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1인분에 담긴 '지구의 눈물'···탄소중립 '육식 자제' 국내서도 가능할까읽음

김한솔 기자
소가 되새김질을 통해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강한 온실 효과를 갖고 있다. 소는 여러 가축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소가 되새김질을 통해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강한 온실 효과를 갖고 있다. 소는 여러 가축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소비자들의 식단 전환을 장려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2030년까지 모든 고기와 유제품 소비를 20% 줄이고, 그 비율을 2050년까진 35% 줄인다.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근거에 기반한 전략을 마련한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limate Change Committee·CCC)가 지난달 24일 영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육식 자제’를 권고한 것이다.

CCC는 한국의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와 유사한 조직이다. 규모는 15명 정도로 작지만, 기후변화 대응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의 탄소감축목표 설정, 탄소예산 결정 과정에서 CCC의 권고는 대부분 수용됐다. CCC는 ‘육식 자제’ 권고의 이행 시기에 대해 ‘지금 시작’해야 하고, 식단 변화를 위해 지난해 상황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권고에는 ‘우선순위 권고’라는 표시도 붙었다.

고기 1인분에 담긴 '지구의 눈물'···탄소중립 '육식 자제' 국내서도 가능할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육식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하원을 통과한 ‘기후법’에는 공립 학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고기 없는’ 메뉴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학교 뿐 아니라 정부 기관이나 대학을 포함한 국가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매일 한 가지 채식 메뉴를 제공해야 하고, 식당 직원들이 고품질의 채식 메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가 차원에서 국민 식생활 개선을 유도해야 할 정도로 육류 소비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것일까. 주요 연구 결과들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 ‘그렇다’고 말한다. 소나 양 등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강력한 온실효과를 유발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9년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에서 “모든 추정치는 소가 전세계 축산업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65~77%)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며 “붉은 고기와 같은 제품은 단백질 ㎏당 배출량 면에서 가장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축 사육에 필요한 초지와 물 문제 등을 고려하더라도 “육류소비를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 적응 대책”이라고 했다. 2006년 ‘축산업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를 통해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지적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기후 스마트 축산’ 보고서에서 “가축은 장내 발효 과정과 분뇨 관리 과정 중 직접적으로, 또 사료 생산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에 기여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축산농가. 연합뉴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축산농가. 연합뉴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국내에선 아직까지 정부 차원에서 ‘탄소 감축을 위해 육식을 자제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 적은 없다. 지난해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에도 에너지와 수송 부문의 탄소 감축에 초점이 맞춰졌고, 식생활 등 국민 일상생활에 관계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기술작업반(안)’에 처음으로 ‘육류소비 감소’가 탄소 감축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됐다. 이 안은 농축식품분야 탄소 감축 1안으로 “식생활 개선(육류소비 감소)을 통한 감축 유도”, 2안으로 “저메탄사료 및 저단백질사료 보급 강화(1안 대비)”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구조변화(소득 수준 상승, 인구 감소, 고령화 등)와 식물성 단백질 선호, 대체 단백질 기술 개발 등으로 식생활 개선과 육류소비 감소 유도”를 제시했다. “유럽연합(EU)는 생선을 제외한 동물성 제품 감축 등 식단 변화를 수단으로 반영해 25~44%의 감축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기후대응에 있어선 개발도상국과 비슷한 처지로 평가받는 한국이 이같은 정책을 도입한다면 상당히 파격적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안은 오는 10월 발표를 목표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는 탄소중립위 논의를 위한 ‘기초자료’ 차원으로,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육류 소비 감축의 목표치를 몇 %까지 할 것인지, 그로 인해 기대하는 탄소 감축량은 얼마인지를 두고도 더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 처음으로 ‘식생활 개선’이 대안으로 포함된 것 자체는 의미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4월 ‘공공급식 채식 선택권’ 헌법소원을 제기한 녹색당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학교급식은 학교 재량에 달려있다’ 며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우철훈 기자

2020년 4월 ‘공공급식 채식 선택권’ 헌법소원을 제기한 녹색당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학교급식은 학교 재량에 달려있다’ 며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우철훈 기자

아직 법제화되진 못했지만, 국내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육류 소비를 자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서울 내 모든 학교에 월 2회 채식 급식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군 입대를 앞둔 시민이나 학교 학생들, 학부모들이 공공기관에서의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잇달아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전남대 명예교수)는 “먹거리 전환을 개인 의지나 시민사회의 활동 영역으로 맡겨둬서는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목표치에 도달할 수 없다”며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식생활 개선과 관련해) 국민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근거는 이미 충분하고, 기후위기는 절박해지고 있다. 국가는 손 놓고 ‘교육청이 알아서 채식급식해라’는 식이 아니라 합당한 지원을 하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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