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Z세대 "잃을 수 없는 10년, 목숨을 걸었다"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한 미얀마 Z세대 청년들 . Mayco Naing 제공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한 미얀마 Z세대 청년들 . Mayco Naing 제공

“어머니,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오랫동안 슬퍼하지 마세요. 미얀마 시민의 주권을 얻으려다 죽었으니 자랑스러워해 주세요.”

미얀마의 젊은 의사 티하 틴 툰(27)은 지난 3월 27일 거리시위에 나서기 전에 ‘사전 유언장’을 썼다. 이날은 군부가 정한 ‘국군의 날’이었지만 원래는 1945년 일본에 맞서 무장항쟁을 시작한 ‘저항의 날’이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지 55일째였던 이날, 미얀마의 무수한 젊은이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하루 동안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티하 틴 툰도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

“수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는 것을 너희들도 봤을 테니 이제 정신 차려라.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티하 틴 툰이 사망한 날, 군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이런 발표를 했다. 발표문 제목은 ‘미래를 다스리는 미얀마 청년, 뉴제너레이션들에게’였다. 도도한 저항의 물결을 바로 Z세대가 이끌고 있음을, 다름 아닌 군부가 인정한 셈이다.

미얀마의 1990년대생들은 지금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용기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한국에 있는 미얀마 청년들은 이런 질문에 거침없이 답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미리 나눈 ‘작별인사’

한국의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마웅(26)에겐 두 살 터울의 ‘절친’이 있다. 이름은 한린퉁(28). 2년 전 한국에 와서 힘겹게 적응하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페이스북으로 영상통화를 하던 친구다. 마웅은 버스에서 졸다 정류장을 놓쳤을 때도 무작정 한린퉁에게 전화해 “나 어떡해”를 외치곤 했다. 그럴 때면 친구는 이렇게 그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한달 전 그 친구가 마웅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나 없어도 잘살아야 해.” 마웅은 전화통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후 친구와 연락이 자주 끊겼다. 군부가 인터넷 통신망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던 직장인인 한린퉁은 늘 시위대 맨 앞에 선다고 했다. 최근엔 군부에 쫓겨 피신한 상태다.

한린퉁만이 아니다. 공무원·선생님인 마웅의 언니, 오빠들도 ‘시민불복종(CDM)’에 참여하며, 무기한 파업 중이다. 공무원들의 집주소는 군부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집에 숨어 있는 형편이다. 얼마 전 아버지는 전화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죽더라도, 너는 안전하니까 돌아오지 말라고….” 애써 담담하게 얘기하던 마웅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군부 쿠데타는 뷰티 인플루언서도 ‘투사’로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64만명, 페이스북 팔로워가 136만명에 이르는 미얀마 양곤의 한나유리(28)는 ‘뷰티’에 관심이 많았다. 화장품 사용 후기나 화보로 채워져 있던 그의 SNS는 쿠데타 이후 ‘민주화 염원’의 공간이 됐다. 이제는 시위 사진과 군부 비판글이 빼곡하다.

한나유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영향력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초기부터 집회에 참여했다. 다수의 영화감독과 연예인들이 이런 마음으로 시위에 앞장섰다. 이들 중 6명에겐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한나유리 역시 집회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집회에서 부상까지 당했지만 온라인에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월 27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타케타 지역에서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대가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무력진압에 나선 군경과 맞서고 있다. ‘미얀마 국군의 날’인 이날 쿠데타 규탄 시위대에 군경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3월 27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타케타 지역에서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대가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무력진압에 나선 군경과 맞서고 있다. ‘미얀마 국군의 날’인 이날 쿠데타 규탄 시위대에 군경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Z세대가 이끄는 싸움

