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채식이 지구를 살린다

주영재 기자

기후위기는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육식 위주의 식문화를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에너지 전환만큼 식단 전환도 중요하다.

“이제 고기를 줄이는 것을 이야기할 때입니다.”(그린피스)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이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을 권하고 있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 1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중 80%가 축산업과 관련되어 있다. 낙농 제품과 계란을 합하면 83%에 이른다. 세계식량기구의 2013년 통계를 보면 가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연간 7.1기가t으로 인위적인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한다.

축산업은 사료를 재배하고, 축사의 온도를 유지하고, 도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축산업은 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2530배에 달한다는 ‘블랙카본’과도 연관이 있다. 블랙카본이 빙하에 내려앉으면 열 흡수를 높여 해빙을 재촉한다. 블랙카본은 열대우림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주로 나온다. 가축의 소화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도 기후위기를 부채질한다. 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56~86배에 이르는 메탄의 30~37%는 축산업에서 나온다.

기상이변은 이제 이변이랄 것도 없는 새로운 정상상태(뉴노멀)가 됐다. 영구동토층이 본격적으로 녹아 그 안에 갇혀 있던 메탄이 대기 중에 나오면 기후변화의 가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과학계는 2020년 올해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정에 도달한 후 그 이후엔 증가 속도만큼 가파르게 감소해야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30년 글로벌 탄소 배출량이 20기가t으로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야 한다는 뜻이다.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과학계와 환경운동 진영은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육식 위주의 식문화를 바꾸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에도 좋고, 동물권을 보호하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채식의 중요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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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 ‘히든카드’

소고기 1㎏을 생산하는 데 7~16㎏의 사료가 든다. 육류 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사료 생산을 위한 경작지 개간을 위해 숲이 불타고 있다. 그린피스와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사라진 열대우림의 70~90%는 축산업 때문이다. 현재 열대우림의 17%가 소실됐다. 지금도 매초 4000㎡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다.

축산업은 전체 농지의 80%를 사용하지만 거기서 인간이 얻는 칼로리는 18%에 불과하다. 나머지 8%의 토지에서 인류가 필요로 하는 82%의 칼로리를 제공하는 식량이 생산된다.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건 식단을 택할 경우 1인당 674㎡의 땅이 필요한데, 육류 위주 식단을 유지할 경우 이것의 18배의 땅이 필요하다. 육류 생산이 얻는 영양분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이다.

축산업을 위한 목초지를 줄이거나 숲으로 되돌리면 탄소 흡수가 늘고, 메탄과 아산화질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네덜란드 환경평가원(PBL)은 2008년 전 세계가 고기를 덜 먹는 식단으로 전환할 경우 2050년까지 예상되는 기후비용의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 스쿨의 마크로 스프링먼 선임연구원은 “현재의 글로벌 식이 지침을 따르는 것으로는 기후안정화(산업화 이후 온도상승폭 2℃ 이내 유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맞추기에 불충분하다”면서 “식품 수요를 감당하고, 전 세계인이 필요로 하는 수준으로 배분하려면 현재의 육식 위주 식단을 비건 수준으로 바꿔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단을 바꾸는 것이 기술을 동원한 감축 옵션보다 더 효과적이고 안전하다”고 밝혔다.

브라질 환경단체 소속 소방대원이 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 아마존 우림에서 산불을 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 환경단체 소속 소방대원이 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 아마존 우림에서 산불을 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월 7일 브라질 마토 그로소 주 시노프 인근의 열대 우림이 개간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육가공업체인 브라질의 JBS는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아마존 열대 지역을 불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고소 이후 개간지에서 소를 사육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월 7일 브라질 마토 그로소 주 시노프 인근의 열대 우림이 개간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육가공업체인 브라질의 JBS는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아마존 열대 지역을 불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고소 이후 개간지에서 소를 사육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이런 관점에서 먹거리 부분을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그린뉴딜에서 제외하는 것은 처음부터 실패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는 “동토층이 녹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지금 더이상 기후위기와의 싸움에서 물러설 곳은 없다”며 “거대한 식단의 전환 없이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한계’라는 개념을 들어 기후위기에 대응한 식단전환을 강조했다. 지구한계는 스톡홀름 복원력센터·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만든 개념으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토지이용 변화, 담수 소비 등의 영역에서 지구를 바람직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위험한계를 과학적으로 수량화한 것이다.

조길예 대표는 “지구한계를 넘지 않으려면 온실가스 감축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인간이 배출한 탄소의 절반을 흡수하는 땅과 바다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축을 위해 탄소를 저장할 숲을 개간하고, 비료를 사용해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을 낮추고, 질소와 인 과부화로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배후에 축산업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기후변화에 맞선 ‘최후의 전장’은 배출량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생물권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옮아가야 한다”는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로 유명한 요한 록스트룀 교수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이 에너지 전환에만 몰두해선 안 되고 최소한 단기전략으로 채식 위주의 식단전환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식단전환을 일종의 ‘히든카드’라고 보기 때문이다. 식단을 바꾸면 에너지 전환에 비해서 더 빠르게 더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후위기 시대, 채식이 지구를 살린다

기후위기 시대의 교양 ‘기후미식’

먹는 일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기업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걸 사적인 영역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공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기후미식’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교양이 되고 있다. 기후미식(klima-gourmet)은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동을 말한다. 지구와 생명, 인류에 책임감 있는 음식 소비이다. 이의철 베지닥터 사무국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지난 9월 23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주최한 포럼에서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굉장히 많다는 점에서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에도 부담을 주지 않고 건강에도 이로운 음식들은 ‘기후미식존’에 포함되어 있다. 견과류, 콩류, 통곡물, 감자, 채소, 과일 등이 해당된다.

