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간 아들, 어머니 병문안 간 딸…“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읽음

조문희 기자
9일 발생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의 유족들이 10일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용섭 광주시장과 만나 오열하고 있다. 조문희 기자

9일 발생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의 유족들이 10일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용섭 광주시장과 만나 오열하고 있다. 조문희 기자

투병 중인 어머니를 병문안 가던 딸과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생존했지만 딸은 목숨을 잃었다. 외동아들은 쉬는 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 생일이라며 아침에 밥상을 차리고 출근했던 어머니도 귀갓길에 목숨을 잃었다.

10일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유가족들이 전한 사연 속 희생자들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전날인 광주 동구 재개발지역에서 발생한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9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의 시신은 조선대병원, 광주전남대병원, 광주기독병원에 각각 안치됐다. 기자는 이날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4명 사망자의 유족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딸을 찾고 계세요. 아직 말 못했어요.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6분향소 앞에서 이도순씨(50)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사망자 김모씨(30)의 외숙모인 이씨는 조카를 “가족을 잘 챙기던 막내”라고 했다. 사고 당일 김씨는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탔다. 갑상선암 수술 후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지난달 29일 국가고시를 치른 후 김씨는 매일같이 어머니를 보러 갔다. 버스 안에서 딸은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해요.”

그것이 김씨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5자매 중 막내인 김씨는 생전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며 카페, 독서실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머니가 입원 전 하던 팥죽집 일도 성실히 도왔다. 서울, 하남, 평택, 제주 등지에 떨어져 사는 자매들 대신 광주에 살면서 부모를 보살폈다. 김씨의 형부 황모씨(46)는 “부모님께 살갑고, 집안일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처제였다”며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부상을 입은 채 구조된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 대부분은 버스 뒷좌석 승객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씨의 아버지는 딸의 뒷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이날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곳곳에서는 “이쁜 내 새끼 살려내라”, “나보고 이제 어떻게 살라고”라는 절규와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김모군(18)의 아버지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사고 당일 김군은 교내 동아리 친구들과 만난다며 학교를 갔다가 귀가길에 참변을 당했다. 2대 독자이자 늦둥이였다. “‘아빠, 나 이제 가요. 버스 탔어요’라고 전화를 했는데, 도착할 때가 됐는데도 안 와요. 왜 안 오지, 걱정하다가 뉴스를 보니 사고가 났다고 해요.” 아버지 김씨는 그 길로 사고 현장에 달려갔다. 현장에서 듣자하니 사고 난 버스가 ‘54번’이라고 했다. 광주고에 다니는 아들이 평소 타고 다닌 버스였다. “내 배 위에 올라와 웃으며 놀던 애교 많은 아들이에요. 하늘에 달처럼, 녀석이 웃으면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았는데….”

곽모씨(64)는 큰아들의 생일에 목숨을 잃었다. 광주 동구 지산동 법원 인근에서 운영 중인 곰탕집에서 일한 후 귀가 중 사고를 당했다. 큰아들과 둘이 살고, 다른 가족과는 따로 살았다. 당일 오전 출근하면서 큰아들에게 “밥 차려놓고 갔으니 챙겨 먹으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곽씨의 둘째아들 조모씨(37)는 “저녁 늦게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구에서 오느라 사고 현장은 보지도 못했다”면서 “지난 주말에 내려와서 어머니를 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밥 차려주시면서 먹고 가라고 하셨는데, 그걸 안 먹고 가서, 그게 참….” 조씨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철거 당시) 통제라도 했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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