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릴레이 기고

(3)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교보문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를 중단한 일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북한 언론과 출판물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수정당에서 나오는 등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되는 상황에서 경향신문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과 함께 각계 인사들의 기고문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필자로 김도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조헌정 목사, 김경민 YMCA 사무총장,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미자 교사가 참여한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홍콩은 1842년 8월29일 난징조약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중국·영국 공동선언과 일국양제 시행을 합의한 후 1997년 7월1일 중국에 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다.

홍콩이 중국에 특별행정구로 편입된 날, 나는 홍콩에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YMCA 본부가 홍콩차이니즈 YMCA 건물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YMCA 본부에 회의 차 방문했던 나는 홍콩이 반환되는 역사적 순간을 홍콩차이니즈 YMCA 간사들과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한 간사는 영국 국기인 유니온잭이 내려오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서 벅찬 감동과 함께 소름끼치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아마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도 그녀와 비슷한 이중적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2014년 9월 우산 혁명이라 불린 홍콩 민주화 시위는 그날 홍콩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의 한 단면이 현실화된 것인지 모르겠다. 우산혁명은 숨고르기를 거쳐 2019년 6월부터 송환법 반대 투쟁으로 다시 불붙었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선 대규모 시위는 결국 중국 당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과 시행의 빌미가 되었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본래 홍콩 기본법 제23조에 의해 홍콩 입법회에서 제정했어야 하는 법이지만, 중국 당국이 홍콩 기본법 부속서에 임의로 삽입하여 2020년 7월 1일자로 전격 시행 되었다.

홍콩을 중국 사회주의 체제로 강압적으로 통합해 나가겠다는 것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의 목적이다. 국가보안법을 매개로 중국은 홍콩의 정치체제 뿐 아니라 시민사회 그리고 종국에는 시민의 내면적 의식까지 총체적으로 재구축해 나갈 것이다. 이미 중국 당국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해 시민들의 저항운동을 뿌리부터 제압해나가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법의 목적이나 자의적 운영 행태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꼭 닮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가 되었다. 일본, 홍콩, 태국, 미얀마 등 아시아 민주화운동, 시민불복종운동 현장에는 K팝과 한국의 운동가요가 자주 불려진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아시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민중의 노래다. 그러나 한국은 분단의 극복과 평화의 정착 그리고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산적한 숙제 또한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제들은 국가보안법 주변을 맴돌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남한 단독정부를 강행 추진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일제 하 독립군을 때려잡던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1948년 11월9일 발의되어 고작 22일 후인 12월1일 공표, 시행되었다. “이와 같은 법률은 영구히 시행될 것이 아니고 다만 잠정적인 비상시의 탄환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이 법이 ‘한시적인 임시조치법’임을 분명히 하였음에도 국가보안법은 73년이 지나도록 생명을 유지하며 분단을 고착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무의식 속에 뿌리 깊은 자기검열의 억압적 장치를 작동하는 악법으로 서슬 퍼렇게 살아있다.

이승만 정권은 1949년에 국가보안법으로 12만 명을 검거하였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6944명을 기소하였으며 전두환 정권에서는 1759명을 기소하였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2018~19년 2년 동안 583명에 이르는 국민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했다. 진보당의 조봉암 선생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국가보안법으로 1959년 사형당했고,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피고인이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는 등 수많은 사법 살인이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를 위한 ‘잠정적인 비상시의 탄환’으로 제정되었으나 73년의 역사를 통해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면서 독재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 체제와의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온 피의 역사다.

국가보안법은 자유주의 최후의 보루인 개인의 내면성의 영역까지 사법적 검열의 대상으로 삼아 사법권을 행사하여 왔으며 인민의 저항권도, 민주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도, 자유로운 결사의 자유도 통제하고 유보할 수 있다. 독재를 위해 양의 탈을 쓴 늑대가 국가보안법의 진면목이며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지속적인 테러를 자행해온 것이 국가보안법의 역사다.

내면의 빛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개인의 자유로운 성장과 이를 통한 다원적 사회의 풍성함을 진보의 동력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능성을 국가보안법은 억압하며 집요한 사상적 검증체계를 전 사회적으로 작동시켜왔다. 개별성과 다원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현재 남한에는 철저한 냉전과 반북을 전제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평화와 공동번영, 통일을 지향하는 7·4남북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기 분열적 상황 속에 놓여있다.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개의 가치 체계가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현실은 북한을 반국가 단체이고 적이면서 동시에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대등한 주체로 바라보는 등 북한에 대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국민이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점과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의 제3조 영토조항이 국가보안법에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지만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가동은 이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북한에 대한 반국가 단체 규정은 일면적이고 과도하며 또한 헌법정신 위반이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과 헌법정신의 불일치에 대한 해결 방향은 평화와 통일의 방향, 즉 국가보안법 폐지의 방향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국가보안법 폐지 릴레이 기고](3)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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