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어 훔치기까지 하는 신문…지금도 있다, 옥천에

옥천 | 김민아 선임기자

어느 지역신문의 ‘힘’

창간 30주년을 맞은 충북의 지역주간신문 ‘옥천신문’은 ‘주민 퍼스트’ ‘현장에 간다’는 원칙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은 옥천신문 1월31일자 1면.

창간 30주년을 맞은 충북의 지역주간신문 ‘옥천신문’은 ‘주민 퍼스트’ ‘현장에 간다’는 원칙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은 옥천신문 1월31일자 1면.

뉴스란 무엇일까.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수백 명이 격리되거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갈등을 빚거나, 보수야당 대표가 특정 지역 출마를 두고 이리저리 재는 것…만 뉴스일까. 초등학교 앞에 횡단보도가 없거나, 지역 시내버스업체가 서비스 개선을 게을리하는 건? 해마다 열리는 포도·복숭아축제나, 주민들의 친목 윷놀이 행사는? ‘옥천신문’의 황민호 제작실장(45)은 “이 모든 것이 뉴스”라고 말한다.

충북 옥천군에서 발행되는 지역주간 옥천신문은 특별하다. 220여명의 군민(郡民)주주를 모아 창간된 옥천신문은 사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신문으로 승부한다. 광고 의존도 역시 낮다. 구독료는 한 달에 1만원, 1부에 2500원꼴이다. 2개 섹션 48면 분량을 감안해도 저렴하지 않지만 구독률은 높다. 5만1000여명이 사는 옥천군에서 4000부가 나간다. 가구 수(2만가구)를 기준 삼으면 다섯 집 중 한 집이 구독하는 셈이다.

신문이 배달되면 줄 쳐가며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는 독자들이 많다. 아파트에서는 자주 ‘도난사고’(배달사고가 아니다)가 생긴다. 지인들 사이에 시비가 붙으면 ‘너, 그러다 옥천신문에 나는 수가 있어’라는 이야기가 오간다. 신문이 발행된 금요일에는 기사를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전화가 쏟아진다. 기자들은 ‘금요대란’이라 부른다. 온라인 옥천신문도 ‘유료’ 플랫폼이다. 황 실장은 “옥천신문 소식은 다 단독이고 특종”이라고 했다.

비결은 평범하다. 문턱을 낮추고 주민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다. 황 실장은 “언론을 두고 ‘세상을 보는 창’이라 하는데, 지역신문은 ‘스스로를 보는 거울’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옥천 주민 모두가 특별하다. 우리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려 애쓴다”고도 했다. ‘주민 퍼스트’ ‘현장에 간다’가 이 신문의 원칙이다.

종이신문 열독률이 12.3%, 정기구독률이 6.4%(2019 언론수용자 조사)라고 한다. 레거시 미디어(전통 언론)의 위기다. 옥천신문은 그 속에서도 ‘작지만 강하다’. 지난해 말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3일 신문사에서 기자들이 사는 법을 들었다.

◆“로또 번호 뭐냐” “송아지 태어났다” 전화…주민이 원하면 다 뉴스죠

옥천신문은 ‘오늘 숨통이 조이더라도’ 지역의 공공성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지난 30년을 버텨왔다. 이제는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옥천신문 구성원 19명 가운데 16명이 지난 3일 편집국에 모였다.  옥천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옥천신문은 ‘오늘 숨통이 조이더라도’ 지역의 공공성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지난 30년을 버텨왔다. 이제는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옥천신문 구성원 19명 가운데 16명이 지난 3일 편집국에 모였다. 옥천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옥천신문 기자들이 사는 법

