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숨의 기록

(하)운좋게 살아남았지만…순탄치 않은 ‘버려진 아이들’의 삶

조해람·김희진·조문희 기자

학대 그후, 남겨진 아이의 삶

탯줄도 안 잘린 채 길에 유기
병원에 이송돼 겨우 목숨 구해
출생등록도 못하고 이름도 없이
퇴원 후 일시보호시설에서 지내

“갓난아이를 길거리에 유기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영아 유기 혐의로 친모인 A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2020년 7월12일, 기사가 쏟아졌다. A씨는 11일 오후 9시40분쯤 전남의 한 버스터미널 쪽 도로에 주차된 차량 사이에 아이를 버렸다. 탯줄도 자르지 않은 채 검은 비닐봉지에 넣었다.

버려진 아이는 50분쯤 뒤 행인이 발견했다.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A씨는 경찰에 ‘아이를 낳고 너무 당황했다. 키울 형편이 안 됐다’고 진술했다. 기사마다 댓글이 달렸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낳질 말지, 살인이나 다름없네, 친부도 잡아넣어라, 매번 나오는 기사 이젠 놀랍지도 않다….

여기까지가 비극적인 사건의 알려진 이야기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생명에 지장 없는 상태’라던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겨우 목숨을 구한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아이는 발견된 직후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일시보호시설에서 지낸다. 다행히 급한 조치는 취해졌지만, 아이는 아직 이름도 없다. 출생등록을 못했다. A씨가 병원이 아닌 상가 화장실에서 홀로 출산한 탓에 친모임을 입증하는 DNA 검사부터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법적으론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사망에 이르는 영아학대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는 ‘죽음’과 ‘사건’에만 주목해왔다. 언론은 가학적 학대 행위에 집중하고, 학대를 일삼는 부모는 분노의 대상으로 지탄받곤 한다. 정부는 처벌에 방점을 둔 대책을 내놓는다.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살아남은 영아 앞에는 어떤 삶이 놓이게 되는지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부모가 법적 처벌을 받으면 ‘사건’은 끝난다. 하지만 남겨진 아이의 삶은 계속된다. 제도적 허점과 사회의 무관심 등 여러 벽이 아이의 남은 날들을 가로막는다.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학대 피해 경험은 또 다른 학대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학대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선 사건의 맥락 속에서 사건 이전과 이후를 두루 살펴봐야 한다. 경향신문은 ‘학대에서 살아남은 영아’와 ‘학대로 숨진 영아의 남겨진 형제’의 삶을 통해 ‘사건’을 넘어 맥락을 살펴보고자 했다.

■ 존재가 ‘말소’된 붕 뜬 아이

친모에게 버려진 두 살배기 도윤이
시설에 온 후 한 달 내내 식사 꺼려
다 썩은 어금니의 통증이 원인
주민번호도 말소, 법적으로 붕 떠

두살배기 도윤(가명)은 지난 2월 강원도 한 아동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친모는 지난해 12월 직장 동료에게 도윤이를 맡긴 뒤 잠적했다. 시설에 왔을 때 아이는 한 달 내내 식사를 꺼렸다. 당시 도윤이의 작은 어금니는 거의 다 썩어 있었다. 언어 표현이 안 되지만 통증 탓에 식사를 거부할 가능성이 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도윤이의 치아 위생관리가 오랫동안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방임’을 겪었다고 판단했다. 도윤이를 급히 치과에 데려갔으나 진료 접수부터 막혔다. 도윤이는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 상태였다.

도윤이가 버려졌을 때 친모는 배우자와 혼인무효 소송을 거쳤다. 지난 2월 혼인무효 판결이 나면서 가족관계등록부가 폐기됐다. 동시에 도윤이의 주민등록번호도 말소됐다. 도윤이는 졸지에 공적으로는 ‘없는 존재’가 됐다. 친모는 출생재신고 없이 사라졌다. 경찰은 친모의 방치 및 유기 혐의를 수사할 뿐, 도윤이를 위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협조하진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지자체가 한 달여간 논의한 끝에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부여받고 나서야 도윤이는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픈 이를 치료한 후 아이는 밥투정을 멈췄다.

학대로부터 살아남은 영아에겐 온전한 삶을 살아갈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A씨 아이와 도윤이처럼 출생등록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친모를 알 수 없거나, 친모의 의지가 없어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영아는 ‘유령’이 된다. 기본적 권리인 의료와 복지, 교육권을 누리기 어렵다. 훗날 시설보호나 입양 등 미래도 불투명하다. 도윤이는 현재 지내는 시설에서도 다른 아이에 비해 참여할 수 있는 외부 활동이 적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서비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도윤이는 발달상 가장 중요한 시기를 흘려보내고 있다. 입소 당시부터 또래에 비해 언어구사 능력이 뒤처진 상태였다. 비교적 말 배우기 좋은 환경인 어린이집에 보내려 해도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보니 쉽지 않다. 도윤이를 돌보는 시설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다. 지난 5월부터 시설이 자체 비용으로 진행하는 언어치료 프로그램에 주 1회씩 참여하며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해졌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 7월 검찰에 도윤이의 출생등록을 요청했다. 도윤이처럼 친모의 출생등록이 어려운 경우 검사 직권으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

도윤이를 담당하는 기관 관계자는 “계획대로 출생등록이 되면 가장 좋지만,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도윤이는 ‘붕 뜬 아이’가 된다. 병원에도 못 가고, 학교 진학도 어려워진다. ‘시민’이 아니게 되는 것”이라며 “아이가 태어났는데 주민등록번호를 말소시킨 법원은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 공범으로 몰린 피해 아동

엄마가 동생을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은닉하는 걸 목격한 서진이
재판서 영아 살해 공범으로 몰리다
결국엔 학대피해아동으로 인정

학대로 사망한 영아의 형제도 어려움을 겪는다. 숨진 아이와 마찬가지로 학대 피해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아이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 아동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심리지원 등 치료가 이뤄지지 않곤 한다.

