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콘돔’이 자궁경부암 백신 아닌 HPV 백신 고집하는 이유는?읽음

김원진 기자
박진아 ‘이브콘돔’ 대표. 이석우 기자

박진아 ‘이브콘돔’ 대표. 이석우 기자

‘이브콘돔’은 콘돔을 판다. 이브콘돔은 ‘생식 건강’에 주목했다. 유독성 물질을 확뺀 콘돔을 판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브콘돔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성인용품이 아닌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라고 소개한다. ‘안전한 사랑’은 피임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식 건강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쓰였다. “더 얇게”를 내걸며 두께 경쟁에 치중했던 콘돔 시장에 ‘안전’을 더했다.

‘콘돔=성인용품’이라는 고정관념은 이브콘돔 탄생의 계기가 됐다. 이브콘돔은 2014년 온라인 쇼핑몰 ‘부끄럽지 않아요!’에서 시작했다. 박진아 이브콘돔 공동대표(29)와 그의 고등학교 동창 2명이 함께했다. 성인에게 판매하는 콘돔 개수만큼 청소년 성교육용 콘돔을 기부하는 형태였다. 선의만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자 이듬해 이브콘돔을 설립했다. 사업이 커지면서 제품도 다양해졌다. 손가락 콘돔인 핑거돔(핑거+콘돔), 러브젤이라 불리는 성 윤활제나 생리컵을 판다. ‘그날, 불안함까지 흡수합니다’라고 하는 여성 위생팬티인 ‘피팬티’도 주요 제품군이다.

이브콘돔을 수식하는 표현은 여럿이다. 크게는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 스타트업으로 묶인다. 최근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인 펨테크(Femtech) 기업으로도 불린다. 박진아 대표는 “건강을 표방하는 타사 제품이 늘어나면서 매출의 굴곡이 있긴 하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2019년 기준으로 직원20여명이 낸 매출이 49억원이었다.

그는 지난 2월에야 다니던 대학을 졸업했다. 입학한 지 10년 만이었다. “대단하다, 그래도 졸업은 했구나”라는 말을 교수에게 들었다. 창업 이후 꼬박 7년이 지났다. 성대용종이 생길 만큼 정신없이 지냈다. 박진아 대표는 “최선을 다했으면 지칠 때도 오는 것 같다. 조금 더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기도 하고, 잠시 재충전을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진아 대표를 지난 5월 2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이브콘돔 본사에서 만났다.

-여성 건강을 고려한 섹슈얼 헬스케어 제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요즘에는 펨테크 기업이라는 호칭도 따라붙는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여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성 자체에 면밀하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다. 이브콘돔은 보편적인 성 건강, 생식 건강을 말한다. 이중에서 여성들의 니즈가 보편적으로 누락됐기 때문에 이브콘돔은 여성의 건강을 생각한 제품을 우선적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콘돔은 얇기만 하면 돼’라는 생각이 기존의 소비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건강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러브젤(성 윤활제)도 예전에는 대충 윤활력이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그쳤다. 이제는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가는데 건강도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둘 하기 시작한다.”

-신체 건강을 신경 쓴 제품을 만들다 보면 그만큼 더 비용이 들어가고 제품 생산 시 고려할 조건들이 많아질 것 같다.

“돈을 벌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도 놓지 않으려다 보면 간혹 포기할 것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폴리우레탄 콘돔을 만들려 했다. 라텍스 제품은 두께를 0.03㎜ 밑으로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 회사가 안전성을 높인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시장의 분명한 니즈인 두께를 포기할 순 없었다. 제조사랑 미팅을 했고 견적도 받았다. 그런데 도저히 동물실험을 대체할 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콘돔은 의료기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안전 규제도 화장품보다 까다롭다. 동물실험 없이도 허가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실패했다.”

이브콘돔이 진행한 캠페인 / 이브콘돔 제공

이브콘돔이 진행한 캠페인 / 이브콘돔 제공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좇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턱에 걸릴 때도 많을 것 같다.

“우리 회사가 외음부 세정제를 출시해 판매하는데, 아마 ‘여성청결제’라고 이름 붙여 팔았으면 수익성이 더 좋았을 것이다. 여성청결제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고, 검색에도 더 많이 걸린다. 여성청결제로 팔면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세정제품을 안 쓰면 불청결한 것인가. 사실 냄새나 분비물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리 전이나 섹스 전에 불편이 있을 때만 외음부 세정제를 쓰면 된다. 이런 논의 끝에 ‘여성청결제’라는 단어는 안 쓰기로 했다. 최근에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 접종비 전액 지급을 임직원 복지로 추가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면서도 ‘자궁경부암 백신’ 대신에 ‘HPV 백신’을 고집했다. 흔히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HPV는 남성의 고환암도 일으킨다. 그러니까 HPV 백신이 더 적확한 용어다.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우리 회사가 보도자료에 내고 그랬다면 아마 우리 회사를 알리는 데는 유용했을 것이다.”

