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릴레이 기고

(4) ‘종북 게이’ 그리고 국가보안법과 차별금지법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교보문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를 중단한 일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북한 언론과 출판물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수정당에서 나오는 등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되는 상황에서 경향신문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과 함께 각계 인사들의 기고문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필자로 김도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조헌정 목사, 김경민 YMCA 사무총장,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미자 교사가 참여한다.

종북 게이 그리고 국가보안법과 차별금지법

‘종북 게이’라는 말이 있다. 듣기에도 생경한 조합이지만, 이 말은 한국사회의 현재를 담고 있고, 위력은 대단했다. 북한을 추종하는 빨갱이와 성소수자 혐오가 합쳐진 말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운동장에 모인 민간인을 손가락으로 색출해서 사냥했던 시절 탄생한 국가보안법은 오래된 공포였다. 오래된 공포에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야하는 소수자를 합쳐서 종북 게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둘 다 싫으니, 둘 다 꺼지라는 메시지였다. 혐오에 혐오를 ‘1+1’ 더한 꼴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손가락질 총이 또 만들어진 것이다.

종북 게이가 귀에 들리기 시작한 때는 2013년쯤이었다. 당시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던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보수 기독교 단체의 조직적 공세에 법안을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정치적 성향·전과·성적 지향·종교에 대한 차별 금지’ 항목이었다. 법이 제정되면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김정은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국회와 중요 공직에서 자유롭게 적화 활동을 하고,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은 “교회에서조차 성경대로 죄(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의도된 오독이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일상으로 돌아온 신자들은 공포에 빠진다. ‘빨갱이’와 ‘호모’가 설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생각하니 끔찍하다. 레드 컴플렉스와 성소수자 혐오가 합체하자, 지시한대로 국회의원에게 전화하고 문자 돌리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종북과 게이는 하나가 되었다. 기괴한 단어의 조합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법이 보인다. 하나는 차별금지법이고, 하나는 국가보안법이다. 두 법을 연결시키는 공통점은 더 있다. 인권이사회, 자유권위원회, 사회권위원회 등 유엔의 인권기구 권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하고, 차별금지법은 제정하라는 요구인데,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존재하고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두 법의 존재 여부는 한국사회 인권의 바로미터로 지목되었다.

최근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가 청원되었고, 차별금지법은 청원인을 모집 중이다. 종북과 게이가 비슷한 시기에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이 달성되자 폐지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인권은 현실에서 도전받는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과 차별을 금지하라는 사람은 불온한 취급을 받는다. 불온한 취급은 사람이 읽는 책을 불태웠고, 사람 몸에 불을 붙였다.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표현한다. 존재로부터 나오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 수 없는 것도 인간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청원에 이런 글이 붙었다. “국민이 요즘같이 안보에 대해 불안한 적이 없을 정도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절을 보내면서 위태로움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맞다. 불안하기 짝이 없고 겪어보지 못한 위태로움에 처해 있다. 그러니 안전해져야 한다. 차별 없는 평등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평화보다 안전한 것이 무엇일까.

한국사회는 종북과 게이라는 공포 정치에 속아왔다. 그래서 진짜 불안을 만나지도 못했고, 해결할 기회도 놓쳐왔다. 전쟁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평화체제, 평등이 기본값인 세상은 상상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혐오와 두려움으로 과대 포장된 거짓말의 지배는 인권을 빼앗고 유보했다. 그러니 안전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국가보안법은 폐지하고 차별금지법은 제정하자. 인권의 지평은 넓어졌지 좁아지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폐지 릴레이 기고](4) ‘종북 게이’ 그리고 국가보안법과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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