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 모양’은 다 남성 혐오?…누구를 위한 논쟁인가

강한들·김혜리 기자

책 한 권의 두께를 손가락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집게 모양을 만들 겁니다.

최근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런 모양이 담긴 특정 웹 홍보물을 ‘남성 혐오’라 부르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해당 기업, 공공기관은 줄지어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중심이 된 손가락 모양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물건을 집는 흔한 모양입니다. 과도하게 상징을 끼워 맞췄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와중에 일부 정치인은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습니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혐오 논쟁’으로 젠더 의제에 부정적 프레임이 씌여질 수 있으며, 현실의 차별과 폭력은 그 사이 잊혀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성계는 젠더 갈등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것이 20·30대 남성의 삶에도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편의점 GS25의 캠핑 관련 이벤트 포스터. 오른쪽 상단의 집게손 모양을 두고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남성 혐오’라는 문제를 제기해 현재는 포스터가 삭제됐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페이스북 갈무리.

편의점 GS25의 캠핑 관련 이벤트 포스터. 오른쪽 상단의 집게손 모양을 두고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남성 혐오’라는 문제를 제기해 현재는 포스터가 삭제됐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페이스북 갈무리.



■들불처럼 번지는 ‘남성 혐오’ 논란

지난 3일 편의점 GS25가 캠핑 관련 이벤트 포스터와 관련해 사과문을 냈습니다. 포스터 속 집게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내포한 이미지라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에펨코리아·보배드림 등의 남초 커뮤니티에서 해당 이미지가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며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한 손 모양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 역시 지난달 26일 공개한 ‘무신사 X 현대카드 물물교환’ 이벤트 홍보 포스터 속 집게손 모양으로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몰매를 맞았습니다.

두 기업 모두 혐오 표현을 내포한 이미지를 사용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하며 포스터를 수정했지만,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GS25 편의점 제품들을 불매하자는 게시물이 연이어 올라오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GS25와 해군의 PX 계약을 전면 철회해달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해당 국민청원은 4일 오전 11시 기준 사전 동의 인원이 5만7000여명에 달했습니다. 각종 기업들이 남성 혐오적 이미지를 사용한 전적이 있는지 색출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불똥은 서울지방경찰청에도 튀었습니다. 지난달 중순 게시된 홍보물에 비슷한 손가락 모양이 들어가 ‘남성 혐오’라는 지적이 일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오해’라고 일축했습니다. 해당 카드 뉴스가 민간 홍보업체에 의뢰하여 제작한 것이며, 집게손 모양은 카드뉴스 페이지를 넘기는 부분 등을 강조하기 위해 삽입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어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이 일어나니 기업·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웹 홍보물을 철회했습니다. 그러자 남초 커뮤니티는 ‘우리가 문제 제기하면 바뀐다’는 성취감을 바탕으로 더욱 열성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4일 남초 커뮤니티를 둘러보니 “당장 gs 리테일 주식이 전주에 비해 6.8%나 떡락했다” “드디어 SBS 입갤”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GS25 불매 방법을 홍보하는 영상도 게시됐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GS25 불매 운동을 ‘인증’하고, “GS25 가는 남자는 남페미 배신자로 몰아가니 효과가 괜찮다”며 다른 사람들까지 동참시킬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또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을 공유해 “새로운 장작 가져왔습니다. 논란 오래 가야지”라며 논란을 더 키우고자 했습니다.

남초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게재된 GS25 불매 장려 이미지.

남초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게재된 GS25 불매 장려 이미지.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게재된 GS25 불매운동 홍보 영상.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게재된 GS25 불매운동 홍보 영상.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게시물.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게시물.

■퍼지는 들불에 기름 붓는 정치

이번 논란의 시발점은 정치권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시장을, 22.2%가 박영선 전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표심의 큰 격차에 놀란 정치권은 부랴부랴 ‘이대남’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병기·김남국 의원이 군 가산점제나 채용 시 군 경력 인정 등 남성의 군 복무에 대한 보상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김남국 의원의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론화해보려 한다”는 발언이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현 정부의 내각 30% 여성할당은 실력자를 기용하지 않는 수치적 성평등”이란 발언은 젠더 갈등이란 불씨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할 정치인들이 지지층 확장을 노리며 논란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모습은 이번 GS25 ‘남성 혐오’ 논란에서도 목격됐습니다. 이준석 전 위원은 GS25가 아르바이트생 채용 공고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선 사과했으면서 왜 남성 혐오적 이미지 사용에 대해선 아무 말 없냐는 내용의 글을 본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습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집게손을 한 모습. 트위터 갈무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집게손을 한 모습. 트위터 갈무리.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집게손을 한 모습. 이 전 최고위원 인스타그램 계정 갈무리.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집게손을 한 모습. 이 전 최고위원 인스타그램 계정 갈무리.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집게손을 한 모습.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집게손은 페미니스트의 상징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항해 누리꾼들은 집게손이 흔한 손 모양일 뿐이라며 이 사진들을 공유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집게손을 한 모습.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집게손은 페미니스트의 상징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항해 누리꾼들은 집게손이 흔한 손 모양일 뿐이라며 이 사진들을 공유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만약 앞선 홍보물의 사례와 같이 특정 손 동작을 찾으며 ‘남성 혐오’ 낙인을 찍는 것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심지어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해당 손 모양을 하고 있는 사진이 나왔습니다. 정치인 뿐만이 아닙니다. 한 영화에서 정두홍 무술 감독의 손 모양, 세제 광고에서 ‘국민 MC’ 유재석까지 그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흔한 손 모양을 한 이들은 모두 ‘남성 혐오’에 동조하는 것일까요?