옥천신문 구성원은 19명이다. 취재기자가 10명, 편집·디자인 담당 기자가 4명, 대표이사와 총무직 등 경영부문이 5명이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해 꾸준히 신규 인력을 채용해왔다. 입사 희망자가 전국에서 오다 보니 해프닝도 생겨난다. 몇 해 전 기자 입사시험에 ‘AI에 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농촌 지역인 만큼 대부분 지원자는 AI를 조류인플루엔자로 이해했다. 수도권 출신의 한 지원자는 달랐다. ‘인공지능’으로 해석했다가 뒤늦게 파악하고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한 기자는 옥천에 정착해 옥천 사람이 돼야 한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실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옥천신문은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옥이네 밥상’이라는 직장 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 황민호 제작실장(45)

옥천신문에 두 번 입사했다. 2002년 입사했다가 2012년 퇴사했다. 한동안 트럭을 몰며 노인정에 밑반찬을 배달하는 등의 일을 했다. 10년 동안 기자로 일하며 옥천 사람은 거의 다 만나봤다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맨날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실리는 기사만 실린다는 걸 알게 됐다. 부끄러웠다. 3년 만에 신문사로 돌아온 이유다.

“10년 취재하며
많은 목소리 들었다 생각했는데
밖에서 보니 착각이었더라고요
3년 만에 재입사했죠”

- 옥천신문이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요.

“오로지 옥천신문만이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로또 당첨번호를 실어달라는 분이 계셨어요. 인터넷이 안돼서 당첨 여부를 확인하려면 읍내까지 나와야 되는 거죠. 그래서 로또 당첨번호 게재를 시작했어요. 옥천에는 월 100만원 미만 소득자도 34%에 이릅니다. 이들은 목소리를 못 냅니다. 말 없는 이들의 몫을 찾아주고, 그들의 말과 글이 되어줄 필요가 있어요. 기자들이 더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이 만나야 합니다. 신문을 내는 일은 지역사회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옥천신문에선 ‘사람이 재산’이라고 여긴다.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전국 곳곳에서 인재들이 모여든다.

옥천 인구 5만명인데 취재기자 10명이나 필요하냐고요? 20명이 와도 모자랍니다!

- 창간 30주년을 맞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겠다는 초심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옥천신문 보도로 수사가 이뤄져) 현직 군수가 감옥에 가기도 했지요. 동시에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도 귀담아들었습니다. 비판적인 감시자이자 살가운 친구가 된 것이지요.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걸 실천해왔어요. 초등학교 앞에 횡단보도가 없다? 계속 보도하면 생깁니다. 인구 5만의 지역에 취재기자가 10명이나 필요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20명이 와도 모자란다’고 이야기합니다.”

- 재정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1년 매출이 6억~7억원쯤 됩니다. 구독료와 광고료 비율은 49 대 51이고요. 빠듯하지요. 그래서 2018년부터 ‘연대구독’(후원구독) 제도를 도입했어요. 구독료가 1만원인데 2만원, 3만원, 5만원 식으로 내는 독자들을 모집했어요. 현재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다양한 혁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창간 30주년을 맞아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유료 온라인 플랫폼(옥천신문 okinews.com)을 유지하되, 소셜미디어 공유를 위해 무료 플랫폼(옥천닷컴 okcheoni.com)도 만들었어요. 연성 뉴스는 옥천닷컴에 미리 올리고 실시간 업데이트합니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의 재생산 구조를 만들기 위해 ‘풀뿌리 청년 언론학교’도 열고 있어요. 옥천 출신 기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이현경 취재부장(31)

경북 상주 출신으로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다. 언론사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는데, 옥천신문 모집공고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지역에서도 중앙과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국회의원 비리가 있으면 지방의원 비리도 있다…중앙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였다. 2014년 입사했다.

- 기억에 남는 기사는 어떤 게 있습니까.

“옥천에 시내버스업체가 한 군데 있어요. 운영비의 90%를 군비(군예산)로 지급하는데도, 주민에게 필요한 노선이 신설되지 않고 서비스도 개선이 안되는 겁니다. 사주 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로 수입·지출을 분석해서 입증해냈지요. 이동권은 보편적 권리인데, 면 단위 지역에서는 (버스가 안 다녀서) 오후 7시 이후에는 활동이 어려워요. 생활수준이 높은 서울에선 늦은 시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생활수준이 더 낮은 농어촌에서 자기 차량을 써야 한다는 건 모순이지요. 기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계속 쓸 겁니다.”

