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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고려대가 국내 사립대로는 처음으로 대학 내 계급과 성별 격차 등 다양성 현황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7년 서울대에 이은 것으로 대학 내 다양성 확보를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다양성위원회가 발표한 ‘2019 다양성 보고서’는 학내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고려대 전임교수 중 여성의 비율은 16.1%로 해외 주요 대학에 비해 현격히 낮았다. 보직 교수 중 90%는 남성 교수로 나타나는 등 의사결정 과정은 더욱 불균형했다. 교수 외 교직원의 경우 여성 비율은 42.4%로 비교적 높았지만, 부장급 이상으로 한정했을 경우 여성 비율이 17%로 떨어지는 등 격차가 드러났다.

대학생의 절반은 여성인데, 전임교수 중 여성 비율은 16%[플랫]

학부생의 경우 성별보다 계급에 따른 격차가 뚜렷했다. 재학생의 국가장학금 신청 여부로 살펴본 경제적 소외 계층 출신 학부생의 비율은 전국 평균은 물론 서울대, 연세대 등 서울의 주요 대학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었다. 특목고(17.5%)와 서울시(32.7%) 출신 학생의 편중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이런 경향은 세종보다 서울 캠퍼스에서 더 심했다.

위원회는 학내 다양성 강화를 위해 여성 교수의 비율을 25%로 올리고, 차·부장급 이상 교직원에 타교 출신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경제적 소외 계층에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입학 및 장학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학생들의 비교과 활동 장려, 다양성의 가치 확산과 다양성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도 장려됐다.

변화는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위원장을 맡은 미디어학부 민영 교수는 “보고서 제출 이후 2학기부터 다양성 이슈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파일럿 교양 과목을 개설하기로 했다”며 “다양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학내 공감대는 100% 형성된 상태”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학생들과 다양성 관련 캠페인을 벌일 계획도 세우고 있다.

다양성에 주목하는 대학도 하나둘 늘고 있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2016년 국내 대학 최초로 출범했고, 카이스트는 2017년 9월 ‘포용성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밖에 서울과학기술대 등 전국의 여러 대학이 다양성 관련 기구 조직을 추진 중이다. 고려대 다양성위원회가 서울대 등 다른 학교와 협력해 다양성 기구 확산을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민 교수는 “이번 조사는 학내 인적 구성의 변화가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지 확인해보는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취업률, 연구 성과 외에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대학을 평가할 수 있는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다양성위원회가 지난 1년간 조사한 결과인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연구 성과 등 기존의 대학 평가 기준에서 탈피, 다양성의 관점에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다양성위원회는 학내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해 설치된 총장 직속 자문기구로, 조사는 캠퍼스 내 30여개 부처와 학내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대학생의 절반은 여성인데, 전임교수 중 여성 비율은 16%[플랫]
대학생의 절반은 여성인데, 전임교수 중 여성 비율은 16%[플랫]

서울대 2017년 첫 ‘다양성 보고서’
여학생 40% 넘지만 여성 교수는 15%



서울대 전임교원 중 여성은 15%에 불과해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보직의 여성 교원 참여율도 13.3%에 그쳐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제시하는 여성 참여 최소 비율 40%에도 크게 못 미쳤다.

내국인 전임교원은 서울대 졸업자가 80.4%에 달했고, 최종 학위를 취득한 나라는 미국이 47.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대 다양성위원회(위원장 노정혜 교수)가 지난 2017년 10월 국내 대학 최초로 발표한 다양성보고서의 내용이다. 다양성보고서는 조직 내 구성원의 다양성을 높이고 차별을 줄이기 위해 구성원의 성별·출신·인종·국적 등을 통계로 작성하고 분석한 결과물이다. 미 하버드대 등 해외의 유수 대학들은 다양성기구를 두고 매년 다양성보고서를 발표하며 정책에 반영한다.

보고서를 보면 서울대 교원과 교직원 임용에서 성 불평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여학생 비율은 학부생의 40.5%, 대학원생의 43.2%로 파악됐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전임교원(교수)에서 여성 비율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대학 평균 여교수 비율(24.8%)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여성 교수가 아예 없거나 10% 미만인 학과·학부·교실도 36%(53개)에 달했다.

학내 주요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는 여성 교수의 비율도 모두 15%를 밑돌았다. 학내 주요 보직을 맡은 교수 가운데 여성은 13.3%에 불과했다.

서울대가 현 관악캠퍼스로 이주한 1975년부터 43년간 여성 교수가 부·처장급 이상 본부 보직을 맡은 것은 10회에 불과했다. 또 서울대 정관·학칙에 규정된 19개 심의기구·자문기구에 참여한 여성 교수 비율도 14%에 그쳤다.

반대로 대학 내 고용 불안정성이 높은 직책일수록 여성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비전임 교원·연구원 가운데 여성은 57.6%로 절반을 웃돌았다. 신분이 불안정한 전업 시간강사는 여성 비율이 61%에 달했다. 일반 직원도 정규직 중 여성은 47.4%인 반면 무기계약직·기간제근로자 가운데 여성은 74.6%에 달했다.

