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습니다! 인형 팔아 적자 메워야죠"…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인형팔러 나온 사연읽음

류인하 기자
서울교통공사는 1일 만우절 행사로 5호선 광화문역 대합실에서 지하철 마스코트 ‘또타’와 에코팩을 판매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도 이날 판매행사에 참석했다. 류인하 기자

서울교통공사는 1일 만우절 행사로 5호선 광화문역 대합실에서 지하철 마스코트 ‘또타’와 에코팩을 판매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도 이날 판매행사에 참석했다. 류인하 기자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지하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긴 줄이 늘어섰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를 비롯해 고등학생, 대학생, 할머니, 일반 시민들까지 길게 늘어선 줄 뒤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개찰구로 올라가는 지하 3층 대합실 곳곳에는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내일은 지하철이 멈출 지도 모릅니다’ ‘시민 여러분, 지하철을 도와주세요’ 등의 글이 적힌 검은 현수막이 붙었다.

서울교통공사는 1일 오후 2시부터 서울지하철 캐릭터인 ‘또타’ 인형과 에코백 판매행사를 벌였다. 광화문 인근 주민인 김행자씨(64)는 노란조끼를 입은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을 붙잡고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공사 직원의 설명을 들은 김씨는 “무슨 큰 일이 난 줄 알았다”며 “저 인형이 유명한 인형이예요?”라고 물었다.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인형팔아 적자 메우기’ 행사는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교통공사가 기획한 깜짝 이벤트다.

서울교통공사 캐릭터 ‘또타’.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서울교통공사 캐릭터 ‘또타’.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도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낀 채 물건을 사러 온 시민들에게 인형과 에코팩을 팔았다. 인형은 5000원, 에코백은 1만원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행사는 방역수칙에 따라 발열체크, 위생장갑 착용 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용산철도고 김민혁군(1학년)은 “교통공사 유튜브를 보고 오늘 인형 판매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지하철 적자가 심각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돕고싶은 마음에 ‘또타’를 사러 왔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군 외에도 철도고 학생 5명이 함께 와 인형을 구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판매행사가 있다는 것을 보고 구입하러 왔다”며 “매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또타 캐릭터도 알고 있었고 기회가 돼서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또타 인형을 구입한 뒤 자켓 속에 소중히 품고 돌아갔다.

서울교통공사가 이번 깜짝 이벤트를 진행한 이유는 코로나19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누적적자액이 1조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교통공사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무임수송 손실분을 국비로 보전해 줄 것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사실상 벽에 부딪힌 상태다.

공사 관계자는 “공사채 발행 등을 통해 손실금액을 계속 메우고 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발생으로 승객이 대폭 감소하면서 당기순손실 규모가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공사의 당기순손실은 지난해 1조 1138억원으로 2019년 5865억원 대비 89.9%가 증가했다.

재미있게 ‘인형이라도 팔아서 적자를 메우겠다’는 취지로 만든 이번 이벤트는 사실상 교통공사의 절박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행사인 셈이다.

서울교통공사는 1일 만우절 행사로 5호선 광화문역 대합실에서 지하철 마스코트 ‘또타’와 에코팩을 판매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도 이날 판매행사에 참석했다. 류인하 기자

서울교통공사는 1일 만우절 행사로 5호선 광화문역 대합실에서 지하철 마스코트 ‘또타’와 에코팩을 판매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도 이날 판매행사에 참석했다. 류인하 기자

현재의 누적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단기적인 방법은 수송요금 인상이다. 수송요금 100원 인상시 약 1000~1500억원의 적자 개선이 가능하며, 장기 누적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적정선은 약 250~500원 수준이다. 그러나 지하철 요금은 5년째 동결상태다. 공사측은 “요금인상은 공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도시철도법에 따라 서울시의 결정이 필요하지만 요금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정치적 논리 때문에 계속 동결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교통공사는 20대 국회에서 무임서비스 손실비용을 정부가 보전을 해주는 내용의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사위 계류 중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교통공사는 21대 국회도 법안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출자금 지원, 공사채 발행기준 완화 등을 서울시에 요구해나가기로 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시민들은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어려움을 이해하고, 저희 역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좀 더 다가가는 서울교통공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또 “무임승차분 보전 방식 외에도 다양한 지원을 통해서도 지하철 손실을 보전할 방법은 있다”며 “세계의 모든 지하철이 요금으로만 운영되지 않는 만큼 정부가 합리적 틀을 마련해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지하철 만들기에 동참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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