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귀농·귀촌지 ‘전북 완주’
결혼 6년 차. 집을 세 번 옮겼다. 지금 살고 있는 전세 아파트의 매매가가 1년 새 1억원 이상 올랐다. “집을 사야겠어.” 결단을 내렸다. 통근 1시간30분 이내를 목표로 경기 부천, 김포, 일산, 남양주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인서울’은 못해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안’에서는 살아야지. 호기롭게 들어간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그 돈으론 이 동네는 힘들다”는 말을 듣고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지?”
신혼 때부터 서울 바깥쪽을 돌았다. 퇴근하면 녹초가 된다. 퇴근하면 다섯 살 난 아들은 깨어 있을 때보다 자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오랜만에 아빠를 본 아이가 말했다. “아빠, 왜 왔어?” 이게 사는 건가. 도시를 벗어나면 달라질까. 전남 화순에 사는 지인이 말했다. “광주만 해도 집값이 꽤 올랐는데 여긴 아직 괜찮은 편이야. 빚에 허덕이며 살지 않아도 되더라고. 삶의 질이 달라.”
연고도 없고 농사도 모르는 내가,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농사짓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며 사는 ‘귀촌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매년 40만명 이상이 귀농 아닌, ‘귀촌’을 선택한다던데 그 삶은 행복할까. 농림축산식품부와 공동기획으로 귀농·귀촌 취재를 진행했다.
지난달 18일 전북 완주 봉동읍을 찾았다. 평지와 구릉이 섞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짚을 덮어둔 밭마다 대나무 잎 같은 풀들이 삐죽 올라와 있었다. 임금에게 진상했다던 ‘봉동 생강’이다. 주변 큰 도로에는 아파트와 공단도 들어서 있었다. 전형적인 ‘촌동네’라기보다 ‘반농촌 반도시’ 느낌이 강했다. 완주는 전북에서 가장 크 도시인 전주와 가깝다.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지역 주민들이 소비하는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일자리가 많아 귀촌하기에도, 농산물 판로가 어느 정도 갖춰져 귀농하기에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완주는 전북의 농촌 중에서 귀농·귀촌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서울의 한 건설회사에서 10년간 책상 앞에 앉아서만 일했던 우혜정씨(44)도 사표를 내고 7년 전 이곳으로 왔다. 흔히 농촌으로 이주하면 ‘귀농’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씨의 경우는 ‘귀촌’이지 ‘귀농’은 아니다. 가축을 키우거나 1000㎡(303평) 이상의 농지나 330㎡(100평) 이상의 시설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에만 ‘귀농’에 해당한다. 큰 면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돼야 ‘농지원부’가 나와 법적인 농부가 되고 농협 등에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귀촌 이후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우혜정 목수·강사·카페 주인·축제 기획 및 무대 설치 작업자…. 단 ‘농부’는 빼고.
■ “돈이 없다면, 의지는 있나요?”
“처음 내려와서 한동안은 일을 하지 않았어요.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기도 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찾는 게 급선무였거든요. 시간을 갖고 지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어요.” 우씨는 동네 목수의 일을 돕다가 목공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무의 질감이 너무 좋았고, 자르고 깎고 붙이면서 뭔가를 만드는 과정이 신기하더라고요. 조금씩 배우다보니 집 짓는 현장도 가보게 되고 뼈대가 세워지고 지붕 올라가는 일들이 재밌었어요.” 목수가 됐다. “목수라니요, 그냥 아마추어 수준이에요.” 그가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바리스타 일도 배웠단다. 우씨는 완주 삼례읍에 카페를 열었다. 단골들을 모아 디저트 강의도 한다.
홀로 귀촌하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가 뒤따라 왔다. 친구들도 완주로 모였다. 우씨 부부는 친구들과 함께 봉동의 언덕에 2층 집 세 채를 짓고 있다. 포클레인으로 직접 땅을 파고 철근을 맸다. 모르는 건 전문가에게 묻고 도움도 받으며 집을 지었다. 지난해 친구의 2층 목조주택이 먼저 완성됐다. “친구들과 세운 첫 집이라 애정이 가는데, 부족한 부분도 많아요. 제가 마감한 부분이 특히 눈에 띄더라고요.” 올해는 부부의 집을 짓는다.
“돈이 많아서 집을 짓는 게 아니에요. 여기가 소나무밭이었는데 직접 베면서 비용을 아꼈죠. 전기, 배관, 용접 모두 손수 해요. 빨리 하려고 하면 어렵고 힘든 일인데 배우면서 조금씩 하면 불가능하지 않아요. 아는 분이 그러더군요. 돈이 없으면 의지라도 있어야 한다고.”
