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군 성폭력 피해자도 신고 못한다…“내부고발제도가 내부감시용 전락”

김은성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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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혼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왜 너가 말을 했냐’고 하는 곳이 군대잖아요. 피해자랑 친하게 지내면 ‘너네 이제 집합시켜서 어떻게 한다’라고 선임도 간부도 그렇게 말해요. 군부대라 (성폭력 사건) 문제 같은 건 덮으려 하죠. 선임은 군 생활 며칠 더 하면 끝이지만, 간부들은 커리어(경력)에 흠이 가는 거니까요.”

“(익명으로 제보하는) 비상전화를 쓰는 애는 한명도 없어요. 모두 다 알잖아요. 그거 하면 남은 군 생활 병풍처럼 살아야한다는 것을요.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14일 ‘한국심리학회지’(2020년 2월호)에 실린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서동광 연구원의 ‘군대 내 성폭력 피해 병사들의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논문을 보면 군 복무 중 성폭력 피해를 당한 남성 장병들도 피해 사실을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는 육군·해군·공군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23∼29세 남성 10명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10명 중 9명은 선임에게, 1명은 간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들 중 피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사람은 1명뿐이었다. 9명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 사실을 숨겨야 했다고 했다. A씨는 “(신고를 못하게 하는) 압박적인 환경이 있다. ‘그딴 것을 왜 말해서 문제를 크게 만들어’, 이런 주변의 지탄이 있어요. 중대장님, 소대장님, 행정보급관님 이런 사람들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성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장병 다수가 함께 지내는 생활관이었다. 서 연구원은 “생활관은 타인에 의해 신고가 됐을 법한 장소임에도 사건이 공론화되지 못한 것은 주변인들도 방관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며 “다수가 보는 곳에서도 언제든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부대 내 잠재된 문제가 많을 수 있음을 예상케 한다”고 분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익명으로 사건을 신고하는 비상전화와 ‘마음의 편지’ 등 군 내부 고발 제도가 오히려 내부 감시용으로 악용된 적도 있었다. B씨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다 못한 제3자가 마음의 편지를 통해 고발했는데, 그 사람을 행정보급관이 알았다”며 “결국 편지를 쓴 고발자가 털렸고, 흔히 그렇듯 (행정보급관의) 회유로 사건이 유야무야됐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관련 기억들로 후유증을 호소했다. C씨는 “전역 후 1~2년 동안은 억울함과 화가 엄청 심했어요. 왜 그랬는지 따지고 싶어 가해자를 찾아갈까 고민도 했다”며 “가만히 쉴 때는 갑자기 눈물이 나고 밤에 생각이 나면 잠을 못자기도 했다”고 말했다.

논문은 “군대 내 성폭력은 나이, 지위, 계급 등 권력 위계에 따른 가학행위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성폭력을 친밀감이나 장난 등으로 미화시키는 가해자 논리가 군 위계 속에 박혀 있다”며 “피해자들의 대처가 쉽지 않은 만큼, (군 성폭력 사건을) 피해 병사 당사자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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