 잠자리를 함께하거나, 정반대로 영원히 하겠다는 말로 쓰인 언약을 맺거나, 증명의 양식은 그때그때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어느 시대에나 똑같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감정이 사회적으로 발명되거나 약속되었을 리는 없다. 우리 시대 연인들의 연애 경험은 무경험자였던 김유정보다는 당연히 숙련되어 있을 테고, 어쩌면 ‘소양강처녀’의 작사가 반야월보다 성숙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작가들이 형이하학의 세계에 서툴기에 공상의 언어를 발전시킨 패배자에 불과하다 해도, 사랑의 형식적 가능성을 제한하는 당대의 관념은 언제나 그러한 공상을 통해 전파될 수밖에 없다. 경험으로 다 깨우치기에는 불행하게도 젊음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와인의 맛을 일본만화로 배운 소믈리에처럼 허무맹랑한 자세로 사랑에 임하게 된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작가들이 제안했던 목록에서 바람직한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을 분류해 나간다.

하지만 수십 번, 수백 번을 사랑에 빠진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누구나 조금씩은 사랑에 관한 타인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중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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