이에 SNS에서는 남성 커뮤니티 중심 낙인 찍기에 대해 ‘만물메갈설’이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일 트위터에선 ‘피해망상’이라는 키워드가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YDOU******)는 “남혐(남성 혐오) 지적 컨텐츠를 보면서 오히려 느끼는 게, 이미지 속 숨겨져 있는 은유를 그렇게 잘 찾는 사람들이 그동안 소수자를 대놓고 혐오하고 조롱하는 컨텐츠를 모르는 척, 공감 못 한 척, 이해 안 되는 척하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과대망상증에 피해망상증 수준으로 취급해왔다는게 더 빡친다”고 썼습니다. 이 트윗은 8500회 넘게 리트윗됐습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roll********)는 이번 논란을 두고 “지금 남초 커뮤에서 부글거리는 건 남성 인권 보장(?)도 뭣도 아닌 ‘우기기’”, “그냥 눈에 보이는 거 전부 끌고 와서 메갈 논란 만드는 게 유머화된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미러링의 무간 지옥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번 ‘남성 혐오’ 논란을 두고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역습)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페미니즘에 맞서는 백래시는 이번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닙니다. 2009년 KBS의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나왔던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으로 시작됐던 ‘루저의 난’, 2016년 시사인이 ‘메갈리아’ 논란을 다룬 이후 일어났던 대규모 절독 사태, 2016년 ‘메갈리아’ 티셔츠 사진을 올린 성우가 결국 교체됐던 넥슨 클로저스 사태 등 백래시 현상은 지금껏 꾸준히 반복돼 왔습니다. 다만 이번 GS25 포스터 논란으로 시작된 백래시는 여성 혐오에 대한 거부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여성 혐오의 대항마로 ‘남성 혐오’라는 실체 없는 무기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여성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우려를 표합니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 사무국장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현실의 차별과 폭력을 논해야 하는데 지금의 소모적 논쟁은 실체가 없다”면서 “젠더 의제 자체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이번 현상은 남성들이 미러링의 형식만을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미투운동, 2020년 n번방 논란 등은 성범죄라는 실체가 있었고 성범죄 가해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반면, 현재 남성 누리꾼들의 움직임은 특별한 사건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의 미러링 ‘형식’만을 빌려온 백래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백래시가 난무하는 사이 청년들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그래픽. 이아름 기자

그래픽. 이아름 기자

전체 남성이 아니라 일부 반페미니즘 누리꾼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남성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젠더 갈등이 현실과 달리 온라인상에서 증폭되고 과장됐을 수 있는 것입니다. 황 사무국장은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언론 보도가 너무 많다”며 “이들(일부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유효한 것처럼, 효과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이를 제지할 만한 의견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정치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의 책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더 해로운가?>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은 같이 오르내리는데, 놀라운 점은 그 수치가 공화당이 집권할 때 오르고, 민주당이 집권할 때 떨어진 것입니다. 공화당이 수치와 치욕, 불평등의 정치를 펼 때 국민이 더 많이 죽었다는 게 책의 결론입니다. 손 평론가는 이번 ‘남성 혐오’ 논란이 남성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지금 정치인들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싸움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국민을 죽이는 정치죠. 20·30대 청년이 힘든 것은 경제적 위기 때문이고, 코로나19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각자도생의 방식으로는 못 구합니다. 정치가 불평등을 보완해야합니다.”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일부 남성들이 편집증적으로 ‘남혐’의 증거를 찾느라 황당한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20대 여성의 우울증, 자살 시도율, 자살률은 급격히 증가했다"며 "차별·폭력·범죄·빈곤으로 인한 여성들의 SOS 신호에 무감각한 사회와 정치가 ‘누구’의 ‘어떤 외침’에 이토록 재빠르게 반응하는지를 보며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위원회는 정치권을 향해서도 "젠더 갈등이라는 손쉬운 진단 뒤에 숨어 성차별을 도리어 조장하는 정치는 더 용납하기 어렵다"며 "여성, 청년 등 사회적 소수자의 안전과 권리 보장이라는 원칙하에 유능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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