1990년대생들이 군부와의 싸움 ‘최전선’에 있다는 사실은 사망자 통계로도 확인된다. 3월 31일까지의 추정 사망자는 550명(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와 현지매체 DVB뉴스 종합)으로 그중 16~25세가 32%에 이른다. 26~35세는 24%다. 22%는 연령대가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다. 유엔의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 톰 앤드루스는 3월 11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사망자는 최소 70명(당시까지의 추정)이며 그중 절반이 이상이 25세 이하였다”고 밝혔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 유학생들은 “(현지 청년들이) 시위대 맨 앞에 서서 다른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를 공통적으로 했다. 한마디로 군부의 총칼 앞에 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 중인 수윈라이(26)는 시위에 나섰던 친구의 경험을 들려줬다. “군인이 쫓아와 도망가다 어느 집에 들어갔대요. 집주인이 파자마를 주면서 입으라고 했대요. 군인이 오면, ‘내 딸이다’, ‘내 아들이다’ 이렇게 말해주기 위해서요. 군인들이 근처 가정집을 일일이 찾으러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의사 티하 틴 툰(27)이 숨진 후 가족은 유언장을 공개했다(좌). 오른쪽은 티하 틴 툰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의 모습. | 익명의 미얀마인 제공

의사 티하 틴 툰(27)이 숨진 후 가족은 유언장을 공개했다(좌). 오른쪽은 티하 틴 툰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의 모습. | 익명의 미얀마인 제공

미얀마 청년들이 시위를 이끄는 동안 8888항쟁과 샤프란 항쟁(2007년)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미얀마 유학생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묘사는 갈렸다.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심하라고 얘기해주고 있다”고 말하는 유학생도 있었지만 “어른들은 겁이 많다”고 표현한 청년도 있었다. 긍·부정 평가는 갈려도, 기성세대 다수가 적극적이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성세대의 ‘무능’에 분명하게 분노를 드러내는 청년들도 있었다. 통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미얀마인 강선우씨(본명 웨 노에 흐닌 쏘·35)는 “40·50세대는 시위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재야 정치인, 시민단체 지도자, 종교지도자 한명도 안 나온다. 거기에 대한 분노도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제일 배신감을 느끼는 대상은 (군부 쿠데타에 잠잠한) 스님들”이라고 했다.

Z세대와 기성세대의 차이는 구호에서도 드러난다. 젊은이들은 이제 더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나 NLD(민주주의민족동맹)에 의지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헌법을 개정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강선우씨는 “우리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돌아와 군부와 협상하라’는 구호를 내세우지 않고, 그런 구호가 더는 통하지도 않는다”며 “반복되는 쿠데타를 보면서 지도자 석방이 아니라 현행 헌법 폐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2008년 군부 독재 당시 미얀마의 헌법은 군부가 언제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를 장악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2015년 아웅산 수치의 NLD가 집권했지만, 군부와의 ‘연정’에 가까웠다. 아웅산 수치와 NLD는 8888항쟁 이후 늘 저항의 중심에 있었지만 “시민사회를 조직하고 대안세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과 노력이 부족했다”(외국어대 장준영 교수)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고 있는 흘라민툰(38)은 “이제 NLD에 기대는 것보다는 헌법을 바꿔 아예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라면서 “(NLD 아니라) 다른 당이어도 좋다. 지금 헌법이라면 미얀마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한 미얀마 Z세대 청년들 /Mayco Naing 제공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한 미얀마 Z세대 청년들 /Mayco Naing 제공

■민주화 이행기에 자란 ‘Z세대’

미얀마의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태도가 크게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의 미얀마인 유학생들이 자신들이 ‘민주화 이행기’에 자라난 세대라는 점을 꼽았다. 서구의 경제제재를 받아오던 미얀마 군부가 2011년 민간 정부에 정권을 이양한 후 미얀마는 빠르게 개방됐다. 특히 Z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접했고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2015년 이후(아웅산 수치의 NLD 집권 후)엔 인터넷에 정부의 잘못된 점을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요.”(흐무떽·27)

나아가 이들은 해외 소식을 쉽게 접하며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하다. 자신들이 관심있는 분야에서 이런 양상은 더 두드러진다. 그간 미얀마의 K팝 팬들은 각국의 팬들과 SNS로 소통해 왔다. 그들은 이제 이 창구를 통해 미얀마의 소식을 퍼나르고 있다. 과거 ‘폐쇄국가’ 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전파력이다.

이런 특징은 미얀마뿐 아니라 홍콩, 태국에서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젊은 세대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이대선 다이얼로그차이나 한국대표는 “홍콩 청년들의 시위를 태국 청년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봤고, 태국 청년들의 시위를 미얀마 청년들이 실시간으로 봤다. 그런 영향이 오갔기 때문에 ‘밀크티동맹’도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밀크티동맹은 홍콩, 대만, 태국의 네티즌들이 만든 민주주의 연대 운동이다.