이의철 사무국장은 기후미식이 만성질환을 감소시키는 장점도 크다고 덧붙였다. 당뇨병·고혈압·심혈관 질환이나 알레르기 질환, 암, 치매와 같은 질환을 줄여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식물성 식품에서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쌀뿐만 아니라 호밀, 감자, 옥수수, 브로콜리 등의 식품에 단백질이 들어 있어 하루 먹는 양만으로도 필요한 양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채식이 지구를 살린다

단백질 신화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편견을 깰 필요도 있다. 이의철 사무국장은 동물성 단백질에 집착하는 대신 적정 단백질을 섭취하는 ‘멸종저항 영양학’을 강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물성 단백질 공급을 강조해 사람이 먹을 곡식을 소와 돼지에게 사료로 먹이고, 정작 국민에게는 밀가루에 톱밥을 섞어 배급한 독일과 가축 사육을 줄이고 통곡물로 만든 빵을 배급한 덴마크의 사망률 차이를 예로 들었다. 이의철 사무국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40만명 이상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반면 덴마크는 전쟁 중임에도 사망률이 34%나 줄었다”면서 “어떤 종류의 식물성 식품이든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만큼만 공급할 수 있다면 단백질 부족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채식이 기후위기에 효과적인 수단인 만큼 그 정당성을 알리는 활동도 필요하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사법기관이나 인권기관을 중심으로 채식을 윤리적인 실천 혹은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올해 1월 고용심판원에서 윤리적 채식주의를 인정했다. 1993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유럽인권협약에 비건이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드물지만 채식선택권을 의무로 보장하는 사례도 있다. 포르투갈은 2017년 공용매점 및 식당이 의무적으로 채식 메뉴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프랑스는 최근 시범적으로 공립 및 사립학교에서 주 1회 채식 메뉴를 제공하도록 했다. 미국 뉴욕시는 2019년 그린뉴딜의 일환으로 2030년까지 소고기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육가공품을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 교육부는 2018년 교육부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의 식단을 채식으로 바꿨고, 그다음 해에는 암스테르담 정부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 채식을 원할 경우 손을 들고 요구해야 하는 우리와 달리 기본값으로 채식이 제공되는 것이다.

식단 전환 공론화 나서야

국내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양심적 병역 거부로 수감된 이가 교도소 내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며 진정한 사건에서 채식을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장병에게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는 규정도 생겼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에 군대 내 채식 급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진정이 있고 난 후 국방부는 올해 급식방침에 채식 장병을 위한 두유와 김, 액젓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 등을 배급하도록 반영했다. 채식주의 장병에 대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향후 학교급식이나 공공기관 급식으로 채식선택권 보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식단전환을 요구하는 이들은 이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나섰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녹색식생활 실천 및 지원 조례’를 만든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로 채식선택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법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원과 예산 근거가 없을 경우 일선에서 채식 급식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채식선택 급식을 하려면 식단을 두 개로 짜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재료비가 아무래도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조길예 대표는 “법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면 조리사 선생님을 더 고용할 수 있고, 영양 지침을 바꾸면 영양사의 운신폭이 넓어진다”면서 “현장에서 생기는 노동권의 문제나 인식 개선 교육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녹색당을 중심으로 채식 입법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과 동물권 보호 활동가들, 주 1회 채식을 하고 있는 간디학교나 민족사관고 같은 학교의 학생·교사가 참여하고 있다. 우선 학교급식에서 최소 주 1회 채식 급식을 의무화하는 입법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지현영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당사자인 학생들이 직접 채식 급식을 보장하는 법안의 문구를 마련하는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면서 “내용이 구체화되면 기후 관련 기본법안에 포함되도록 국회와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 현장에서의 식단전환 교육도 필요하다. 조길예 대표는 학생들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학생들은 자기가 먹는 먹거리가 나의 건강과 앞으로 살아갈 환경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면서 “기성세대와 교사들은 학생들이 진실을 알 권리를 막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면 학생 스스로 (육식 위주 급식에) 반대할 것이다”면서 “학부모와 학생 교육이 반드시 함께 가야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 변화도 시급하다. 학교급식 지침이나 축산보조금 등 정부가 유무형으로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조길예 대표는 “정부가 농업과 식단의 전환을 에너지 전환과 함께 쌍두마차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최우선 단기전략으로 채택해야 한다”며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의제 안에 식단 전환을 에너지 전환과 같은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은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에 인센티브를 줘 더 저렴하고 적정한 가격에 유통되도록 해야 한다. 채식식당 정보를 제공하는 앱 ‘채식한끼’를 서비스하는 비욘드넥스트의 박상진 대표는 “현재는 채식 인구가 적기 때문에 시장 논리로만 채식 인프라를 구축하긴 어렵다”면서 “채식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채식식당과 제품, 채식 요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식 메뉴를 가려내기 위한 인증제나 채식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을 예로 들었다.

식단 전환을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물 같은 자원을 많이 소비해 생산되는 것에는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해야 한다. 가령 육류 소비에 일종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축산지원 인센티브를 폐지하고, 축산 보조금은 축산 농가의 전환을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는 “돼지열병이나 구제역 등으로 살처분을 당한 농가가 재입식을 하지 않고 다른 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보조금을 써야 한다”면서 “정부부터 육식의 병폐와 기후문제, 동물학대의 관련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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