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아들을, 코로나19 때문에 잃은 아버지가 아들의 1주기에 청와대를 향해 걷는다. 지난달 22일 경북 경산에서 시작해 약 380㎞를 걸어온 고 정유엽군(당시 17세)의 아버지 정성재씨(54)다. 지난 16일 서울에 도착한 정씨는 아들의 기일인 18일 청와대로 향한다.
정유엽군은 지난해 3월18일 영남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리던 정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치료기능이 마비된 병원을 전전하다 폐렴으로 숨졌다. 아들은 병원 문턱에서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와야한다’는 제지에 가로막혔다. 14번의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결과는 음성.
아들의 죽음이 의료공백으로 인한 희생이었다는 점을 인정받기 위해, 그 희생을 의료공공성 강화라는 변화로 이어가기 위해 정씨는 직장암 3기의 몸으로 경산, 김천, 영동, 옥천, 대전, 세종, 천안, 평택, 오산, 안양을 걸어왔다. 23일간 이어져온 정씨의 발자취를 쫓았다.
■천릿길을 따라온 질문 ‘지금 유엽이가 나한테 뭐라고 할까’
지난 1년간, 정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9일 간의 기억을 수없이 꺼냈다. 왜 아들이 코로나19 검사를 14번이나 받아야 했는지, 왜 병원 CC(폐쇄회로)TV는 그렇게 빨리 폐기됐는지, 왜 아들의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한 의료진은 처음부터 부모를 격리하지 않았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당시 상황을 곱씹을수록 는다. 정씨가 도보행진을 시작한 후 쇄도한 인터뷰에서도 그때를 떠올리는 질문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죠. 제 마음 힘든 것보다, 이뤄야할 중요한 목적이 있으니까.” ‘기억을 되짚는 일이 고통스럽지않냐’는 질문에 돌아온 정씨의 답이다.
아픔은 아들을 잃은 기억만이 아니다. 탄원서를 전하러 간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가 꺼낸 ‘유엽이 한 명으로는 사례가 약하다’는 말이 정씨의 마음에 박혀있다.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정당에까지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건 ‘하나의 사례로 전체 의료공백을 문제 삼기엔 힘들다’는 답변이었다.
정씨의 도보 소식이 알려지며 그의 의도를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계 시민사회의 동참을 두고 ‘좌파세력 사회주의자들에게 세뇌·이용당한다’던 극우 유튜브 방송에 정씨는 “유엽이가 겪은 일과 공공의료 확대 필요성을 좀 더 매끄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방송을 접한 후 걷는 내내 머릿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유엽이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걸을수록 단단해진 결심
정씨는 스스로 “정치도, 뉴스도 모른 채 살아왔다”고 소개했다. 경북 경산에서 수학 학원을 운영해온 20여년, ‘공공의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될 줄 몰랐다.
아들의 희생을 알리러 다닌 1년, 그는 의료 공공성 확대를 위한 논리 구성에 골몰하는 사람이 됐다. ‘유엽이 사건과 의료공공성이 무슨 상관이냐’는 비난을 마주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의료서비스는 이윤의 논리에만 맡겨선 안된다고, 특히 코로나19 같은 위기상황에 맞서기 위해선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갖게 됐다.
아들의 희생을 의료공공성의 씨앗이 되게 하겠다는 정씨의 결심은 굳어졌다. 지난달 25일 정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유엽이가 우리 사회를 위해 다시 태어나는 중이라고, 발걸음마다 유엽이 이름을, 희망의 인주를 찍는다고 생각하며 걸었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의 공공의료원을 지나온 다음날인 지난 2일 정씨는 “의료공백이 팬데믹 상황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노숙인 등 평소 소외돼있는 약자들에게는 일상이더라”라며 “의료서비스가 이들을 방치하면 이후 우리 사회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했다. 지난 5일 대전공공의료원 설립운동본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정씨는 “유엽이 일이 개인의 회한이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걸 넘어 우리 사회 의료체계를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직장암 3기 투병 중인 정씨는 하루 평균 16~20㎞의 강행군을 소화했다. 20여일 만에 체중이 줄어 허리띠를 한 칸 당겨맸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소속 의사들이 도보 내내 정씨 곁을 오가며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도 이어졌다. 정씨는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경북 포항에서 끓여 보내준 시래기국이 도보 기간 중 가장 맛있었던 점심이라고 했다. 식사를 위해 사무실을 내준 지역 예비역 전우회나 전동휠체어로 하루 일정을 함께해준 시민을 만났을 때 정씨는 “내가 엄살 부려서 될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 위에서 마주한 진심 어린 사과
지난 10일 정씨는 도보를 하루 쉬는 날에 짬을 내 아들이 묻힌 곳에 다녀왔다. 화이트데이 때문이었을까. 다녀간 친구들이 막대사탕을 줄지어 꽂아두고 갔다. 1년이 돼 가지만, 유엽이 무덤에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코인노래방을 즐겨찾던 아들을 위해 동전을 쌓아두고 가거나, 즐겨먹던 민트 사탕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아빠 서울 가는데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유엽이 니가 좀 도와줘야된대이” 정씨가 묘비 앞에서 한 말이다.
서울 도착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정씨는 “막바지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예정됐던 1주기 추모행사가 방역을 이유로 줄줄이 금지됐다. 18일 청와대로 향하는 도보 마지막날 출발 집결지였던 광화문광장은 정부 불허 조치로 서울역, 서부역을 거쳐 정동사거리로 바뀌었다. 행진은 9인으로 제한됐다. 방역을 이유로 한 연이은 집회 불허를 보며, 정씨는 1년 전 아들을 막아섰던 병원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가라앉는 정씨의 마음을 달랜 것은 한 의사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원장은 정씨와의 간담회에서 ‘우리 병원이 감염병전담병원이 되며 기존 환자분들을 민간병원으로 강제전원시켜야했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솔직히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들의 죽음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 맞닥뜨린 예상 못한 사과였다. 아들이 죽은 후 1년간 숱한 의사와 병원 책임자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한 이는 정 원장이 처음이었다. 일선 병원장이 밝힌 ‘병원은 이윤만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라는 공감대도 정씨에겐 큰 위로가 됐다. 정씨는 “무엇보다 실패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여태껏 받아보지 못한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길 끝에서 아들에게 할 말이 생겼다
아들의 1주년 기일을 하루 앞둔 17일 아침, 정씨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 유엽이 계정이 전부 사라졌어.” 아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이 지워졌다는 소식이었다. 막바지에 더 힘을 내야했지만, 고개가 꺾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정씨는 이번 도보가 “종착점이 아닌 시발점”이라고 했다. 의료공공성 확대를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겠다는 취지다. 아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아직 아빠가 니한테 갈 때가 아닌거 같다. 좀만 기다려줘. 유엽아. 아빠 이거 꼭 해내고 갈게”
정씨는 아들의 사망이 코로나19 의료공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할 수 있도록 진상을 밝혀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렸다. 16일 오후 9시 기준 6921명이 동참한 상태다.
정유엽 사망대책위원회는 오는 18일 청와대 사랑채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 경산 남매지 야외공연장에서 정유엽군 1주기 추모제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