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비대면 사회의 두 얼굴

김태훈 기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전철에 승하차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전철에 승하차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직장인 김성현씨(37)는 얼굴인식으로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을 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는 인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예 마스크를 벗어버리는 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처지라 민얼굴로 버스나 지하철에 타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원자재 관련 중견기업인 김씨의 회사에서도 직종에 따라 재택근무를 하거나 원격 화상회의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접촉을 최대한 줄이라는 방침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거래처를 직접 들러야 할 때가 있는 업무 특성상 김씨는 마냥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가 없다. 거래처 직원이 빠르게 납품내역과 추가 발송 일정을 말할 때 마스크 위로 쓴 그의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리는 모습을 보면서 김씨는 ‘이 사태가 언제 끝나려나’ 하는 걱정으로 한숨이 나온다.

점점 멀어지는 사회·심리적 거리

저마다 얼굴에 한 겹의 장막을 더 두르고 거리로 나선다. 코로나19 사태의 현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장의 얇은 마스크에 불과하지만 사회·심리적 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멀어져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감염 확산을 막을 최선의 방책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이 큰 서구 문화권에서 최근 빠른 속도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스크를 끼고 일상적인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 온라인으로 그간의 대면 관계를 대신하는 ‘비대면(언택트) 의사소통’이 일상화되는 모습은 쉽게 적응할 만한 변화상이 아니다. 비대면 관계가 사회·경제생활 전반에서 넓게 퍼지고 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대비할 여유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레 닥친 비대면 관계의 일상화가 다가올 미래에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문제점들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얼굴을 마주하는 의사소통을 대신해줄 기술 수준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으나 여전히 기술로는 채우지 못할 공백이 남아 있는 것이다.

대학생 박모씨(22)가 다니는 대학은 온라인 강의로 한 학기를 시작했다. 방송대나 사이버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국내 일반 대학에서는 최초로 온라인 개강을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문제는 교수나 강사의 얼굴과 칠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데 있다. 박씨는 “고교시절 인강(인터넷 강의)에 익숙해서 별 무리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익숙지 않은 영상기기를 쓰는 교수들이 초점을 잘 못 맞추고 수업할 때가 많아 집중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은 강의 위주의 수업만 진행되고 있지만 이공계열인 박씨는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사태가 길게 이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크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자리가 감염 확산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코로나 사태로 현실로 국내·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종교단체다.

개신교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담임하고 있는 강윤호 목사(41)의 걱정도 ‘온라인 예배’ 때문에 더 커졌다. 강 목사 혼자 강단에 올라 카메라를 앞에 두고 예배를 집전하며 혼자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이 멋쩍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보다 더 불안한 것은 중·고등부 신도들만의 강한 또래문화가 점차 힘을 잃을까 하는 걱정이다. 강 목사는 “신앙심이란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는 해도 한편으로는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 얼굴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 속에서 더 확고해진다는 게 신학생 시절부터 배우고 체득한 사실”이라며 “서로 모이지 않는 교회는 교회 밖 이웃들에게도 눈길을 돌리지 않게 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화상으로 한 방향의 목소리만 전달되는 의사소통 방식이 미묘한 위화감과 단절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전문가들도 단점으로 지목하는 대목이다. 강단에 선 교수나 성직자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전달될 때에는 청중들의 반응이 없기 때문에 소통이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웹캠을 앞에 두고 실시간 대화에 가깝게 진행되는 기업의 화상회의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말을 꺼내고 주고받을 시점을 가늠하게 해주는 상대방의 반응을 제한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부분에서 대화가 가로막히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화상 의사소통 방식의 단절감