-건강·안전을 위해 비용을 더 들여 만든 제품 중에 출시 가능성이 큰 것도 있을까.

“러브젤로 불리는 성 윤활제가 그렇다. 성 윤활제는 현재 화장품으로 분류된다. 화장품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처럼 사전규제를 받지 않는다. 안전관리가 미비하다. 흡수율이 높은 체내 점막에 사용되는 건데 화장품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미국에서는 성 윤활제를 의료기기로 본다. 성 윤활제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당연히 비용이 어느 정도 수반돼야 하는 건데, 정작 식약처는 미국 기준을 적용하진 않고 있다. 나중에 혹시나 안전 문제가 일어났을 때, 과연 누가 책임을 질까.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의료기기 기준에 부합하는 성 윤활제를 개발하고 있다. 안전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 니즈에 맞게 기준을 새로 세우면, 그때는 식약처도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이브콘돔이 진행한 캠페인 / 이브콘돔 제공

이브콘돔이 진행한 캠페인 / 이브콘돔 제공

-콘돔은 의료기기인데, 이브콘돔에서 판매하는 ‘핑거돔’은 공산품이다.

“섹슈얼 액티비티 제품들이 전반적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한데, 그게 적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예가 핑거돔이다. 당연히 핑거돔도 의료기기로 분류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규제의 틀이다. 콘돔은 의료기기의 효능·효과 중에서 ‘성병 예방 및 피임 효과’에 해당한다. 핑거돔은 이 조항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다소 적용하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안전 수준을 높인 제품을 만들다 보면 비용이 는다. 사회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스타트업이 수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브콘돔은 무조건 경제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NGO(시민단체)가 아니다. 노동자에게 월급 주고, 신사업에 투자도 해야 한다. 팀원들에게 발은 땅에 붙이고 눈은 하늘을 보자고 한다. 이상을 꿈꾸되 현실에 받을 딛고 이상을 실현해보자는 의미다. 수익률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계속 (순)수익을 내고 있다. 보통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는 이유는 사업을 확장하려는데 자금 부족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투자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전략적인 투자, 그러니까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인맥·역량이나 전문적인 이해관계자의 조언이 필요하다면 투자를 받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이브콘돔이 진행한 캠페인 / 이브콘돔 제공

이브콘돔이 진행한 캠페인 / 이브콘돔 제공

-사회적 가치를 좇으면서도 수익을 낸다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첫 사업 모델은 온라인 쇼핑몰 ‘부끄럽지 않아요!’였다. 성인들이 콘돔을 구매하면 그만큼 청소년에게 기부하는 모델이었다. 의도는 선했다. 선한 의지에만 의존했는데 사람들은 지갑을 안 열었다. 오히려 사회적 가치를 제품에 담을수록 더 치열하게 경제성을 검토하고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하다 보면 착하면 가난해야 한다는 인식을 느낄 때도 많다. 2019년에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지원했는데 심사위원분이 ‘돈 잘 버는데 왜 여기 나왔냐’고 했다. 돈을 잘 버는 게 사회적 기업의 결점인 것처럼 느껴지는 뉘앙스였다. 돈을 잘 버는 사회적 기업이 있어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도 돈이 된다고들 생각할 텐데….”

박진아 이브콘돔 공동대표가 지난 5월 26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박진아 이브콘돔 공동대표가 지난 5월 26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회사가 내보내는 메시지가 다양하고, 추진하는 캠페인이 많다. n번방 사건 때도 목소리를 냈고 퀴어퍼레이드 후원, 청소년 인턴 채용 등 다양하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그래픽 형태의 상품 광고를 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를 넣기도 했다.

“우리 회사도 회자가 돼야 하는데 광고 제약이 너무 많다. 페이스북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자체 규제를 한다. 정부는 선정적인 게임의 옥외광고는 제재하지 않으면서 콘돔은 까다롭게 규제한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우리가 추구하는 어젠다를 보여줄 프로젝트들이 필요했다. 책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미움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다. 약간 스타트업계 PC(정치적 올바름의 약자)대장이 돼버린 느낌이다(웃음). 원래 제품 광고에 사람을 안 썼다. 식물로 주로 표현했는데 한계가 뚜렷했다.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으면서, 맨몸은 노출하는데 평온·평등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섹슈얼리티가 느껴질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브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리브랜딩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진출을 하려는데 ‘이브’라는 이름이 지적재산권 문제로 쓰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글로벌해지려면 상표명을 바꿔야 하겠더라. 브랜드와 관계없이 상품도 준비한다. 임신중지 의약품은 해외에서 들여오려 시도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실리콘으로 만든 성 윤활제나 원료 단계부터 체크한 ‘지속가능한 콘돔’을 준비 중이다. 콘돔에 쓰이는 라텍스를 어디서·어떻게 재배하는지, 노동자 처우는 어떤지 하나하나 들여다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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