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는 ‘기후역적’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청소년들이 장혜영을 만난 이유는?

글 이재덕 기자 · 영상 최유진 PD
21대 국회는 ‘기후역적’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청소년들이 장혜영을 만난 이유는?

“이 편지는 스웨덴에서 최초로 시작돼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따라 지구를 여덟 바퀴 돌았으며, 35일 안에 당신 곁을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편지의 지시를 따르면 행운이 찾아오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내린다는 ‘행운의 편지’가 지금 여의도 국회를 돌고 있다. “(책임과 권한이 있는 당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당신의 이름은 ‘기후역적’으로 역사 교과서에 남을 겁니다. ‘석탄 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코앞의 이익만을 챙기려다 환경과 경제를 망친 자’라는 설명이 따라붙을 겁니다.”

행운의 편지엔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고 법제화할 것’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강화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할 것’ 등의 요구사항이 담겼다. 편지를 받으면 요구사항을 이행하겠다는 내용의 ‘인증샷’을 찍고, 다른 의원 3명에게 행운의 편지를 전달해야 한다. 초선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 9월27일 인증샷을 공개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그가 지목한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도 참여했다. 지난 8일까지 임무를 완수한 인원은 32명이다. 많지 않지만 법안 발의에 필요한 10명을 훌쩍 넘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숫자이기도 하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21대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행운의 편지’ | 청소년기후행동 홈페이지 갈무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21대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행운의 편지’ | 청소년기후행동 홈페이지 갈무리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하라’며 21대 국회에 편지를 보낸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도현(왼쪽), 윤현정 활동가가 지난 11월14일 관련 법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장혜영 의원을 찾아 편지 모형을 전달하고 있다. |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하라’며 21대 국회에 편지를 보낸 청소년기후행동의 김도현(왼쪽), 윤현정 활동가가 지난 11월14일 관련 법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장혜영 의원을 찾아 편지 모형을 전달하고 있다. |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편지를 보낸 청소년기후행동의 윤현정(16), 김도현(17) 활동가가 지난 11월14일 장혜영 의원실을 찾았다. 장 의원이 “제게 그 무서운 편지를 보낸 분들이 여러분이군요”라며 이들을 맞았다. 김 활동가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개인적인 실천을 넘어서 힘과 권한을 가진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찾아왔다”고 답했다. 21대 국회는 ‘기후역적’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사진찍고, 줄서고…청소년 눈에 비친 정치인

사실 이들이 만날 기회는 그 전에도 두어번 있었다. 윤현정 활동가는 지난 국감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의 참고인 신청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기후변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일부 산자위 위원들은 ‘너무 어리다’며 거부했고, 일부 기재위 위원들은 ‘청소년을 국감장에 세우면, 형평성에 따라 우리 쪽이 신청한 참고인도 부르겠다’며 맞섰다. 기재위 소속으로 이들을 부른 이가 장 의원이었다. 그는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청소년 당사자가 부총리나 장관에게 질문을 던지면 기후위기를 ‘지금 여기의 문제’로 느낄 것이라고 생각해 참고인으로 부르려고 했지만 무산됐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국감장에 ‘펭수’를 데려오겠다고 그렇게 애쓴 국회의원들이 정작 사람인 우리는 거부하더라. 펭귄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윤현정 활동가는 “국감장에 ‘펭수’를 데려오겠다고 그렇게 애쓴 국회의원들이 정작 사람인 우리는 거부하더라. 펭귄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윤현정 활동가는 “국감장에 ‘펭수’를 데려오겠다고 그렇게 애쓴 국회의원들이 정작 사람인 우리는 거부하더라. 펭귄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대신 윤현정 활동가의 영상편지가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공개됐다. 윤 활동가는 영상에서 ‘사남매에게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미래 세대에게 안전한 미래를 물려주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미래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고 석탄발전소를 유지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기후위기는 2050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땅하고 당연한 미래를 위해 행동하지 않고, 무시하고 짓밟는다면 우리는 더이상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지난 10월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윤현정 활동가의 영상편지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지난 10월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윤현정 활동가의 영상편지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기후위기 국감’을 바랐던 이들은 이번 국감에 아쉬움이 컸다. 관련 질문을 준비한 의원은 소수에 불과했고 관료들의 답변은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했다. 김 활동가는 “다들 우리만큼의 절박함은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장 의원이 말했다.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의원회관만 해도 기후위기 토론회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 있을 정도거든요. 하지만 아는 것과 별개로 진정성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요. 많은 의원들이 기후위기 피해의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인상 깊게 본 청소년 활동가 인터뷰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그레타 툰베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청소년 한 분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국회에 있는 다른 의원들 붙잡고 같은 질문을 던지면 아마 ‘대단하다’라고 답할 거예요. 기후위기가 자신이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길 건너에서 바라보는 것이죠.”