- 옥천신문이 지역 독자들의 신뢰를 받는 배경은 뭘까요.

“주민들이 ‘이거 신문에 반드시 나는 거 맞아요?’ 하고 물어볼 때가 많아요. 그 부분에서 옥천신문이 신뢰를 얻었다고 봐요. (행정·공공)기관과 사이 나빠지고, 광고 날아가는 부담감을 갖고도 기사를 써왔어요. 오늘 숨통이 조이더라도 지속 가능한 언론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합의를 지켜온 거죠. 또 주민들이 신문에 거리감을 갖지 않고, 희로애락을 기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송아지 두 마리 태어나면 기쁘다고 전화하세요.”

■ 박해윤 기자(26)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대학은 부산에서 다녔다. 중앙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 2017년 옥천신문에 입사했다.

- 지역신문의 역할과 필요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도시권이든 지역이든 다 이슈가 있습니다. 도시가 확장판이라고 하면 지역은 축소판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확장판에서는 이슈를 짚어주는 언론이 많은데, 축소판에서는 언론 기능을 하는 데가 드물어요. 지역마다 언론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지요. 지역마다 언론사가 없으니 (지역 주민들이) 중앙 이슈에 매몰되는 경향이 생깁니다.”

-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옥천신문에 옥천의 역사와 흐름이 다 담겨 있어요. 포도·복숭아축제를 평가하는 기사를 쓰라고 지시받았을 때 ‘해마다 하는 걸 평가하라고?’ 싶었어요. 착각이고 오산입니다. 같은 축제지만 해마다 달라요. 다른 기사를 쓸 수 있고요. 우리는 그걸 기록함으로써 역사를 쓰는 겁니다.”

“논두렁 밭두렁 발로 뛰는
현장 기사 쓰려고 노력하죠
포도·복숭아 축제도 해마다 달라요
매년 옥천의 새 역사인 거죠”

- 기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했습니다. 대안이 있을까요.

“농업 담당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배들이 ‘네 기사에는 논두렁 밭두렁이 없다’고 했어요. 현장을 중시하라는 말이지요. 기자들이 현장에 더 깊이 뛰어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론산업이 속보성·신속성 위주로 굳어버린 구조적 측면도 있잖아요. 이런 구조를 해체하려면 일선 기자들의 사명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경영자와 편집책임자들이 변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충북 옥천군에 위치한 옥천신문사 건물. 노동조합 현판도 보인다.  옥천 | 권도현 기자

충북 옥천군에 위치한 옥천신문사 건물. 노동조합 현판도 보인다. 옥천 | 권도현 기자

■ 김지혜 기자(28)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원래부터 지역언론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한 취준생 생활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옥천신문에 지원했다. 입사 후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신문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지역은 작은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부조리는 존재하고 이에 저항해 내부고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만약 지역신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통로가 없어서) 내부고발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 한인정 기자(31)

아무리 좋은 정책도
지역 실태와 연결되지 않으면 무의미
지역신문 역할은
민주주의 작동 ‘고리’

수도권 출신으로 사회복지학과 학·석사를 마쳤다. 정책 전문가를 지망하다, 정책을 만드는 데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언론 쪽으로 시선이 갔다.

“중앙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았을 때, 지역언론이 각 지역 실태를 확인해 보도하지 않으면 지역민은 해당 정책과 어떠한 연결고리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최근 학칙 관련 취재를 했는데, 관내 학교를 모두 확인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 되는지 알아봤습니다. 품이 많이 들기는 해요. 하지만 5만명이 사는 지역에서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일상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 권오성 편집국장(37)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군 복무를 충남 논산에서 하면서 옥천신문을 접하게 됐고 “코가 꿰였다”. 그는 지역과 도시권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다.