보고서는 학기마다 계약을 새로 하는 시간강사들의 처우 문제도 짚었다. 서울대에서 연구·교육을 수행하는 인력 중 49.1%(2168명)는 기간제 계약직으로 고용돼 있다. 보고서는 “학내에서 중요하지만 가장 저평가된 집단은 전업 시간강사 등 비전임 전업인력”이라며 “대학 시간강사는 학기 단위로 고용되고, 연구원은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면 그 즉시 실업을 당하는 등 신분 불안정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장애인 학생, 교원 비중도 현저히 낮았다. 서울대에 등록된 장애인 학생은 84명으로 전체 재학생 2만8630명의 0.29%다. 교수집단 내 장애인 등록이 된 인원은 총 13명으로 전체 전임교원의 0.6% 수준이다. 보고서는 “장애인 교원과 직원을 위한 지원제도는 파악된 것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교원의 미국 유학파 쏠림 현상도 심각했다. 내국인 교수들의 최종 학위 취득 국가는 미국이 47.7%를 차지해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41.8%)보다 많았다. 독일 2.9%, 영국 2.2%, 일본 2.1% 순으로 미국과 편차가 컸다. 보고서는 “미국 중심 세계화의 영향으로 다른 국가로의 유학은 점점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추세는 서울대 내에서 다양한 국가를 한국인의 관점으로 설명해줄 학자 수를 줄여 연구와 교육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대의 국내 대학 최초 다양성보고서 작성을 이끈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인 노정혜 생명과학부 교수(60)와 첫 번째 보고서가 발표된 2017년 10월12일 당시 이뤄진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다양성 보고서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여학생 숫자에 비해서 또는 비전임 여성 교원숫자에 비해서 전임 여성교원의 비율이 너무 낮다는 것, 그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 제일 큰 강조점입니다. 또 하나는 그동안 통계에 잡히지 않던 대학원 연구생, 교류학생, 비전임 교원(연구교사, 시간강사 등) 등을 전업과 교류(비전업)으로 나눠 분석한 것이에요. 정년이 보장되든 계약직이든 전업으로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했더니,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 수가 거의 비슷했습니다. 전업 비전임교원 중 57.6%는 여성이었죠. 이들은 거의 다 박사학위 소지자이니 전임교원 즉 교수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에요. 여성 교수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우리 학교에 굉장히 많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난 것이 큰 시사점입니다.”


-1986년 처음 서울대에 부임하셨을 때 자연과학대에 여성 교수가 3명밖에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수학과, 천문학과 등에 이론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계셨고, 실험을 하는 분야에서는 제가 처음이었죠. 그 때는 여성을 동료로 뽑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색한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잘 챙겨줘야 될 것 같고, 불편하고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죠.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여성 교원 수도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여성을 동료로 보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던 초기의 그 분위기가 지금은 많이 완화됐습니다. 30년이나 지났으니까요. 하지만 여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세상이 바뀐 것에 비해 아직 학교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나라가 되니까 평등에 대한 기대치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는데, 여전히 과거의 가부장적인 생각을 못 벗어나는 문화가 학교 곳곳에 만연합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바로 이런 부분이 우리 학교 발전을 막고 있다는 점이 보이게 된 것 같아요.”


-보고서를 보면, 자연과학이나 공학 부문은 여전히 여학생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다양성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의 비율이 낮은 이유가 애초에 여학생이 공학·과학에 관심이 없어서 관련 대학 진학률이 낮고, 그 결과 여교수 지원자 풀도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성들은 이런 학문에 맞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작용해 전공 선택, 학습, 연구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은연중에 일어 납니다.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공부를 끝까지 해서 전문직을 하라는 것을 굳이 힘주어 장려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는 게 사실입니다. 여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여 끝까지 전문가로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합니다.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을 때 여학생들이 지레 겁을 먹고 ‘나는 이 길로 가는 게 적합하지 않은가보다’ 하고 중도에 기를 꺾이고 탈락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을 주변에서 보고 있어요.”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이 2017년 10월12일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이 2017년 10월12일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교수님의 연구실에선 어떤지요.


“제 방(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논문도 많이 내지만 재생산도 굉장히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웃음). ‘결혼 해서 아이도 많이 낳으라’고 장려했고요. 실험실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박사후 과정까지 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결국은 지도교수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에 따라서 학생들이 끝까지 전문가로 크느냐, 중도에 탈락하느냐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대부분 연구실에서 여학생에겐 이런 것을 기대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어느 선배 교수님께서 제게 ‘당신은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안 가고 회의에 가고 그러면 남편 밥은 누가 해 주느냐’고 굉장히 걱정스럽게 물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제게 선의를 갖고 계신 것을 알기에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런 경우 여성을 흔쾌히 동료로 받아들이거나 교수로 채용할까요? ‘일을 늦게까지 시킬 수 없을 것이다’,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은연 중에 가지고 계신 거죠. 이런 경우 제자들에 대해서도 성별에 상관없이 끝까지 전문가로 키워내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겠지요.”


