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모 이식한거 맞아?"···모발 이식 사진은 의료기록인가, 아닌가

전현진 기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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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서울중앙지법 514호 법정. 20~30대로 보이는 남성 A씨가 증인석에 앉았다. “4000모 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이식량이 부족해보였습니다.” 형사24단독 박설아 판사의 심리로 증인 신문이 진행 중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다른 병원에 여쭤보고 다녔는데 다들 너무 부족하다고…, 2000모나 3000모도 안 돼 보인다고 했습니다.”

A씨는 2018년 12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모발이식 전문 병원에서 후두부 절개 모발 이식 수술을 받았다. 후두부의 두피를 절개해 탈모 부위에 이식하는 시술인데, 400만원이 들었다. 수술 직후에는 얼굴의 좌측·우측·전면에서 두피 사진을 찍었다. 2019년 9월 A씨가 이 병원을 다시 찾은 건 이때 찍은 사진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모발이 부족해 보인다’고 이 병원 김모 원장과 상담을 했다. 김 원장은 “헤어라인 안쪽에 탈모를 대비해 미리 모발을 심어 총 4000모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법정에서 이 얘기를 하면서 “헤어라인 안쪽으로 애초에 오지도 않은 탈모 부위에 이식 수술을 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서, 진짜 제대로 이식한 건지 알아보려고 수술 직후 찍은 사진을 요청했다”고 했다. A씨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수술 사진은 진료기록에 포함이 되지 않아 줄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김 원장은 모발 이식 수술 후 찍은 사진은 홍보용으로 촬영한 것으로, 진료기록부 등 의료기록과는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또 A씨가 시술 부위의 실밥을 제거해준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확인하려 하거나 수술비를 전액 환불해달라고 요구해 사진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주면 인터넷에 악의적으로 올릴까 걱정됐다는 것이다.

김 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의료법 위반. 의료법 제21조1항은 “환자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본인에 관한 기록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열람 또는 그 사본의 발급 등 내용의 확인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재판의 쟁점은 모발 이식 후 찍은 사진이 환자의 ‘본인에 관한 기록’에 해당되는지 여부였다. 김 원장 측은 A씨에 대한 반대 신문에서 자신의 병원이 수술 전·후 사진을 마케팅 목적으로 수집하는 것을 알았는지, 의료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시술한 것이 맞는지, 시술 후 문제제기를 하면서 수술비 전액을 환불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는지도 다시 물었다.

증인신문 후 재판이 마무리됐다. 검찰은 “사실관계가 간단하다. 사진이 과연 의료법상 의료기록에 해당되는지가 쟁점”이라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원장 측 변호인은 “관계가 어그러진 피해자가 병원을 공격하려는 상황에서 운영자인 원장의 입장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마케팅 목적으로 수집한 사진은 진료기록, 수술기록 등과는 다르다”고 변론했다.

김 원장은 “음식점 손님이 방역 위반 신고를 하고 별점 테러를 하겠다며 음식값 돌려달라는 것을 뉴스에서 보고 자영업자들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저 또한 똑같은 일을 당했다”며 “그동안 선한 삶을 살려고 했다. 선의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정의로운 길임을 재판부가 짚어달라”고 했다.

지난 8일 박설아 판사는 김 원장에게 벌금 100만원 선고했다. “모발이식 수술 직후에 촬영된 수술 부위의 사진도 의료법에 따른 환자 본인에 관한 기록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의료법 조항이 환자 본인에 관한 기록을 ‘진료기록’ 등으로 한정하지 않고 폭넓게 보고 있다는 점, 검찰이 제시한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들었다. 보건복지부는 “(진료기록은) 환자의 치료·진단 과정에서 보유하게 된 모든 기록을 포함하고, 환자의 치료경과 등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 또한 이(의료기록)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박 판사는 “(A씨가) 모발이식 수술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술 직후 찍은 자신의 두피 사진의 열람 내지 사본 발급 등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요구로 보이지 않는다”며 “ (A씨가) 악의적으로 인터넷 등에 그 사진을 유포해 병원에 손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수술 전후 사진이 기록 목적보다는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홍보하기 위한 목적인데, A씨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한다고 해도 병원에 큰 피해가 생길 것이라 예상되지 않는다”며 “사진 제공 요청을 거부하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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