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지침 속에 ‘불허’되는 이주민의 삶

오경민 기자

난민 심사·체류자격 등 외국인 출입 규정 대부분 공개 안 돼

법무부, 유엔 규약 따라 공개 약속했지만 현장선 따르지 않아

“취업 불가·난민 불인정 이유 등 몰라…권리 다툼에 어려움”

인도적체류자 A씨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사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4월 취업을 위해 근로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들고 출입국사무소를 찾은 A씨는 허가 신청서를 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출입국사무소는 “거주지와 사업장 주소가 너무 멀고 코로나19 때문에 안 된다”며 신청서 접수를 거부했다. 법무부의 체류업무 안내매뉴얼에는 제출서류, 수수료 등을 언급할 뿐 허가 거부 사유는 없다. A씨는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재량으로 신청을 거부한 건지, 관련 규정에 따라 신청자격이 없다고 본 건지 알 수가 없다. 출입국 관련 행정지침 다수가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은 2018년 12월2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이들에게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루렌도 가족은 공항 43번 게이트 앞에서 280일 넘게 지냈다. 당시 열살도 되지 않은 루렌도의 네 자녀는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지냈다. 루렌도 가족은 출입국·외국인청이 어떤 기준으로 자신들에게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는지 모른다. 난민인정심사·처우·체류 지침, 입국규제 업무처리 등에 관한 지침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이주민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출입국 행정이 불투명하고 예측 가능성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는 훈령·예규·고시·규정·규칙·지침 등 각종 내규에 따라 행정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그 이름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익변호사단체 사단법인 두루가 지난 2월16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관의 훈령·예규·고시·규정·규칙·지침 목록을 정보공개 청구하자 법무부는 ‘전부 공개’ 결정을 하며 43개 내규의 목록을 보냈다. 그러나 2010년부터 현재까지 법무부 장관이 발령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관 비공개 내규 건수에 대한 지난 4월13일 정보공개 청구에는 제명과 내용을 모두 비공개한 내규만 45건이라고 답했다. 전체 지침보다 비공개 지침이 더 많은 것이다. 두루는 24일 “불성실하고 불투명한 공개”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청구 건에는 비공개 대상을 제외한 목록을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제5차 국가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난민심사지침 및 체류지침 등의 내용을 검토하여 가능한 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9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법무부의 비공개 내부 규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공개할 경우 그 제명이라도 공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여태 이행 약속을 지키지도, 법무·검찰개혁위 권고를 따르지도 않은 것이다. 두루는 “지침에 따른 행정처분 대상자인 이주민들은 내규의 내용은 물론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어 자신의 권리를 다투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권리 제한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만 규율하고 있으며, 법률에서 정한 범위 내 세부 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내부 가이드라인으로 지침 등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며 “취업활동허가 접수 거부라든지 난민 신청 접수 거부에 관한 사항은 (비공개) 지침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규 공개 계획에 대해서는 “추가 개선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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