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개성을 ‘이모’에 빗대지 말라…정형화된 이모는 없다읽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나 혼자 산다’ 등 한국 예능에서 작동하는 ‘가족 프레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지난 5월28일 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의 방송분에는 ‘키 이모’라는 호칭과 자막이 수차례 등장했다. 이같은 ‘가족 프레임’을 통해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성역할 고정관념은 강화되고 동시에 퇴보 중이다.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지난 5월28일 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의 방송분에는 ‘키 이모’라는 호칭과 자막이 수차례 등장했다. 이같은 ‘가족 프레임’을 통해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성역할 고정관념은 강화되고 동시에 퇴보 중이다. <나 혼자 산다> 화면 캡처

최근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이모’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깔끔하게 일상을 관리하고, 활발한 리액션을 할 때마다 ‘키 이모’라는 자막이 붙는다. 그런 이모를 실제로 본 적 없더라도 호칭에 딸려오는 느낌만은 어쩐지 익숙하다. 우리에게는 오랜 시간 사회가 공들여 주입한 가족 이미지와 성역할 고정관념이라는, 질기고도 위대한 유산이 있으니까. 무엇이 엄마 같은지, 할머니다운지, 어떻게 해야 딸 같은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나 혼자 산다>의 유사 가족 프레임에 대해서는 다른 매체에 이미 한 번 기고한 적 있는데, 박나래와 헨리의 엄마-아들 관계를 예로 들며 비판한 글에는 별게 다 불편하냐는 악플이 한여름 청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렸다. 그리고 글쓰기 강의에 가면 나는 꼭 이런 말을 한다. “글쓰기는 1절만 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이것은 내가 경향신문에 바치는 2절, 들어줘 리슨. 오늘은 <나 혼자 산다>를 포함한 한국 예능에서 작동하는 가족 프레임과 문제점을 살펴본다. 기존 연구에서 용어와 분석을 인용, 참고했으며 출처는 맨 마지막에 표기한다.

먼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특성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설정과 현실이 뒤섞인 장르다. 또한 내용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미 선별과 의도가 개입(‘악마의 편집’ 논란처럼)한다. ‘수용자가 콘텐츠에 내포된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용이한 픽션 장르의 성격’과, ‘콘텐츠의 내용을 자신의 현실과 더 가깝게 인지함으로써 수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는 논픽션의 성격이 혼재’한다. 특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진이 등장인물의 언행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떤 부분을 부각 및 축소하고,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프레이밍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이승희의 연구).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다른 장르와 달리 등장인물과 제작진의 관점이 ‘분리’되고, 관점이 등장인물과 제작진을 넘나든다. 고전소설에서 서술자가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나 해석, 감상을 덧붙이는 것과도 유사하다.

우리가 보는 ‘리얼’은 이미 ‘제작진의 의도적 프레임, 사실적 소재(이야기), 이에 대한 (제작진이 규정한) 사회적 평가’를 거친 가공품이다. 이는 등장인물의 언행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로 기능하고, 나아가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아닌지 규정한다. 비혼 1인 가구의 일상을 보여주지만 <미운 우리 새끼>(SBS)와 <나 혼자 산다>에서 재현되는 양상이 완전히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레임은 방송의 정체성과 메시지와 캐릭터를 결정한다. 편집과 가공에는 자연스럽게 변형이 따른다. 그런데 그 프레임이 낡으면? 변형은 왜곡과 퇴보에 그친다. 키를 ‘이모’에 가두어 버리듯이. 그래서 샤이니는 일찍이 노래했나 보다. “나를 묶고 가둔다면 사랑도 묶인 채 미래도 묶인 채~”