이날 오후 우씨는 목공 강사로 출강했다. 인근에 있는 ‘완주전환기술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닷새 코스로 ‘여성 농부를 위한 생활기술학교’를 열었는데 이틀간 강사로 일한다고 했다. 완주 주민은 물론 전주, 진안, 인천, 서울 등지에서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수업을 들으러 왔다. 우씨는 “시골에서는 수리할 것들이 많고, 사람을 부르는 게 쉽지 않다보니까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보니 목공·용접 등을 배우려는 여성 귀농·귀촌인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200㎡(60평) 정도 되는 밭을 가꾼다. ‘농사’로도 쳐주지 않는 ‘밭뙈기 농사’지만, 우씨에겐 충분하다. “옥수수나 호박 같은 작물을 심었는데 요즘은 집을 짓느라 밭에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살았어요. 작긴 해도 우리 가족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정도예요.” 여기에 ‘싱어송라이터’인 남편이 버는 수입까지 합치면, 부유하진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고 했다.
■ ‘반농반도’에서 살아볼까
농촌에서 농사 안 지으며 먹고살려면 우씨처럼 만능이어야 하나? 난 정말 재주 없는 ‘곰손’인데 농촌에서 어떻게 살지? 화장실 전구를 갈거나, 뭔가를 고쳐야 할 때마다 난감해진다. 우씨의 목공 강의에서 전동드릴 사용법을 배웠지만 아직도 집에 있는 드릴은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뭘 배우고 온 거야?”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배운 건 ‘D사’ 드릴이었는데, 이건 ‘B사’ 드릴이야. 생긴 게 좀 다른데?”
우씨에게 “다재다능한 사람 아니면 귀촌해서 먹고살기 힘들겠다”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능력이 있어서 벌인 일들이 아니라, 귀촌해서 살다보니까 이것저것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도시에서 살 때는 못했거든요.”
조금 용기가 생겨 한 번 더 조언을 구했다. “저는 벌어놓은 돈도 없고요. 전세만 전전하고 있고요. 애도 키워야 해요. 귀촌해서 농촌에서 살고 싶은데 과연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다시 그가 현답을 내놨다.
“여기 왔다고 고민거리가 사라지진 않아요. 저도 여기 살면서도 ‘노후까지 잘 지낼 수 있을까’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하거든요. 그건 서울에 있든 시골에 있든 늘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고민만 할 순 없으니까. 한번 해보시면 길이 보일 수도 있어요. 팁을 하나 드리자면, 시작부터 작은 마을 단위로 들어가지 않고 여기처럼 ‘반은 농촌, 반은 도시’ 같은 곳에 살면서 적응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귀농·귀촌하면 소득은 얼마나 줄어들까
귀농·귀촌 전후 소득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귀농과 귀촌 중 만족도는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갤럽이 2014~2018년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한 4167가구(귀농 2081가구, 귀촌 2086가구)를 조사한 결과, 귀농 1년 차의 가구소득은 귀농 전(4400만원)보다 36% 줄어든 2828만원으로 나타났다. 귀촌 1년 차 가구소득은 귀촌 전(4038만원)보다 19% 감소한 3279만원이었다. 귀촌 가구는 귀촌 4년 차에 귀촌 전 소득을 회복했지만, 귀농 가구는 5년 차에도 소득이 귀농 전 소득의 88.5% 수준이었다. 귀농 가구의 절반가량인 48.6%는 농업소득 부족 등을 이유로 농업 외 경제활동을 같이하는 ‘반농반X(농사 절반, 다른 일 절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도도 귀농보다는 귀촌이 더 높았다. ‘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답한 가구는 귀촌이 67.0%, 귀농이 57.8%로 나타났다. ‘불만족’이라고 답한 가구도 귀촌(2.6%)이 귀농(7.3%)보다 낮았다.
주민과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건 귀농 가구였다. ‘주민과의 관계가 좋다’고 응답한 비율이 귀농의 경우 10가구 중 7가구(74.7%)인 반면, 귀촌은 10가구 중 6가구(56.1%)가 채 못 됐다. 8년 전 경북 상주 아천리로 귀농한 장동범 이장은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안 지으면 주민들은 귀촌인들을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골에선 대화의 대부분이 농사 이야기인데 귀촌인들은 농사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민들과 친해지기 힘들다”며 “귀촌인들이 시골에 잘 정착하려면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작게나마 농사를 짓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귀촌인 지원 정책은 ‘농촌 적응’을 위한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식품부는 ‘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민간교육기관들에 공모·위탁해 운영한다. 용접·목공 등 생활 기술, 농촌에서 주택 마련하는 법, 주민과의 갈등 해결하는 법, 텃밭 가꾸기 등을 배울 수 있다. 농촌 전입 이후 5년 이내 귀촌인들이 ‘농식품 가공’ ‘마을 여행사 창업’ 등 농촌을 기반으로 창업에 나설 경우, 창업 실무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수강료의 70%가 국비로 지원된다. 관련 정보는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www.returnfarm.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표 쓰고 귀농’ 하려는 이재덕 기자의 사심 가득한 귀농·귀촌 도전기는 매주 수요일 경향신문과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에 총 5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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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표 쓰고 귀농③] 귀농하려는데…‘텃세’가 걱정돼 https://news.khan.kr/Kk12
▶ [사표 쓰고 귀농④] 귀농이 부럽다고? "여기저기 일 천지야" https://news.khan.kr/XJFf
▶ [사표 쓰고 귀농⑤] '어디로 가지? 뭘 심지?'···나 정말 귀농할 수 있을까 https://news.khan.kr/ac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