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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여성 창업 공간 ‘스페이스 살림’ 건물 1층. 유리에 빨간 글씨로 ‘피리어드’(period·월경)라고 적힌 가게가 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여성들이 평소 검은 봉지에 숨겨서 담기에 급급한 생리대와 각국에서 건너온 60여개 월경컵 등이 전시돼 있었다.

남들을 의식해 ‘월경’ ‘생리’ 대신 ‘마법’이나 ‘그날’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다. 소셜벤처 기업 이지앤모어가 지난 1월8일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월경상점’이다. 일반 가게와 달리 이 상점에는 “DO TOUCH”(직접 만져보세요)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직접 상품을 써보고 현장에서 경험담을 공유해주는 ‘월경 에디터’도 상시 근무 중이다. 상품 문의를 주저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별 사용 후기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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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은 신혼부부, 대학생 커플, 중년 여성,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피부에 직접 닿거나 몸 안에 넣는 상품인데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로는 한계가 있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동행한 박모씨(28)는 “평소 여자친구가 월경을 할 때마다 힘들어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 보조제가 있는지 알아보러 왔다”며 “월경을 지금보다 건강하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딸의 손을 잡고 온 사람도 있었다. 김모씨(40)는 “초경을 시작한 딸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왔다. 딸이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면서 “다양한 용품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벽면에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는 60여개의 월경컵이 전시돼 있다. 김은성 기자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월경상점’ 벽면에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는 60여개의 월경컵이 전시돼 있다. 김은성 기자

이 상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다양한 모양의 월경컵이 전시돼 있는 빨간 벽면이었다. 인체에 무해한 실리콘으로 만든 월경컵은 질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는 제품으로 한국에서는 2017년 12월부터 판매가 허가됐지만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월경컵은 일회용품과 달리 인체에 부작용이 적고 쓰레기도 덜 발생시킨다.

이곳은 처음에 호기심에 들른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추천 글을 올리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안지혜 대표(36)는 “인근 주민들이 주변을 오가면서 들르다가 이제는 SNS를 보고 인천이나 강원 등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온다”면서 “20~3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홀로 방문해 여자친구를 위해 선물을 사가는 남성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점 수익금 일부는 포인트로 적립돼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월경용품 구매에 사용된다. 또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온라인 강좌 운영에도 쓰일 예정이다. 안 대표는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파동 이후에도 사회상이 크게 달라진 게 없고, 월경용품이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역시 부족하다”면서 “월경을 단순한 생리현상으로 보는 것을 넘어 건강권으로 인식해 사람들이 이번 월경은 어땠는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김은성 기자 kes@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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