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임명제청' 천대엽 부장판사…이전 판결 살펴보니

전현진 기자
대법관 후보로 임명제청된 천대엽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대법원 제공

대법관 후보로 임명제청된 천대엽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대법원 제공

오는 5월 퇴임하는 박상옥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제청된 천대엽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57)는 법리에 밝은 정통법관이다. 2004년부터 2006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재판연구관은 대법원 상고사건을 연구해 대법관에게 검토결과를 보고하는 직책이다. 재판연구관들은 법률심인 상고사건을 다루기에 법리에 능통한 법관들이 맡게 되고,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며 법리해석의 깊이는 더 깊어진다.

천 부장판사는 일선 법원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사건을 다뤘다. 2013년 지적장애 아동에 대한 강제추행 사건을 맡아 피해자의 인지적 특성을 감안해 진술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어도 주요 피해 부분에 대한 일관된 진술 및 객관적 정황을 토대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 판결과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의 내곡동 자택 부지 매입 의혹 사건에서 이씨의 아들이 부담해야 할 사저 부지 매입 비용을 경호처가 떠안도록 한 대통령실 경호처장에게 배임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인 판결로 꼽힌다. 천 부장판사가 합의부 재판장을 맡았던 사건 중 잘 알려지지 않은 3건을 꼽아 판결문을 살펴봤다.

■7세 여아가 귀여워 안아준 40대 남성, 강제추행 해당될까

천 부장판사는 2012년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제추행) 사건을 판결했다. 이 사건은 2011년 10월 서울 성북구 종암동 한 아파트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7세 여자아이가 대답하는 모습이 귀엽다며 양팔로 피해자 어깨를 껴안고 볼에 입술을 스치는 등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은 40대 남성이 피고인이었다.

피고인은 “여자아이가 대답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가볍게 안아주었을 뿐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했다. 검사의 공소요지의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추행할 의도는 없었으니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피해자와 같은 아파트에 있던 마트의 종업원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파트로 물품을 배달하면서 피해 아동을 자주 목격한 적이 있었고,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 친근감의 표시로 이야기를 건네다가 예정된 1층에서 내리면서 대답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이유로 잠깐 몸을 굽혀 피해자를 껴안고 볼에 입술이 스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아내와 대학생 자녀 둘을 둔 47세 가장으로 성범죄 전력도 없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상대로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행동한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가 많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인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로부터 격리된 엘리베이터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성인 남자에게 기습적인 신체 접촉을 강제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나이 어린 아동을 상대로 한 이와 같은 가벼운 수준의 성인들의 애정표현 행위가 과거 친분관계 없는 사이에서도 사회적으로 큰 비난없이 행해진 바 있었다 하더라도 아동의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 형성을 존중하는 최근 사회 일반의 인식과 이를 토대로 한 이 사건 법의 보호법익,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범행의 구체적인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달리 평가할 수 없다”며 피고인 주장을 배척했다.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이라는 판단은 내렸지만 처벌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재판부는 “범행은 어린 아동을 상대로 밀폐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가운데 이루어져 피해자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못한 면이 있음은 분명하다”면서도 “피고인은 성적 추행의 동기나 목적이 없었음을 주로 다투고 있을 뿐 자신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부적절한 것임은 시인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또 “범행의 동기 및 내용에 비춰 법정형에 따른 벌금형의 부과는 과도한 처벌이 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는 개전의 정상이 현저하고, 이번에 한하여 그 형의 선고를 유예함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최종 판결은 벌금 1500만원 선고유예였다. 검사는 항소했지만 서울고법에서 기각해 확정됐다.

2013년 7월1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배수지에서 하수관 부설 작업을 하던 7명이 수몰되는 사고가 발생해 실종소방관 등 관계자들이 실종자들에 대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3년 7월1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배수지에서 하수관 부설 작업을 하던 7명이 수몰되는 사고가 발생해 실종소방관 등 관계자들이 실종자들에 대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량진 지하 공사 7명 수몰사고’ 어떤 책임?

2013년 7월15일 닷새 간 쏟아진 장맛비의 영향으로 한강물은 크게 불어났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1동 한강대교 남단에선 ‘올림픽대로 상수도관 이중화 부설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날 오후 5시쯤 한강물 6t 가량이 작업 현장으로 밀려 들면서 노동자 1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경찰과 소방당국, 서울시 등이 합동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들은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사고는 계속된 폭우로 한강물이 불어나면서 발생했다. 공사구간 중 한강둔치 쪽에 뚫려 있는 길이 9m·너비 12m·직경 2.2m의 공사현장 터널에 한강물이 범람해 들어와 빚어졌다. 당시 ‘장마 및 한강 홍수에 대비한 수방대책’으로 터널 내부에 철판으로 만든 차단막을 설치하기로 했는데, 이 차단막이 파손되면서 작업현장으로 밀려오는 물을 막을 수 없었다. 사고 당시에도 차단막이 파손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현장소장 등은 ‘작업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전화만 하는 등 소극적인 조치만 취했고 결국 사고를 막지 못했다.

