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우에 산불까지···한 달간 지구가 겪은 ‘기후재앙’

김한솔 기자
지난 1일 캘리포니아  오로빌 언덕이 불에 탄 모습. 캘리포니아 지역은 가뭄이 심각해지면서 산불 발생 위험도 늘고 있다. Getty Images

지난 1일 캘리포니아 오로빌 언덕이 불에 탄 모습. 캘리포니아 지역은 가뭄이 심각해지면서 산불 발생 위험도 늘고 있다. Getty Images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지역의 기온이 54.4도를 기록했다. 미국 동부 뉴욕주의 지하철은 집중호우로 침수됐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34.7도를 찍었는데, 120년만에 가장 높은 6월 기온으로 기록됐다. 1년 중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덮인 ‘동토지대’였던 시베리아에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군대가 ‘물 폭격기’를 지원해야 했다. ‘산타마을’이 있는 핀란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라플란드의 기온은 33.6도를 기록했는데, 핀란드의 여름철 평균 기온은 10도 정도다. 캐나다 해안에서는 폭염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해양생물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쓰촨성에는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 72만명이 집을 잃었다.

이는 모두 지난 한 달 새 전세계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기후 조건에 맞춰 인간이 설계해 놓은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의 폭염과 폭우, 대형산불 같은 현상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의 공통적인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비공식 온도가 56도를 기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비공식 온도가 56도를 기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지역의 기온은 지난 9일 54.4도였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이 기록이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기온일 수 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 남동부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고온건조한 이 지역은 1913년 56.6도의 기온이 관측된 적이 있지만, 2016년 연구에서 ‘기상학적 관점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6월 미 전역의 평균기온은 22.5도로, 127년만에 가장 더운 6월이었다고 지난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국 8개주가 역대 최대치의 6월 기온을 기록했는데, 이 중 네 곳이 미 서부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주였다. 더위 뿐 아니라 가뭄도 심각해졌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미국 가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47% 이상은 가뭄을 겪고 있고, 가뭄이 확대되는 곳 중에는 습하고 따뜻한 지역인 하와이도 포함됐다.

뜨겁게 달궈진 땅과 건조한 공기는 대형산불로도 이어진다. 14일(현지시간) 가디언지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벡워스 산불은 네바다 주 경계선을 따라 계속 확산했고, 오레곤주 부틀레그에서 발생한 화재로 5500메가와트의 전기를 공급하는 세 개 송전선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캐나다도 폭염과 산불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에서 난 산불이 파괴한 마을의 모습. AP연합뉴스

캐나다도 폭염과 산불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에서 난 산불이 파괴한 마을의 모습. AP연합뉴스

미 서부가 폭염과 산불에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미 동부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뉴욕은 열대성 태풍 ‘엘사’의 영향으로 내린 폭우로 인해 지난 9일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이 침수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9일(현지시간) “지하철을 탑승하려던 사람들은 허리까지 찬 물을 헤치고 어퍼 맨해튼역까지 갔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폭우와 기후변화 간의 연관성을 즉각 도출하긴 어렵지만, (이미) 미국과 전세계 국가들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극단적 폭풍우 발생 빈도는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미국 뉴욕시내의 지하철역 주변이 폭우로 물에 잠겨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미국 뉴욕시내의 지하철역 주변이 폭우로 물에 잠겨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추운 나라’ 들도 폭염

러시아와 핀란드, 노르웨이 등 ‘추운 나라’들도 폭염에 신음하며 기상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지난달 34.8도의 기온을 기록했는데, 관측 142년만에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 1년 중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야 할 동토지대인 시베리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형 산불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는 시베리아 산불을 진압 중인 소방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물폭격기를 보냈다. 이미 산불은 80만ha의 숲을 태웠다. 가디언은 “2600명 이상의 소방관들이 시베리아 야쿠티아 지역에서 불길과 싸우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시베리아 툰드라 이상 고온 현상이 발생하면서 최근 몇년 간 화재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했다.

낮 기온이 32도까지 오른 지난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 남자가 분수대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TASS연합뉴스

낮 기온이 32도까지 오른 지난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 남자가 분수대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TASS연합뉴스

‘산타마을’로 유명한 핀란드의 최북단, 라플란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핀란드 국립기상연구소는 최근 올해 6월 기온이 신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헬싱키 카이사니에미 기상대의 평균 기온은 19.3도로, 1844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라플란드의 케보지역은 지난달 33.6도를 기록했는데, 이는 1914년 34.7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라플란드 일부 지역은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6월 기온을 보였다고 했다. 핀란드의 여름 평균 기온은 ‘10도’ 안팎이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의 배경이 된 노르웨이의 기상당국도 관측이 시작된 1900년 이래 5번째로 따뜻한 6월 기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촬영된 핀란드 남부 투술라 지역에서 콩들이 가뭄에 말라죽은 사진. 핀란드는 올해 6월 기온이 1844년 이래 가장 높았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촬영된 핀란드 남부 투술라 지역에서 콩들이 가뭄에 말라죽은 사진. 핀란드는 올해 6월 기온이 1844년 이래 가장 높았다. AFP연합뉴스

■생명 앗아가는 극한기후

극한 기후현상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폭염으로 2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9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 보건당국은 더위로 인해 오레곤주에서는 116명, 워싱턴주에서는 7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중국 쓰촨성에서도 최근 시간당 2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홍수가 나 72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폭염으로 폐사한 캐나다 해안의 해양생물들의 모습. CNN 화면 캡처.

폭염으로 폐사한 캐나다 해안의 해양생물들의 모습. CNN 화면 캡처.

생명을 위협받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캐나다 해안에서는 폭염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해양생물들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 주에서는 폭염에 입을 벌린 채 떼죽음을 당한 홍합이 해변을 뒤덮였다. 브리티시 컬럼비다 대학의 해양생물학자 크리스토프 할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홍합류는 30도 중반까지의 온도는 견딜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생존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이러한 이상 기후현상의 공통적인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세계 기후분석을 연구하는 단체인 WWA는 지난 7일 “북미 서부의 극한 고온 현상은 인간의 행위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WWA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다국적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온난화가 계속됨에 따라 이런 극한 기후현상은 과거보다 자주 나타날 것”이라며 “빠른 온난화는 우리의 건강과 복지,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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