그나마 서로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상황과는 달리 메신저를 통해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비대면 소통의 단점이 더욱 커진다. 나은영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메신저에서 글자로 소통할 때는 말의 억양이나 높낮이처럼 비언어적 표현이 담기지 않는데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이 커뮤니케이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비대면 소통에 더 익숙해져 대면 소통에서의 표정·말투 등을 읽는 능력이 저하되면 장기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나 교수는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는 데 익숙해지지 않게 되면 상대의 의사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내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도 어려워진다”며 “어릴 때부터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제한을 경험한 상태에서 자란 세대는 성인이 된 후에 소통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MIT 셰리 터클 교수가 기술발달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연구한 책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낳는 장기적인 부작용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 스마트기기의 메신저나 소셜미디어(SNS) 앱을 통해 언제든 대화 상대와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언제든 메시지가 오면 응답해야 하는 끊임없는 대기상태에 놓여 있다. 끝나지 않는 대기 상태는 결국 피로감을 부르고, 그래서 주고받는 메시지의 양은 늘어나지만 저마다 전달하고 싶은 용건만 알린 뒤 상대의 반응은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터클 교수는 “네트워크화된 상태에서는 함께 있을 때조차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며 “타인을 자신에게 유용하거나 재미있다고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만 접속할 대상으로 보게 될 위험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한 관광객들이 썰렁한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한 관광객들이 썰렁한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코로나19 확산사태 국면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얼굴 없는’ 소통의 단면은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처럼 다가올 미래의 비대면 사회를 미리 보여주는 지점일 수도 있다. 편의점과 식당, 카페 등 서비스직 업장에서 근무하는 종사자들은 마스크를 쓸 수도, 벗을 수도 없는 딜레마를 겪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일의 성격 때문에 예방을 위해선 마스크를 쓰는 것이 본인은 물론 손님들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막상 쓰고 있으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단순히 계산하려는 물건의 바코드만 찍은 뒤 가격만 알려줄 때도 마스크를 쓴 뒤부터는 ‘얼마라고?’라며 되묻는 경우가 수도 없이 늘었다”는 편의점 관리자 정모씨의 고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손님 말을 알아들으려고 할 때도, 손님이 내 말을 들을 때도 입 모양이 안 보이니 생각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게다가 손님들도 비대면 서비스에 마냥 편리함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야간 시간대에 무인화 점포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씨의 편의점에는 들어왔다가 원하는 물건을 잘 찾지 못하고 그냥 나가는 손님의 비중이 특히 높다.

‘언택트 마케팅’으로 인한 양극화 우려

그저 얼굴만 가렸을 때도 소통이 힘들어지는데, ‘언택트 마케팅’이라 불리는 비대면 유통·소비문화가 확산될 경우엔 소통의 어려움을 넘어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양극화까지 심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비대면 문화가 정착되면서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소비자가 직접 서비스 가입이나 물품 구매에 필요한 잡다한 절차를 직접 처리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언택트 라이프의 명암’ 보고서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온라인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반면 대면 서비스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이 접촉하는 일차원적인 비대면 문화는 코로나19 사태로 두드러지기 시작했지만 불편한 대면보다 단절을 편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상당 부분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 등으로 금융기관의 비대면 계좌 개설·대출, 식음료 매장의 키오스크 확산, 셀프주유소와 무인주차장 증가 등 언택트 문화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그에 반해 대면 비용은 점차 비싸지고 있다. 김윤서 연구원은 “유료 독서모임이 대표적으로, 회비를 내고 같이 읽을 책을 자비로 구입해 독후감을 제출해야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할 자격이 주어진다”며 “금융회사들의 마케팅 전략도 같은 이치로 비대면 온라인 수수료는 없애고 있는 반면 고액자산가들의 오프라인 서비스는 갈수록 특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데에는 가격 문제뿐 아니라 대면 관계에서 받을 수 있는 신뢰와 안정감이 떨어지는 문제도 작용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방법으로 제시되는 ‘언택트’ 해법이 당장은 편리하더라도 사회구성원 사이의 교류를 막고 맥락이 제거된 소통으로 서로 간의 오해와 배제를 불러일으킬 위협은 더욱 높아진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계층은 대부분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일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기술 발전과 연결사회가 새로운 효용과 문화를 창출하고 있지만 이면에서 빈부격차를 구조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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