천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이 사건의 1심 재판을 맡았다. 당시 하도급사와 시공사 현장소장, 책임감리관, 발주처인 공사관리관 등 4명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2014년 1월 선고에서 하도급사 현장소장 A씨에 대해 “사고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차단막의 부실시공에 1차적인 책임이 있었고, 공사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추가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그러나 아무런 안전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공사를 감행하였다. 피고인의 과실은 인명사고를 야기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에서 책임이 가장 무겁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선고하며 “이 사건은 위험한 작업 환경 하의 현장 관리자들의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인재(人災)로서 그 주된 책임자에 대한 응분의 처벌로써 향후 그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실형이 선고된 것은 1명 뿐이었다. 재판부는 시공사 현장소장 B씨에 대해선 “원청 현장소장으로서 공사 현장 전체에 대한 재해 예방 및 안전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며 “수해 발생이 임박한 위험한 시기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현장을 이탈한 후, 수몰 중인 현장 상황을 보고 받고도 공사현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명백하고도 구체적인 대피 지시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미흡하게나마 대피 지시를 내렸다고 볼 여지가 있는 등 안전조치 의무를 일부나마 이행했고, 의무 위반의 정도가 A씨보다 상대적으로 경미하며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책임감리관 C씨에 대해서는 “공사장 내 안전사고를 방지할 총괄적인 책임이 있다”며 “사고 발생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차단막의 구조와 안전성에 대한 검토 없이 설치를 승인하였고, 사고 당시 형식적인 보고만 한 채 한강수위나 방류상황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사고 발생 직전 미흡하긴 하지만 현장에서의 주의를 촉구하는 취지의 전화를 했고, 재판 도중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했다”며 금고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발주처인 서울시 상수도관리본부 공사관리관 D씨는 “공사 현장의 안전에 대한 구체적 사안을 실질적으로 감독할 책임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당시 산업안전보건법과 업무상과실치사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없었다. A·D씨와 검찰은 항소했지만 서울고법에서 기각됐다.

2017년 9월 해군 함정이 북한의 해상도발에 대비해 5일 동해에서 함포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9월 해군 함정이 북한의 해상도발에 대비해 5일 동해에서 함포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타·가혹행위로 스스로 목숨 끊은 군인…‘보험금 지급’ 뒤집힌 판단

1996년 해군 해난구조대 부사관으로 입대해 근무하던 김현욱 하사는 외출을 다녀온 1998년 7월25일 오후 10시40분쯤 해군 광양함 내 창고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 하사 유족들은 그가 타살됐다고 주장하며 1997년 가입된 생명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시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2004년 패소가 확정됐다.

10년 쯤 지난 뒤인 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 하사가 군복무 중 일상적으로 구타 및 가혹행위에 노출됐고, 사망 직전에도 구타와 가혹행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견딜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유족들은 2012년 12월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순직확인을 통보받았다.

순직확인서를 받아든 유족들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김 하사의 사망이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며 이는 보험계약상 보험금 지급의 면책사유에 해당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통상적으로 생명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1심 재판부는 그런 통념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재판부는 “김 하사가 구타·가혹행위를 당한 후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스스로 사망하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구타·가혹행위는 사실로 봤지만 김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전후의 인과관계를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다.

유족은 항소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천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았던 부산고법 민사합의부였다. 2심 재판부는 2015년 4월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김 하사가 후임 부대원들 앞에서 행해진 구타 가혹행위로 인해 극도의 모멸감과 수치심 등을 느꼈다고 판단했다. 또 해군특수부대와 해군 함정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근무하면서 바로 위 선임과의 극심한 갈등상황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게 했다며 김 하사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봤다. 김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보험금 지급 사유인 재해에 해당하고, 자유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의 자해행위는 보험사의 면책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구타·가혹행위에 의해 자살에 이르렀음을 인정했으니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도 진상규명위 결정 당시여야 한다는 보험사의 주장도 배척했다. 유족들이 김 하사의 죽음이 순직에 해당된다는 것을 인지한 2012년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해석해야 맞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은 유족들이 다른 사망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민원과 소송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진상규명위원회 결정 이후 유족들이 앞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으며, 김 하사가 자유의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사망하였음이 공적으로 인정된 순간에 이르러야 보험사고에 해당하는지가 객관적으로 분명해졌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2심 재판부는 “자살이라는 전제는 유지되면서 사망과 연관된 구타 및 가혹행위가 추가로 밝혀진 것에 불과한 경우까지 보험금청구권자가 피보험자의 사망이 보험사고인 재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보험금청구권자에게 너무 가혹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유족들이 보험사고에 해당하는 재해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은 단순 자살로 종결한 군당국의 유권해석 때문이기에 이러한 유권해석을 공식적으로 재심사하고 번복한 군당국의 순직확인 시점에 이르러서야 보험금청구권행사의 장애사유가 제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2심 재판부의 결정은 대법원에 가서 다시 뒤집혔다. 2015년 9월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김 하사의 죽음이 보험사고인 재해에 해당하는 것은 맞지만, 보험청구권의 시효는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부터라고 판단했다.

진상규명위원회 결정으로 보험사고의 발생이 객관적으로 확인됐으며, 김 하사 사망에 대해 순직확인이 있어야만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김 하사의 유족들은 2016년 1월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소송비용을 보험사와 유족이 각자 지불하는 것으로 한 부산고법의 화해권고 결정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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