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불법촬영 걱정…“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해달라” 청와대 국민청원도

오경민 기자
김상민 기자

김상민 기자

“저는 마스크 써서 좋은 점이 딱 두 개예요. 화장 안 해도 되는 거랑 화장실 갈 때 불법촬영에 얼굴 노출 안 되는 것.”

직장인 이모씨(28)은 일상적으로 불법촬영에 대한 걱정을 한다. 그는 화장실, 지하철, 숙박시설은 물론 자기 집에서도 위협을 느낀다. 이씨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프린터를 중고로 구매했는데 판매자가 남자였다. 가끔 방에 있는 프린터를 보며 ‘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면 어쩌지’ 생각한다”며 “스스로도 망상 수준이란 것을 알지만 실제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있으니 걱정을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는 모든 여성이 이 정도로 예민하게 생각한다. 사회가 만든 피해망상인 셈”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지하철이나 공중화장실 등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불법촬영에 느끼는 감정은 ‘체념’에 가깝다. 언론보도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피해 경험을 접하고 있다. 교사 A씨는 최근 인근 학교에서 한 남교사가 여교사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씨는 “이전에는 학교에서 카메라가 발견되면 외부인의 소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던 교사가 ‘몰카’를 설치했다니 두려움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이 액자가 모텔에서 보이면 바로 나와야 한다’는 글이 공유됐다. 글에 첨부된 꽃병 그림은 한 초소형 카메라 전문업체에서 판매하는 ‘액자 캠코더’로 육안으론 카메라인지 알기 어렵다. 업체는 해당 카메라가 ‘몰카탐지기’에 걸리지 않으며 ‘불법이 아니다’라며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7일 여성들을 불법촬영하고 사진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의자는 여성 전문 운전연수 강사로 교육용 차량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16일 발표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에 한국의 불법촬영 가해자들이 시계, 계산기, 옷걸이, 머그잔 등 일상용품으로 위장한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화장실, 탈의실, 모텔 등에서 여성들의 신체 부위를 촬영한다는 사실을 담았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불법촬영에 사용되는 초소형 카메라가 일반적인 사고 수준 이상으로 창의적으로 발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지난 18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 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화장실, 숙박시설, 지하철, 집 등 어디서나 불법촬영을 하는 범죄자가 급증하고 있다”며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고 마땅한 규제도 없이 버젓이 팔린다”고 말했다. 이 청원은 이틀 만인 이날 오후 7만7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여성들은 현행법만으로는 불법촬영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만 해도 유포 여부와 관계없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이씨는 “성폭력처벌법은 촬영이 일어난 뒤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법이라 일상 속 두려움을 없애기 충분치 않다”고 했다.

초소형 카메라를 총기에 빗댄 목소리도 있었다. A씨는 “초소형 카메라는 (내시경 등 이 기술의 애초 개발 목적과 달리) 상대방 모르게 (신체를 불법) 촬영하려는 목적에 활용되는 만큼 총기처럼 구매 및 보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혜명의 오선희 변호사는 “칼과 마찬가지로, 어떤 물건이 범죄에 이용된다고 해서 아예 판매를 못하게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며 “다만 초소형 카메라가 불법촬영에 많이 악용되는 만큼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신고제’ 등 일종의 의무를 부과하는 점은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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