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일으켜 세우던 청년 장애인의 죽음, 우리 사회의 ‘실패’

김민아 선임기자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고 설요한의 삶과 죽음

지난 12월 세상을 떠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인 고 설요한씨의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농성장에서 촬영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지난 12월 세상을 떠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인 고 설요한씨의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농성장에서 촬영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뇌병변 중증장애인이지만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는 설씨
미취업 동료 중증장애인들을
취업과 연계시키는 일을 했다
설씨가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수행기관은 지원금을 토해낸다
보람보다 압박감이 컸다

철학자 고병권은 2월3일자 경향신문 칼럼 ‘고병권의 묵묵’을 이렇게 시작했다. “한 사회는 의외로 소리 없이 크게 실패할 때가 있다. (중략)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의 이전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던 실패.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런 실패들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한 젊은이의 ‘미안’과 ‘민폐’에서 시작한다.”

고병권이 언급한 ‘한 젊은이’는 고 설요한씨다. 뇌병변 장애인인 설씨는 지난해 4월부터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의 동료지원가로 일했다.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미취업 중증장애인을 찾아서 만나고 자조모임 결성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보람보다 고통이 컸다. 설씨는 8개월 만인 지난해 12월5일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채. 만 24세7개월이었다.

고병권은 전화 통화에서 낮은 목소리로 분노했다. “설요한씨는 동료가 일을 하도록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었다. ‘우리 사회가 살길이 있다’고 말하러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죽음은 ‘살길이 없음’을 인정한 거다.” 설씨가 세상을 떠나고 두 달이 흐르도록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 비로소 알게 된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설씨의 삶과 죽음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스물넷 청년의 좌절이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실패’로 남아선 안될 것이기에.

◆씩씩하고 책임감 강한 스물넷 청년, 왜 늘 미안해야만 했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설요한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지난 1월28일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농성을 벌였다. 전장연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논의협의체를 구성하고, 동료지원가 일자리 사업의 지속 및 개선에 노력한다는 데 노동부와 합의하고 2월25일 농성을 중단했다. 사진에 설요한씨의 영정이 보인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설요한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지난 1월28일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농성을 벌였다. 전장연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논의협의체를 구성하고, 동료지원가 일자리 사업의 지속 및 개선에 노력한다는 데 노동부와 합의하고 2월25일 농성을 중단했다. 사진에 설요한씨의 영정이 보인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박대희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47)은 ‘그날’을 힘들게 떠올렸다. 지난해 12월5일 점심시간 직후. 여수 전남병원으로 향했다. 경찰은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고 병원으로 오라고만 했다. 교통사고가 난 걸까 걱정하며 달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해서야 설요한씨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은 유서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몰라 휴대전화를 열었다. 설씨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안합니다. 민폐만 끼쳤습니다.” 억장이 무너졌다.

뇌병변 중증장애인인 설씨(사망 당시 24세)는 2016년 여수 한영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다리가 좀 불편했으나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2018년 4월부터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 동료상담가로 일했다. 지난해 4월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이 사업에 따른 동료지원가로 다시 채용됐다. 미취업 중증장애인을 발굴해 상담하고, 이들의 취업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조모임 결성을 지원하는 등의 업무를 했다.

박 소장은 설요한씨를 “씩씩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뭐든지 완벽에 가깝게 잘하려고 하는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업무를 맡으면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겼지요. 제가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면 씩씩하게 ‘네, 알겠습니다’ 하곤 했어요. 그런데 실제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요한씨가 지역 장애인들을 방문하고 센터에 오는 장애인들도 상담했는데, (요한씨를) 안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이야기해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잘 들어준다고, 친절하고 싹싹하다고 칭찬이 자자했어요.”

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비장애인 활동가 김정수씨(33)도 “요한씨는 너무 착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함께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개인적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어요. 사업 참여자(취업지원 대상 중증장애인) 가운데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처음에 조금 쌀쌀맞게 대했나봐요. 요한씨가 자기 차량으로 그분 이동지원도 해드리고 하면서 가까워졌어요. 그분이 다른 중증장애인들을 센터에 소개시켜줘서 회원으로 등록하니까, 요한씨가 보람을 느낀다며 기뻐했습니다.”

성실하고 씩씩했던 이 청년에게 8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센터의 장애인 활동가 이창준씨(34) 말을 들어보자.

“업무에 임할 때 성실하고, 인사성도 바른 친구였어요. 그런데 요한씨가 세상을 뜨기 이틀 전인가, 저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제가 농담조로 ‘요한씨가 동료지원가로 채용되지 않았으면 내가 그 일 할 뻔했다’고 했더니 ‘절대 이 일은 하지 말라, 힘들다’고 하더군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의 얼개는 이렇다. 고용노동부는 동료지원가 사업비를 사업수행기관(설씨의 경우 센터)에 미리 지급한다. 사업수행기관은 동료지원가에게 월급 형태로 ‘기본운영비’를 지급한다. 동료지원가는 참여자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의 취업지원서비스나 취업으로 연계시킬 경우 ‘연계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문제는 연말에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다. 수행기관은 미리 받은 지원금 일부를 ‘토해내야’ 한다. 사업비를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이나, 수행기관과 동료지원가 모두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무량은 많고 급여는 적었다
매달 4명 이상, 5회씩 상담
1명당 8가지 서류 준비 업무
한 달 손에 쥐는 돈 65만9650원
“전화요금·유류비도 지원 안돼
요한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설씨는 매달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하고, 이들을 각각 월 5회씩 만나 상담해야 했다. 참여자 1명당 8가지의 서류를 준비하는 업무도 뒤따랐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실적을 채워가며 수많은 서류와 상담일지, 자조모임일지까지 작성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월 60시간을 일한 그가 손에 쥔 수당은 4대 보험을 제외하고 65만9650원에 불과했다. 휴대전화 요금이나 차량 유류비 같은 필요 경비도 지원받지 못했다. 동료지원가를 돕는 슈퍼바이저(조정자) 인건비도 별도로 책정되지 않았다.