한마디로 미얀마의 Z세대는 국경을 초월해 ‘세계 시민’과 접속하는 법을 알고 있다. 인터넷과 SNS가 이들의 ‘무기’인 이유다. 미얀마 청년들은 텔레그램 등으로 서로의 시위 현황을 공유하고, 페이스북으로 세계에 알린다. 군부가 인터넷 통신을 끊거나 제한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나름대로 대안을 찾아내고 있다. 수윈라이는 “많은 가정집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없앴다”고 전했다. 태국 유심칩을 이용해 우회접속을 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을 때는 블루투스 기반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로 소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기성세대는 8888항쟁과 샤프란 항쟁의 실패로 ‘패배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수윈라이는 “어른들은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겁이 많지만 10대들은 민주주의를 조금은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안다”면서 “민주주의가 눈에 보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면 북한, 이기면 한국’이란 얘기가 청년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흐무떽은 “군부를 따르겠다는 소수의 사람을 두고 북미얀마, 나머지 모두를 남미얀마라고 (우스개로) 얘기할 정도”라고 했다.

29일(현지시간) 태국 매홍손주(州)의 살윈 강기슭에 최근 미얀마 군부의 공습을 피해 국경을 넘은 카렌족 난민들이 짐을 챙겨 모여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태국 매홍손주(州)의 살윈 강기슭에 최근 미얀마 군부의 공습을 피해 국경을 넘은 카렌족 난민들이 짐을 챙겨 모여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무고한 희생, 언제까지…

초창기 Z세대의 시위는 역발상과 유쾌함이 공존했다. “젠장 또 시작이냐(Ah shit, here we go again)”(‘그랜드 테프트 오토’라는 게임에서 나온 유명한 밈)와 같은 피켓이 다수 등장하는가 하면, 여성혐오적 관습을 역이용해 군경을 골탕먹였다. 터메인(여성 전통치마) 밑을 지나면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을 활용해 빨랫줄에 터메인을 걸어놓는 식이었다. 평화시위에선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쿠데타 닷새 만에 양곤에서 처음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나선 이는 ‘마 에이 띤자 마웅’(27)이란 여성 정치인이었다. 가장 치열하게 파업에 나선 것도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봉제업계였다.

그러나 군부가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시위대도 점차 전투적으로 변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고 사제 가스총을 만드는 식으로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려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 청년들 사이에서는 “집 앞에서 노는 애까지 죽이는 사람들(군부)을 향해 우리들의 열정만으로 싸우긴 힘들다”(윤쉐진·25)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유학생은 “따닌타이같이 (소수민족) 반군이 있는 지역에선 반군에 입대하는 청년들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얀마 임시정부(CRPH)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힘을 합해 연방군(Federal Army)을 창설할 계획을 밝히고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내전’ 가능성이 커지는 고국 현실에 미얀마 청년들은 괴로움을 토로했다. 해외에 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국제사회에 연대와 관심을 호소하는 것밖에는 없다. 흘라민툰은 “우리가 다 싸운다 해도 국내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했다.

당장 우리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연대’는 뭘까. 이대선 대표는 ‘미얀마 난민’ 얘기를 꺼냈다. 그는 “전투기가 뜨고 수류탄이 날아와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태국 경찰에게 진압을 당했다”며 “인도적 차원에서 태국 국경에 난민캠프가 설치될 수 있도록 힘을(여론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현지매체 이라와디와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카렌주에서 1만명이 넘는 미얀마 카렌족이 태국으로 향했으나 2000~3000명은 태국이 돌려보냈고, 8000명가량은 숲속에 피신한 상태다. 인도 역시 국경 책임자들에게 ‘난민캠프를 열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는 등 난민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는 최근 한국의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찾아 국경에 ‘난민캠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소식에 관심을 갖는 것도 미얀마인들에겐 힘이 된다.

간단하게는 세 손가락 인증샷도 도움이 된다. 재한미얀마청년연대는 ‘koco2co@gmail.com’으로 인증샷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보낸 인증샷은 미얀마어로 번역돼 1일 1명씩 해당 단체의 SNS에 공유된다. 이들은 “우리의 목소리가 끊기지 않도록 1분만 시간을 내달라. 총과 돈보다는 연대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더 위대함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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