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릴레이 기고

(5) 국가보안법은 민주시민교육의 걸림돌이다

박미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교보문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를 중단한 일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북한 언론과 출판물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보수정당에서 나오는 등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되는 상황에서 경향신문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과 함께 각계 인사들의 기고문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필자로 김도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조헌정 목사, 김경민 YMCA 사무총장,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미자 교사가 참여한다.

국가보안법은 민주시민교육의 걸림돌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기본법 제2조는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라고 명시하여 교육자의 역할이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사회 안에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각하는 능력,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능력,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시민교육을 가로막는 법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하거나 활동하는 모든 것들’을 처벌합니다. 개인의 사상과 일상적 의사표현, 연구하는 도서와 그림, 악보를 소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할 목적 여부를 사법부가 판단하여 처벌합니다.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주인인 국민의 생각과 행위의 목적을 사법부가 단죄할 수 있나요? 법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발생한 결과에 따른 구체적 피해정도를 처벌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21세기 4차산업시대, 정보 세계화시대라는 지금도, 이런 법을 그대로 두고 민주주의를 운운하기에는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중학교 교사로 30년을 살아왔고, 우리 교육의 역사를 탐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청년교사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가입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교사들도 직접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때, 전교조를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먼 일가친척들조차도 사상을 의심받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저를 피할 때, 저는 우리 사회에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군부독재정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기에, 조금만 더 민주화되면 당연히 폐지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감격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평화통일교육이라는 사실도 실감했습니다. 남과 북, 해외가 함께하는 6·15공동선언실천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금강산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가동되었습니다. 남북 각계각층에서 만남과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남·북 교육자들도 만났습니다. 남의 한국교총과 전교조, 북의 교원직업동맹이 공동으로 6·15공동선언실천위원회 교육본부를 결성하였고, 6·15공동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15공동선언기념 21주년 행사에 참가하며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국가보안법은 분단을 고착시키고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을 선택적으로 단죄하는 낡은 악법입니다. 분단은 우리 민족 내부의 단결과 발전을 저해하고 대결을 통한 비인간화 현상을 가속화시켜왔습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우리 민족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분단의 장기화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과 남과 북에 공통적으로 끼치고 있는 피해와 손실에 대하여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일깨워주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은, 분단으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조화로운 민족공동체를 구현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도 일깨워주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체제와 상황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하여 ‘다름에 대한 인정과 상호존중’이라는 가치를 교육하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입니다.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반하고,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여 폐지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오랜 시간 계속되어왔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생각과 상상력은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며 그렇게 서로의 성장을 지원합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을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은 민주시민교육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입니다.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는 과정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이루어지는 비판과 논쟁에서도 의사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도록 자기검열을 강제하기도 합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일상적으로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입법청원이 9일 만에 이루어진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국회가 너무나 답답합니다. 반드시 빠른 시간 안에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의결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릴레이 기고](5) 국가보안법은 민주시민교육의 걸림돌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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