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광고 사전심의 둘러싸고 의협, 스타트업계와 갈등

주영재 기자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인 ‘강남언니’의 앱 화면 캡처 / 강남언니 제공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인 ‘강남언니’의 앱 화면 캡처 / 강남언니 제공

의료광고 사전심의를 둘러싸고 의사협회와 스타트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의사단체들은 의료광고 사전심의 대상을 확대하고, 심의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과 시행령을 개정해줄 것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의료·미용 분야의 스타트업계는 기존 심의기구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심의대상을 확대하기보다는 자율규제에 맡기고, 불법 의료광고에 대한 사후적 단속과 감독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광고를 하려면 사전에 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자율심의기구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신문과 잡지, 옥외 현수막, 전광판은 모두 사전심의 대상이지만 인터넷 매체는 대통령이 그 범위를 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의료법 시행령은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를 심의대상으로 두고 있다.

■심의제도 사각지대엔 공감, 해법은 달라

의사단체의 심의대상 확대 요구는 지난해 11월 발의된 남인순 의원(민주당)의 의료법 개정안에 반영됐다. 남인순 의원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는 일일 평균 이용자 수와 관계없이 모두 의료광고 사전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의 위임규정을 삭제해 모든 인터넷 매체를 사전심의대상으로 한 것이다. 남 의원실 관계자는 “하루 평균 이용자 수를 객관적으로 집계하기 어렵고, 당해연도에 운영을 개시한 인터넷매체는 포함되지 않는 등 심의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같은 주체와 내용을 대상으로 사전심의를 하는데 현수막을 걸 경우엔 사전심의를 받고 앱으로 광고할 경우엔 받지 않으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남인순 의원 안에 대해 전폭적인 찬성 의사를 밝혔다. 정찬우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피부과 전문의)는 “의료광고의 사각지대가 많아 위법한 의료광고임에도 심의에 걸리지 않고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의료 분야가 플랫폼 업계에 종속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찬우 이사는 의료 플랫폼 안에서 의료기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혹적 내용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많은 의사가 의료법을 지키면서 광고하는데 일부 병원이 덤핑이나 비교광고, 허위과장 광고로 이용자를 확보하면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앱의 활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룰을 지키면서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공감하지만 사전심의 대상의 제한을 없애는 것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검토보고서에는 “자율심의제도의 도입 취지와 광고매체의 특성과 영향력, 자율심의기구 심의업무의 수행능력과 효율성 등을 고려해 사전심의대상의 적정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사전심의 대상을 확대해도 자율심의기구의 사전심의 업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비용을 지원할 경우 헌법재판소가 금지한 행정권이 관여하는 사전검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광고 사전심의 대상이 확대될 경우 타격을 입는 곳은 의료기관 이용 후기를 토대로 이용자와 의료기관을 중개하는 의료 플랫폼 업체들이다. 대표적으로 ‘강남언니’나 ‘바비톡’을 들 수 있다. 2015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한 강남언니의 경우 성형시술 이용 후기를 공유하고, 수술실 내에 폐쇄회로(CC)TV가 있는 곳을 따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최근 국내외 사용자 수 280만명, 월 활성 이용자 수 30만명을 넘으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성형외과의 70% 정도(약 750개)가 이곳에 입점해 있다.

■사전심의 제도운영 내실화부터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 관계자는 “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거나 정보를 투명화해 환자와 전문가 사이의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불법이라고 낙인찍고 있다”면서 “인공지능과 전문가 검수로 의료광고에 포함된 불법적인 요소를 걸러내는 등 자체적으로 광고를 심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자체 검수한 의료광고 건수가 3만5429건으로 이중 37%인 1만3222건을 불법 의료광고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의사 3단체의 자율심의기구가 지난해 8월까지 심의한 건수는 9248건이라 지표상으로는 업체의 자체 검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업계는 내용면에서도 심의기구의 기준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사 3단체와 함께 마련한 의료광고 가이드라인에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치료 전후 사진을 광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정작 의협과 한의협은 치료 전후 사진을 모두 의료광고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제도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광고에 ‘안티에이징’은 허용하면서 ‘항노화’라는 말은 쓸 수 없도록 하고, ‘수분이 부족한 피부’ 대신 ‘건성피부’로 쓰게 하는 등 표현의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광고의 심의 수수료로 최소 5만원에서 최대 50만원을 받는데 이런 수수료 수입 확대를 목적으로 사전심의 대상을 넓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표했다. 이에 대해 정찬우 이사는 “현재까지 심의가 지연된 적은 없다”면서 “심의 건수가 늘면 인력을 확충하거나 업무 효율성을 높여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단체는 사전심의 대상을 확대해도 광고 제작자를 특정하기 어렵거나 구독자 수가 적은 유튜브 채널이나 비공개 카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채널을 통한 음성화된 불법광고를 막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민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은 “의료광고 수요는 크게 늘고 있는데 앱 광고만 규제하면 음성화된 형태로 불법광고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각지대를 양성화한다면 유튜브나 카카오톡 등 물밑에서 이뤄지는 불법광고에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온라인 의료광고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의료광고 심의위원회의 효율적 업무 수행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을 고려해 심의대상에 적정한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입법예고 절차가 시작되면 여러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계획”이라며 “시기 역시 중요한 의사 결정의 하나라 입법예고가 언제 될지 확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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