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료에 웬 '속인·속지주의' 갈등?

김태훈 기자

직장인 김진선씨(37)는 올해 3월부터 네 살 아이를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있다. 마음 놓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민간어린이집을 찾아 등원을 시작했다. 이미 해당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부모들의 평도 좋았고, 아이도 등원 이후부터 잘 적응해 다니고 있었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매달 내는 보육료 내역을 살펴본 뒤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보육료 부담이 있었다는 점을 알고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등원하는 어린이의 주소에 따라 보육료가 다르다는 점을 어린이집 운영자 및 다른 학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서울의 한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집 원생들이 교사들과 돗자리로 비를 막으며 이동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집 원생들이 교사들과 돗자리로 비를 막으며 이동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연합뉴스

■무상보육 지원 범위 확대정책과 배치

주소에 따라 각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보육료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보육료 지원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씨의 집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지만 아이를 등원시키는 어린이집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의 주소와 상관없이 어린이집이 서울시 안에 소재하면 서울시가 책정한 보육료 지원액에서 정부 지원액을 뺀 차액 보육료를 지원한다. 반면 경기도는 도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이 경기도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만 차액 보육료를 지원해준다. 비유하자면 서울이 ‘속지주의’를 택한 데 비해 경기도는 ‘속인주의’를 적용했다. 이 같은 차이는 김씨 가구처럼 무상보육 원칙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타 시도에 소재한 어린이집을 다니는 이상 해당 가구에서 불가피하게 감안해야 할 부담이라고 보기엔 억울한 구석이 있다. 경기도에 주소를 두고 서울시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집이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어린이집은 시도 간 경계에서 불과 15m 떨어져 있어 사실상 송파구 생활권에 속한다.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28가구 중 경기도에 주소를 둔 가구는 9가구에 불과하다. 나머지 19가구는 모두 서울시에 주소를 두고 있다.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쟁률이 높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이 이곳이라 다녔을 뿐인데 지자체 간 경계를 넘어 아이들을 등원시킨다는 이유로 지자체의 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하고 매달 9만원이 넘는 액수를 자부담하게 된 것이다.

영유아보육법 제3조 3항은 “영유아는 자신이나 보호자의 성,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 인종 및 출생지역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보육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법 제3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 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무상보육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지자체 경계를 사이에 두고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보육 지원액을 덜 받는 아동은 결과적으로 차별을 받게 되며, 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해 무상보육 지원 범위를 확대하는 그간의 정책 방향과도 배치된다.

국공립어린이집의 보육료는 정부가 전액 지원하지만, 민간어린이집은 전체 보육료 수납액 중 정부 지원액을 뺀 차액을 각 지자체에서 지원한다. 어린이집 간의 보육료 차등을 없애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그럼에도 김씨의 경우에서 보듯 지자체 간 지원 방침이 서로 달라 민간어린이집에서 무상보육 원칙이 실현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남아 있다. 김씨는 “무상보육의 취지는 모든 아이에게 사는 지역에 관계없이 평등한 돌봄을 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인데, 사는 곳과 어린이집의 행정구역이 달라 차액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보육료로 지원하는 액수가 다른 점이 사실상 국가 차원의 무상보육이 완전히 실시되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3세 기준 정부 보육료 지원액 월 26만원을 제외하고 서울시는 차액 보육료를 월 17만원까지 지원한다. 반면 경기도의 차액 보육료 지원액은 9만3000원으로 서울시보다 적다. 전국의 광역지자체마다 차액 보육료 지원 액수가 각기 다른데다 지원 여부도 다르다. 때문에 불과 2년 전에는 각 가정에서 차액을 부담해야 했던 지자체도 있었다. 지자체마다 예산 사정이 다른 현실 탓에 무상보육이 정착되는 데도 지역마다 시차가 생겼던 셈이다.

지자체마다 처한 사정과 예산규모가 달라 발생하는 무상보육 사각지대를 원천적으로 없애려면 정부 지원 보육료의 액수를 한도액까지 높이면 된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지난해 대비 올해 인상된 정부 지원액이 월 2만원에 그쳤던 점에서 보듯 예산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보육정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정부 지원 보육료 외의 차액에 대해선 각 지자체가 특성과 상황에 맞게 지원하는 현실을 당장 손대긴 어렵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모부담 보육료에 대한 지원은 각 지자체가 자체 시책에 따라 운영하는 사업이므로 지원대상 및 금액 등의 기준에 대해서는 해당 지자체에서 결정하여 시행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보육료 지원 사각지대 당장은 해소 못해”

각기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방침과 유사하게 지원 범위를 정하고 있는 서울시와 경기도도 현재로서는 보육료 지원 사각지대를 당장 해소하진 못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차액 보육료 지원대상을 서울시 소재 어린이집이 아닌 서울시 거주 아동으로 설정할 경우, 서울시가 영유아보육법 제38조에 의거해 책정한 차액 보육료 기준과는 달리 경기도에서 정한 차액 보육료만큼을 경기도 소재 어린이집에 지원하게 된다”며 “타 지역 소재 어린이집에 대한 서울시의 점검 및 관리감독 권한이 없어 어린이집 실태조사 및 운영평가, 규정 위반 시 환수 등이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도내 소재 어린이집에 적용하는 차액 보육료 지원 기준을 명시한 ‘경기도 보육사업 안내’에 따라 ‘경기도 내 주민등록’ 요건을 충족해야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규정으로 들고 있다. 이 규정 때문에 현재 경기도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요건만으로는 보육료 지원이 이뤄질 수 없다. 다만 경기도 관계자는 “지자체 간 상이한 규정으로 인한 불평등 해소를 위해 관련 기준 개편 가능 여부, 개선 방향 등을 올해 안에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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