-그런 문화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학문을 하는 여성들에게 눈에 보이는 롤모델이 더 많아져야 되는 게 우리의 숙제입니다. 후학을 지도하는데 남자든 여자든 균형잡힌 시각을 키우게 하려면 여성 교수가 더 필요해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 정책에 따라 서울대가 한꺼번에 30명 정도의 여성 교수를 임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제 뭔가 학교가 바뀔거다’라는 큰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뿐이었고 그 이후에 여성 전임교원 수는 증가세는 거의 정체가 되어요. 자체적으로 ‘우리끼리 노력하자’고 아무리 해도 앞에서 끄는 힘이 없으면 문화는 쉽게 안 바뀌어요. 제도가 앞장서면 문화가 따라가는 게 지금으로선 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조직의 힘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데서 나오고 앞으로는 그것이 더 심화될 겁니다. 세상이 굉장히 빨리 변합니다. 소위 ‘4차 산업사회’이라고들 얘기하는 시대에는 얼마나 창의적이고 다른 이들과 소통을 잘 하느냐가 중요해지는 거죠.”


-다양성보고서에서는 비정규직인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번 통계에서는 시간강사도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시간강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과 겸업으로 하는 사람 즉, 다른 직업이 있는 경우로요. 시간강사 외에 다른 직업이 없는 경우가 700명쯤 됩니다. 이 그룹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해결책은 금방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러나 ‘이 부분을 우리가 더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걸로도 큰 시작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이 다양성보고서를 매년 작성하는 의의겠지요. 이런 노력이 다른 학교나 기관들에도 많이 확산됐으면 하는 게 저의 큰 바람입니다.”


-성별 문제 이외에, 외국인 학생 비율이 낮다는 점도 강조하셨는데요.


“서울대에 공부하러 왔던 외국인들이 머무르지 않고 그냥 떠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학문을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 학교로선 극복할 제일 큰 과제에요. 국제 글로벌 대학이 되려면 이 부분을 어떻게 할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합니다. 우리들, 내국인 교수들도 사실 외국인들과 있는 것을 그리 편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말을 섞는 것,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여전히 불편해하고, 그들을 끼워주지 않고 고립시킨다면 결국 고립되는 것은 우리입니다. 가부장적 문화를 극복 못하면 이게 세계 대학이 되는 데도 걸림돌이 되어요.”


-다양성위원회는 어떤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요.


“다양성 개념은 소수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성별 뿐 아니라 외국인, 장애인, 그 외 어떤 소수성을 가진 사람도 서울대 구성원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큰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다양성이란 개념으로 위원회의 이름도 지은 것이고요. 총장 직속 자문기구로 둔 것도 이례적입니다. 결과물을 바로 정책으로 건의하고 학교가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거든요. 이번 보고서에서 새로운 용어를 하나 제시했는데요. 바로 ‘다양성 임용’이 그것입니다. 각 학과별로 여성이거나 서울대 출신이 아닌 타교 출신이거나 외국인인 분들을 다양성임용된 분들로 분류해 보니, 서울대 전체로 볼 때 이 비율이 30%쯤 되었습니다. 나머지 70%는 다수성별, 서울대 출신이란 얘기입니다. 사실 이 비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저희의 비전입니다. 더 늘어나야 글로벌 대학으로 다양한 구성원의 창의성이 활용되는 학교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어요.”


-10년여 전인 2006년 후배 여성 과학도들과의 인터뷰(사이언스북스, <과학해서 행복해요>)에서는 ‘일도 육아도 마음만 먹으면 다 잘 할 수 있다’고 힘든 티를 내지 않고 격려하셨습니다. 교수님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일까요.


“사실은 겁내지 말고 힘 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어요.(웃음) 왜 안 힘들었겠어요. 여성들은 가장 활발하게 일할 시기가 가정을 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역할을 하기를 요구받는 바로 그 시기와 100% 겹치잖아요. 어마어마하게 힘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 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너무 겁내지 말라는 의미에서 격려를 하고자 했죠. 예전보다 지금 환경은 훨씬 나아졌지만, 여성들의 눈높이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어요. 이 눈높이와 현실의 갭(차이)을 생각하면 여기서 오는 좌절감과 어려움은 제가 겪었던 시절과 거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앞으로는 세상이 바뀔텐데, 소위 ‘4차산업’이라고까지 얘기하는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는 분명 창의적이고, 소통을 잘 하고, 공감을 잘 하는 능력일 거라고 봅니다. 필요해서라도 여성 인력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오니까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버텨라,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노정혜 교수
서울대 미생물학과 75학번으로 1979년 자연대 수석으로 졸업한 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1984년 분자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29살의 나이로 서울대 교수로 임명돼 여성 교수가 드물던 자연과학대에서 화제를 모았다. 2004년에 노 교수는 소위 ‘주요 보직’으로 불리는 연구처장을 맡았다. 서울대에서 본부 주요 보직에 여성 교수가 임명된 것은 설립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구처장이던 시절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가 터졌고 당시 논문 진실성 검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민지 기자 ming@khan.kr
최미랑 기자 ra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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