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서울대 청소노동자 동료들 “건물명 영어쓰기 시험 등 모욕···직장갑질”읽음

고희진 기자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59)가 휴게실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인격모독적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동료들은 서울대 안전관리팀이 평소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상관없이 건물명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는 필기시험을 치른 뒤 점수를 공개하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는 등 갑질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는 직장갑질 의혹 자체를 부인하며, 이번 사망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필기시험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제공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필기시험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제공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에서 ‘청소 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료들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팀장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상관없는 필기시험을 보게 했다. 시험문제는 ‘현재 속해 있는 조직의 정확한 명칭을 작성하세요’, ‘(청소업무를 하는) 919동의 준공연도는 언제인가’ 등이었다. ‘건물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 ‘건물 내 학생 수가 몇 명인지’를 묻는 문항도 있었다고 했다. 시험지를 채점해 점수를 매겨 나눠주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가 몇 점을 맞았다고 공개했다고 했다. 일부 청소노동자는 이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끼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료들은 팀장이 매주 수요일 오후 열리는 청소노동자 회의에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참석’할 것, 여성은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동료라고 밝힌 한 청소노동자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일하던 도중 최대한 단정한 모습으로 회의에 참석했지만, ‘멋진 모습’이라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면 감점을 당했다”며 “자연대 생활관을 영어로 쓰라고 하고 점수를 사람들 앞에서 공개했다. 당혹스럽고 자괴감을 느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2019년 서울대에 청소노동자로 입사한 이씨는 주 5일 40시간 근무를 했다. 주말에도 출근해 4시간여의 노동을 했다. 이씨가 사망한 날도 토요 근무를 한 날이었다. 동료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일회용 쓰레기가 늘어 업무강도가 늘었음에도 학교 측에서 인원 증원 등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고 했다.

유족 측은 이씨가 평소 늘어난 업무 강도와 시험에 대한 피로를 호소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남편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지 10일이 지났는데도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는 이 땅에서 떠났지만,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리에 섰다”면서 “노동자는 적이 아니다. 강압적인 태도로 노동자를 대하지 말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는 2019년에도 청소 노동자가 폭염 속에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 학생대표는 “2년 전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열악한 휴게공간에 대한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됐다고 하지만, 노동자를 바라보는 학교의 인식과 태도가 진정 변했다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시험은 청소노동자에게 어려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는 곳에 대해 알기 위한 차원으로 진행했다. 유가족이 요청한 사항은 논의해 볼 예정”이라며, 다만 “안전관리팀장에 대한 징계 예정은 아직 없다. 평소 업무를 잘 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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