“충북도립대가 옥천에 있는데, 그중 인기 과는 오송에 가 있습니다. 충북 의료메카라고 추진하는데 좋은 분야는 청주나 오송으로 갑니다. 옥천군 내에서도 인프라는 옥천읍에 몰려 있고, 면 단위 인프라는 대단히 열악합니다. 옥천을 떠나는 사람은 취업과 교육 때문에 나가는 겁니다. 농어촌특별전형 때문에 주소는 여기 두고, 실제는 서울이나 대전에서 학원에 보내는 이들이 많아요. 옥천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괜찮은 직장을 구할 수 있어야 해요. 정책적으로 과감한 시도가 필요합니다.”

창간 30년을 맞은 옥천신문은 ‘향후 30년’도 기약할 수 있을까. 기존 독자들은 고령화하는 반면, 젊은 독자 유입은 쉽지 않다. 디지털 혁신을 하기에는 인력도 재원도 충분치 않다.

기자들에게 ‘향후 30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독자 퍼스트’ 전략을 쓰면서 밀접한 관계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플랫폼 변화보다 ‘보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양수철 기자·29), “언론의 존재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박해윤), “지역 주민들에게 일종의 ‘언론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식의 정책적 기반이 필요하다”(한인정)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현경 취재부장의 말이 핵심을 찔렀다. “디지털화를 추진하되 기사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 주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뉴스가 반드시 신문에 실려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는 옥천군이 존재해야 한다는 거다. 옥천군이 사라지면 옥천신문의 존재기반도 사라진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돌파했다. 지방소멸을 막고 분권을 실현하는 일이 시급하다.”

◆“광고성 기사 적고, 쓸 기사 쓰고 충북에 이만한 신문이 있을까요”

옥천신문 애독자 오정림씨

옥천신문 애독자 오정림씨

우리 지역에
무슨 일 일어났는지
옥천신문 넘겨보면
훤히 알아요

옥천신문의 한인정 기자는 “우리 독자들은 옥천신문을 ‘자기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자들을 만나면 “기자 몇 년차냐? 난 30년째 신문 보고 있다. 제보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난해 3월 입사한 새내기 양수철 기자는 “주말에 쉴 때도 전화하는 분이 있어 피곤하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애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현경 취재부장은 “옥천 주민들은 지역 언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학습’한 분들”이라며 “우리 신문사 기자들의 휴대전화 번호는 사실상 ‘공공재’에 가깝다”고 웃었다.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는 지역 주민들

독자들은 왜 옥천신문을 사랑하는가. 태봉열씨(66)는 평생 옥천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창간 때부터 옥천신문을 구독해온 ‘30년 독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는 “지역신문으로는 최고”라며 “아마도 충청북도 내에서는 이만한 신문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역의 일부 신문들은 ‘광고(성 기사)’가 많은 데 비해, 옥천신문은 젊은 기자들이 옥천의 여러 가지 문제를 있는 그대로 파헤친다고 했다. “다른 데서 못하는 걸 다 파헤치지. 못 쓰는 기사가 없고, 안 쓰는 기사가 없고, 다뤄야 될 소식은 꼭 다루고….”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없냐고 묻자 “이 정도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오정림씨(56)는 충북 청원 출신이다. 옥천에 거주한 지는 40년쯤 됐다. 그는 창간독자는 아니다. 8년 전 옥천읍내에 음식점을 열면서부터 신문 구독을 시작했다.

오씨는 “매일 가게에 있어야 하니까 밖에 나가기가 어려운데, 옥천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꼼꼼히 전해줘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씨는 신문 기사에 등장한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면 “옥천신문 나오신 거 봤어요” 하고 인사한다. 손님들이 은근히 반긴다고 한다.

몇 해 전 옥천신문의 경쟁지를 표방하는 신생 지역신문이 등장했다. 오씨는 “신문을 봐달라며 찾아왔던데, 옥천신문이 짜임새가 있고 역사도 있어서 거절했다”고 전했다. 모시고 있는 시아버지(85)도 옥천신문 애독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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