그는 이어 “망가진 미래를 훨씬 더 오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결정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돼 있다”며 “그 우울감을 견뎌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결국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현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선언'에 대해  “2050년은 먼 미래이고, 2050년에 그런 미래를 그리려면 앞으로 30년 동안 하는 일이 중요할텐데 그런 논의보다도, 탄소중립 선언 자체에 무게를 두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언론을 보며 불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김도현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선언'에 대해 “2050년은 먼 미래이고, 2050년에 그런 미래를 그리려면 앞으로 30년 동안 하는 일이 중요할텐데 그런 논의보다도, 탄소중립 선언 자체에 무게를 두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언론을 보며 불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활동가들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길거리에서 많은 정치인들을 만났다고 했다. “기후위기 시위를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정치인들이 다가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해요. 사진 촬영을 거부해도 몰래 찍죠. 그러고는 자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늘 시위를 하는 청소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라며 선거 운동에 이용해요. 동료 활동가는 ‘정치인들이 자신과 사진을 찍겠다며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윤현정 활동가)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총 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Net Zero)’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일에는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활동가들은 ‘탄소중립선언’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김 활동가는 “저희보다 먼저 중국과 일본이 ‘탈탄소 선언’을 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정부가 이 트렌드는 따라가고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2050년은 먼 미래이고, 그런 미래를 그리려면 앞으로 30년 동안 하는 일이 중요할텐데 그런 논의보다도, 탄소중립 선언 자체에 무게를 두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언론을 보며 불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늘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왔잖아요. ‘이번엔 제대로 이행할까’하는 근본적인 불신이 있긴 해요.”

청소년기후행동의 윤현정(왼쪽), 김도현 활동가와 장혜영 의원이 지난 11월14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장혜영 의원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경향신문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청소년기후행동의 윤현정(왼쪽), 김도현 활동가와 장혜영 의원이 지난 11월14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장혜영 의원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경향신문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다른 순간’을 만드는 건 가능할까

대담이 진행된 장혜영 의원실 책장에는 ‘기후위기’ ‘난민’ ‘페미니즘’ ‘비정규직’ ‘성소수자’ ‘장애인’ 등 주제별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대담이 시작하기 전부터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관심 주제들이 상당부분 겹쳤다. 윤 활동가는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비건’으로, 공장식 축산이 온실가스 등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에 심각성을 느끼고 환경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 활동가는 인권 운동, 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하다가 청소년기후행동 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장 의원은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그는 “지난해 여러분들의 ‘결석시위’는 제가 기후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제로 삼게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가 “요즘은 어떤 책을 읽냐”고 묻자, 장 의원은 책장에서 닉 하나우어와 에릭 리우가 공저한 <민주주의의 정원>을 꺼내왔다.

그는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원칙들이 지켜져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스러울 때마다 읽게 되는 책”이라고 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의 덩어리들이 한편으로 존재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 책은 본질적으로 인간은 사회적이고 호혜적이며, 시민 개개인이 네트워크의 교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해요. 사람들의 사고를 자극해서 행동을 이끌어내고, 결국 다른 순간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격려하는 책이죠.”

장혜영 의원은 "21대 국회가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진정성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면서도 "국회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장혜영 의원은 "21대 국회가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진정성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면서도 "국회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 유튜브 '이런경향' 영상 갈무리

행운의 편지에 답한 의원들은 어떻게 ‘다른 순간’을 만들어 낼 생각일까. 장 의원은 “국회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청년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다룰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일 것’이라는 문제의식들이 있어요. 저도 탄소세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요. 기후위기에 대응할 법안을 위해 이 의원들을 ‘콕 집어’ 초대하고 논의 테이블을 만드는 거죠. 함께할 동료 리스트를 잘 만들어가는 게 관건이에요. 결국 정치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

청소년 활동가들은 지난해와 올해 ‘결석시위’를 진행했다. ‘정부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헌법 소원도 청구했다. 이번엔 국회가 타깃이다. 윤 활동가는 “국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안을 만들기 전까지는 계속 국회를 목표로 활동하려 한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국회가 두려움을 느끼도록 청소년기후행동의 적극적인 활동에 저도 열심히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2018년 기후변화 행동그룹인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집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당시 뉴욕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오카시오 코르테스 당선자가 함께했다. 우리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장 의원이 답했다.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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