“중증장애인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참여자 인원이 너무 많았어요. 특히 서류작업이 과중해 보였어요. 옆에서 보기에도 힘든 것 같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거나 내색한 적은 없었습니다. 요한씨가 ‘통화를 많이 하고 차량을 몰고 다니며 참여자들 이동을 도와야 하는데, 휴대전화 요금이나 기름값은 지원되지 않아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건 기억납니다.”(김정수씨)

설요한씨가 일했던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박대희 소장(오른쪽)과 활동가 이창준씨(왼쪽)가 지난달 24일 설씨의 활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수 | 우철훈 선임기자

설요한씨가 일했던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박대희 소장(오른쪽)과 활동가 이창준씨(왼쪽)가 지난달 24일 설씨의 활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수 | 우철훈 선임기자

‘이 정도면 다 할 수 있지 않나’
비장애인 눈으로 설계한 정책
요한씨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과
여러 활동가들은 꼬집는다
“탁상공론 정책이 만든 결과죠”

자신보다 ‘민폐’를 먼저 걱정
8개월 동안 40명 취업을 지원
많은 장애인을 일으켜 세우고도
연말 극심한 실적 스트레스에
결국 자신은 죽음을 택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올해까지만 참고 가자, 내년부터는 업무량이 줄어들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이야기했어요. 그게 가장 후회됩니다….”(박 소장).

설씨는 지난해 11월 말까지 여수 지역 중증장애인 40명을 발굴해 개별 상담을 하고, 자조모임 결성과 활동도 지원했다. 그러나 12월10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중간 실사를 나온다는 소식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 센터가 지원금 환수조치 등을 받은 것은 없어요. 그러나 현장의 동료지원가로서는 자기 때문에 기관이 손해 보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을 가졌을 것 같아요. 동료지원가들은 채용 과정에서 교육받을 때부터 ‘환수조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해요.”(박 소장)

활동가 김정수씨는 “이 일(설씨의 사망)을 겪고 나서, 이런 사업을 구상한 사람들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증장애인들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부여하면서 보수는 제대로 책정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장애인 지원사업을 할 때는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정교한 시뮬레이션부터 해보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비장애인 눈으로 보는 것과 장애인 눈으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이 정도면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도 장애인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일도 그래서 벌어진 것 아닐까요. (비장애인) 공무원들은 ‘지원금을 주니까 이 정도 업무는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박 소장도 “중증장애인들이 농성하고 일자리를 요구하니까, 탁상공론으로 세부적 논의 없이 프로그램을 만든 결과가 아닌가 싶다”며 “중증장애인들이 사회 활동을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구체적 부분까지 정책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철학자 고병권씨(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는 장애인 노동권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 교정을 촉구했다. “정부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을 하면서, 장애인에게 급여를 지원한다는 생각만 했지 동료지원가라는 일자리가 공동체에 절실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바꾸는 데 동료지원가가 중요한 ‘첨병’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거죠. 사업의 설계와 관리 과정을 보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가 어떤 지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각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중증장애인이 중증장애인 취업 돕는 사업…적합한 일자리 없이 동료지원가에겐 ‘실적’ 강요

장애인 단체 “시작부터 예견된 문제” 월급제 등 전면 개편 요구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의 뿌리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85일간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농성이 종료된 후 고용노동부와 전장연 등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개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개편을 위한 TF 등 2개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공공일자리 TF에서 장애계와 노동부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자 노동부가 대안으로 제안한 것이 ‘동료지원가 사업’이다.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가 동료 중증장애인들의 취업을 도우면서 자신의 전문성도 높인다는 게 사업의 목표다. 취지를 나무랄 일은 아니나, 설계와 구조를 두고 사업 시작 전부터 우려가 나왔다. 우선 참여자(취업지원 대상 중증장애인)를 위한 일자리가 전제돼야 하는데, 중증장애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으로. 동료지원가가 월 4명(연 48명)의 참여자를 발굴해 각 5회씩 만나도록 한 ‘계량화’도 문제였다. 게다가 ‘실적 미달 시 환수’ 규정은 동료지원가들을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업 구조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자 노동부는 2020년도 사업 시행지침을 변경했다. 동료지원가 1인당 연간 담당인원을 20명으로 축소했다. 다만 동료지원가가 참여자 1인당 받는 수당은 인상해 총급여는 2019년보다 조금 더 오른 수준으로 유지토록 했다.

그러나 장애계에서는 동료지원가에 대한 월급제를 도입하는 등 중증장애인 기준에 맞는 일자리 제도로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전장연은 “설요한씨의 죽음은 노동부의 잘못된 제도 설계가 낳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하며 이재갑 노동부 장관의 공식 사과와 조문 등을 요구해왔다. 지난 1월28일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1층에서 농성에 돌입한 전장연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논의협의체를 구성하고 △동료지원가 일자리 사업의 지속 및 개선에 노력한다는 데 노동부와 합의하고 2월25일 농성을 중단했다. 허윤선 노동부 장애인고용과장은 이 장관의 입장 표명 여부에 대해 “고인에 대해 애도를 표할 방식을 모색하고 있으며 (전장연 측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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