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의 음주수술로 뱃속 아기를 잃은 엄마”라고 밝힌 청원인이 “제 아들을 죽인 살인자 의사와 병원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그간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의 음주가 물의를 빚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자격 정지 1개월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자신을 “5개월 된 딸아이를 둔 엄마”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지난 21일 “이런 일이 없었다면 5개월 된 딸과 아들을 둔 쌍둥이 엄마였을 것”이라며 지난해 충북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겪은 사연을 전했다.
청원인은 당시 “쌍둥이 출산에 능숙한 의사가 있다는 병원이 있다고 해서 M산부인과에 다니게 되었다”며 “36주 1일차에 양수가 터져 아침 7시경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주치의 C가 휴진이라 당직의인 P가 저를 진료하였는데 갑자기 저녁 9시 (쌍둥이 중 아들의) 심작박동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 애는 태어나도 가망이 없겠는데?’ 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며 이후 청원인은 “정신을 잃었고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고 제 아들은 죽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청원인은 당시 주치의 C가 급히 수술실에 들어갔고, 코를 찌를 듯한 술냄새를 풍겼다고 밝혔다. 이어 “수술이 끝나고 비틀거리며 나오는 주치의 C에게 현장에서 경찰관이 음주측정을 해보니 만취상태였다”고 했다. 그는 “경찰관에게 멀리 지방에서 라이딩을 하고 여흥으로 술을 먹었다고 하며 ‘그래요 한 잔 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주치의 C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청원인은 “한 아이의 심작박동이 잘 확인되지 않는 응급상황에서 술이 가득 취해 수술방에 들어온 주치의 C는 저의 아들을 죽여도 상관없다, 아니 죽이고자 생각하고 수술방에 들어온 살인자였다”며 “‘자기가 낮에 수술을 했으면 아들은 살았을 거다’라며 주치의 C가 올 때까지 빈둥거리며 태연하게 병동을 서성이던 당직의 P도 우리 귀한 아들을 살인한 공범”이라고 했다.
청원인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이상 진료와 수술을 못하게 주치의 C, 당직의 P의 의사면허를 당장 박탈하고 살인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게 해달라”며 해당 병원에 대해서도 “영업정치 처분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현재 해당 청원은 100명의 사전 동의를 얻어 관리자 검토 단계에 있다.
경찰도 해당 사안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병원 측은 청원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들의 음주 진료가 종종 발생했다. 지난 2014년엔 전공의가 음주 상태로 의료장갑 착용과 수술장비 소독 없이 3살 아이의 턱 봉합수술을 진행한 사건이 있었고, 2017년에는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투입되는 전공의들이 당직근무 중 당직실에서 음주를 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이들은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음주의료행위 의사 자격정지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음주 의료행위로 적발된 의사들의 처분 내용은 자격정지 1개월에 그쳤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 취소는 일회용 의료기기를 재사용해 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나 정신질환자, 마약 등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의료관계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이 종료되지 않은 자 등에 한해 가능하다.
지난 2019년 20대 국회 당시 ‘의료인의 음주 의료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면허취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여당이 추진 중인 의료법 개정안에도 음주 의료 행위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의료법 위반뿐 아니라 일반 강력범죄로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의사면허 취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