‘현실 남매’ 같은 가족 프레임
재미와 감동을 보장하지만
성별 고정관념·역할 규범 굳혀

‘같이 삽시다’ 속 여성 출연자들
엄마·할머니에게 씌워지는
요리·살림 프레임 벗어던지고
동료로서 애정과 연대 보여줘

제작진의 ‘관점’은 그래서 중요

가족 프레임은 익숙하고, 편리하다. 각 역할에 따른 캐릭터와 관계성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미를 보장한다. 자기소개서 첫 줄에 절대 쓰면 안 된다는 전설의 문장,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도 아직 통하고, 속 깊은 장녀, 애교 많은 막내딸, 여동생을 유난스럽게 보호하려 들거나 티격태격하는 오빠, 철없는 (백수) 삼촌 캐릭터도 잘 팔린다. 투닥거려도 ‘현실 남매 케미’ 같은 표현으로 얼버무리거나, 감동 코드를 불러일으키기도 쉽다. 가족 프레임 안에서는 개인의 독자성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과 역할 규범이 강화된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와 헨리의 특별한 친밀감은 모자 관계로 프레이밍되고, 화사와 성훈은 ‘먹방 남매’로 묶여 티격태격한다. 2020년 8월2일 방송된 런닝맨(SBS) <가족 찾기 레이스: 여동생은 못 말려>에는 솔라, 제시, 이영지, 전소미가 출연했다.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부여된 역할은 ‘못 말리는 막내딸’. 나머지 출연진은 오빠 혹은 언니가 되어 졸업은 뒷전이고 아이돌을 꿈꾸는 여동생을 잡으러 다닌다. 여기서 여동생은 보호와 훈계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삼시세끼>(tvN)는 시즌 2부터 출연진을 적극적으로 가족화한다. 차승원은 요리를 포함한 집안일에 능숙하다는 이유로 주부이자 ‘아줌마’ ‘엄마’가 된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서로를 자기나 선수라고 부르는데 자막은 끊임없이 ‘차줌마’/‘참바다’, ‘안사람’/‘바깥사람’, ‘엄마’/‘아빠’를 찾는다. <진짜 사나이>(MBC)에서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전미라는 전직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의 체력보다 3남매의 어머니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마더 미라사’(마더 테레사의 변형),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자막이 붙고, 당직을 서는 영상에는 ‘무서운 엄마 ver.주부마녀’라는 제목이 달리는 식이다. 세정은 <백종원의 3대 천왕>(SBS)에 출연해 백종원과 ‘아빠와 딸’이라는 별칭을 받은 후 <골목식당> MC로 투입되었다. 그런데 세정이 예리하게 문제점을 파악하자 백종원은 “네가 이러면 나보고 뭘 하라는 거니!”라며 가르칠 게 없으니 하산하라고 한다. 실제로 몇 차례 방송 후 MC는 조보아로 교체되었다. 아이돌그룹 활동 특성상 처음부터 임시 MC였다고 하지만 이후에 투입된 조보아가 눈치 빠르고 싹싹한 ‘딸’의 역할을 해낸 것과 대조적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데올로기나 담론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재현하고 재생산하는 데 특화된 장르다. 가족 해체의 시대라고 호들갑을 떠는 한편, 온갖 ‘패밀리 놀이’를 일삼는 광경을 보면 웃는 사이 가족주의가 스며든다. 이는 문화 생산에 주도적인 아이돌 팬덤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각 그룹에는 ‘엄마’와 ‘아빠’, ‘언니’ 혹은 ‘맏형’, 그리고 ‘막내’가 있고 이 순서는 무척 중요하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를 ‘엄마-새끼(자식)’ ‘삼촌-조카’로 배치하여 롤플레잉하기도 한다. 호칭만 빌려오는 정도면 좋겠지만, 진심으로 몰입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가족 관계에 내재하는 (엄마 또는 삼촌의) 위계와 통제권을 갈망하거나, 상대를 아이 같은 상대적 약자로 취급하려 하는 경우다. 가족 프레임은 익숙해서 재미있고 편안하지만 그만큼 해롭다.

인식은 변화하는 중이다. 지난주 <나 혼자 산다> 방송 이후 트위터리언 ‘꼬부랑샤월(@halmonee5hawol)’은 이렇게 썼다. “<나혼산>에서 기범이를 이모라고 칭하는 게 싫다. 기범이는 자신을 깔끔하고 단정하게 꾸미고 가꿀 줄 알고, 직접 기른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변의 아끼는 사람에게 나눠줄 줄 아는 30대 남성이다. 이런 기범이를 이모라는, 여성 대상 호칭을 쓰는 것이 마치 남성이라면 저런 걸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불편하다. 기범이는 30대 남성이고, 세상엔 저런 남성도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해당 글은 6월8일 기준 2만4000회 넘게 리트윗되며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토록 다양한 우리‘들’은 유교 사회와 결탁한 가족 프레임을 돌파할 수 있을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시즌 3을 맞이한 <같이 삽시다>(KBS2)가 좋은 예시가 되겠다. 노년에 접어든 여성들이 남해의 전원주택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여성 출연자에게 으레 씌워지기 마련인 프레임을 산뜻하게 피해간다. 출연진은 살림에 서툴다. 당연히 엄마, 할머니여야 하는 노년 여성이 요리를 못하면 보통은 놀리거나 한심해하는 자막이 붙는다. 제작진의 해석이자 프레임이다. 그러나 <같이 삽시다>에서 이들은 평생 일하느라 바쁜 사람이었기에 요리에 서툰 것도 자연스러운 특징으로 다뤄지고, 박원숙은 엄마의 집밥을 먹고 싶다는 초대 손님에게 “그럼 잘못 왔어”라고 답한다. 드라마에서 만났던 역할대로 ‘고모’나 ‘엄마’라는 호칭을 쓰지만 그뿐, 강제되는 역할이나 위계가 없다. 박원숙은 ‘큰언니’로서 ‘동생들’을 먹이지만 의무가 아닌, 같은 고충을 겪은 동료를 향한 환대와 애정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실 이러한 애정과 연대일 터. 가족 프레임과 성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롭고 괴상한 사람, 그런 관계, 낯선 호칭을 앞으로 잔뜩 보고 싶다. 2021년이잖아요?

*참고자료

이승희,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역할 고정관념 연출 프레임 분석’, 한국언론학보 63권 1호, 한국언론학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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