서진(가명)은 돌도 되지 않은 동생의 죽음을 겪었다. 서진이의 엄마는 ‘자꾸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동생을 때려 숨지게 했다. 서진이는 엄마가 시신을 은닉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범행이 발각된 후 엄마는 징역형에 처해졌다. 재판 초반에 법원은 서진이를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닌 영아 살해의 공범으로 봤다. 동생이 숨진 후 친모의 시신 은닉을 도왔다는 이유였다. 당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서진이도 학대 피해자’라는 취지로 소명한 끝에 겨우 학대 피해아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서진이는 기관 소명이 없었다면 ‘피해 아동’으로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동안 학대를 목격한 아이의 보호 여부와 미래는 사건을 다루는 담당자의 인식 수준에 달려 있었다. 학대당한 아동의 형제가 피해 아동으로 분류되려면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보호대상 아동 범위에 형제와 동거 아동까지 포함하는 개정 아동학대처벌법은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서진이를 맡은 기관 관계자는 “서진이도 아동학대를 당한 것인데, (당시) 사법기관에서는 피해 아동이 아니라고 본 것”이라며 “학대 사건에 대한 인식이 사건을 다루는 기관마다 달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서진이는 장기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시설에서 학교에 다니며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형제의 사망을 지켜본 아동에겐 큰 정신적·심리적 외상이 남는다. 전문가들은 형제의 죽음을 보는 것 자체를 심각한 ‘정서적 학대’라고 본다. 기관 관계자는 “(학대당한 아동의 형제는) 당시 학대 행위가 본인을 향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라면서는 ‘형제의 학대 피해를 막아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며 “학대 피해 아동에게 정서개입과 심리치료가 필수”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피해 아동 특성에 맞춘 지원이 어렵다는 점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주하는 심리치료 전문가는 기관당 1~2명 수준으로 깊이있는 정서 지원이 이뤄지기 힘들다. 현장에선 파트타임 심리치료사까지 동원하지만 예산과 인력은 역부족이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학대 피해 아동 전담 시스템이 없다보니 다른 아동과 섞여서 관리된다”며 “학대 피해 아동의 특성을 이해하고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학대 피해 아동 전용 보호시설에서 다급한 심리·신체적 위기부터 해결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6년 3월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42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정부, 아동학대 막을 공적 개입 강화하라’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2016년 3월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42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정부, 아동학대 막을 공적 개입 강화하라’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학대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학대한 부모가 처벌을 받으면
떠들썩한 ‘패륜 사건’은 끝나지만
남겨진 아이들의 삶은 계속…
맥락을 봐야 학대의 고리 끊어

서진이의 친모는 형량이 높은 징역형이 확정됐다. 120시간 아동학대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도 내려졌다. 아이와는 분리됐다. 앞으로 서진이만 잘 자라준다면, 이 사건은 끝나는 걸까. 엄벌에만 초점을 맞추면 숱한 아동학대 사건 중 비교적 ‘바람직하게 해결된’ 사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학대 행위자 처벌을 넘어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고 말한다. 학대 행위자 엄벌만으로는 가정에서 되풀이되는 학대의 굴레를 끊기 어렵다. 학대 신고로 수차례 조사를 받은 가정, 학대 전력으로 처벌받은 가정에서도 학대는 빈번하게 재발한다.

2018년 10월 광주에서 친모 B씨가 청소를 하던 중 아이가 누워 있던 이불을 들어올려 생후 1개월 영아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과거에도 아이를 살해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었다. 또 다른 아이의 죽음을 막는 데 무거운 처벌은 능사가 아니었다. 이처럼 학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또 다른 학대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학대 사망 사건 대다수는 작심한 악의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양육 미숙과 아이를 온전하게 키우기 힘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영아의 사망은 학대의 결과인 동시에, 다른 학대의 시그널이기도 한 것이다.

어린 시절 학대·방임 피해의 경험이 ‘학대 위험군’ 가정이 되는 데 영향을 준 사례도 있었다. 2018년 9월 전남 여수에선 20대 부모가 의도치 않게 생후 2개월 된 아기를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부모는 물 온도를 확인하지 않고 아기를 목욕시키다 화상을 입혀 죽음에 이르게 했다. 재판부는 “부부가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청소년기에 정상적 보살핌을 받지 못해 양육능력이 없었다”며 “친부가 연락을 끊었던 친모에게 양육법을 물어보고 예방접종을 하는 등 사정을 볼 때 계획적 범행은 아닌 걸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어린 시절 학대나 방임을 겪은 아이는 양육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부적절하게 대처하는 부모의 모습을 학습할 위험이 있다. 도윤이를 방치한 채 떠난 엄마도 어릴 적 친모의 방임 학대를 겪고 시설의 도움을 받았다. 권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팀장은 “학대를 경험한 아이는 문제 해결과 의사소통 방식을 ‘폭력’으로 배우기 쉽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성인이 됐을 때 문제 해결 방법을 부모에게 배운 대로 사용할 수 있다”며 “아동학대가 대물림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선 피해 아동의 심리적 지원체계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문제는 ‘사건’에만 주목해선 해결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학대를 끊어내기 위해선 학대행위 처벌을 넘어,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기 어려웠던 가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긴밀하게 엮여 있는 사건의 전후를 모두 살펴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 발생 때마다 나쁜 부모를 잡아 처벌하는 방식은 사후약방문”이라며 “장기적인 방지책을 마련하려면 학대·재학대를 낮출 수 있도록 필요한 예방과 치료 서비스를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가해자 처벌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보호받도록 지원하는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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