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통보받은 ‘세월호 기억공간’…“추모에도 유효기간 있나”

오경민·강한들 기자

서울시 일방 결정에 유족·시민사회 “세월호 지우기” 반발

일상과 추모공간 분리 않는 미·독서 ‘비극 기억법’ 배워야

사면초가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하면서 철거를 통보한 세월호 기억공간이 14일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사면초가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하면서 철거를 통보한 세월호 기억공간이 14일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24평짜리 기다란 목조건물이 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나흘 앞둔 2019년 4월12일 개관한 ‘기억·안전 전시공간(기억공간)’이다. 이후 매년 4월16일이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추모객이 이곳을 찾았다. 광화문을 왕래하는 모두가 볼 수 있게 ‘기억과 빛’ 간판과 노란 리본을 건물 벽면에 내건 기억공간은 지난 2년3개월간 이곳을 지켰다. 14일 기자가 찾은 기억공간은 파란색 공사용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시는 오는 26일 이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지난 5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에 통보했다.

세월호 유족과 시민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유족들이 속한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기억공간은 시민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철거 통보를 하는 것은 ‘세월호 지우기’ ”라며 “대안 마련에 대한 검토 없이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또한 추진하지 않은 서울시에 강력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김훈 작가 등이 속한 ‘생명안전 시민넷’은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은 안전한 나라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서울시의 의지 표현”이라며 “존치를 요청드린다. 시민들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찾고 오가는 광장에서 생명과 안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간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오 시장에게 보냈다.

철거 통보받은 ‘세월호 기억공간’…“추모에도 유효기간 있나”

기억공간을 비롯한 세월호 추모 공간은 ‘이제 그만하라’는 반발에 거듭 부닥쳤다.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은 매년 철거위기를 겪다 지난 4월12일 4·16민주시민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산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건립할 예정인 4·16생명안전공원은 ‘화랑유원지 세월호 납골당 결사반대 시민행동’ 등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우여곡절 끝에 내년에야 공사의 첫 삽을 뜨게 됐다.

기억공간이 광화문광장에 위치한 것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유족 등은 말한다. 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은 “다시는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나선 안 된다고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친 장소가 이곳”이라고 했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저자 김명식 건축가는 “어떤 특정 공간에 들어가 그 한날에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사람들이 지나치는 곳이나 휴식·일상의 공간에서 항상 참사의 기억을 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화문광장만큼 이상적인 추모의 공간도 없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과 같이 일상적인 공간이 가장 좋은 추모공간이며, 유효기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모공간의 규모와 위치는 참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수준과 공감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다. 독일·미국 등은 일상 공간과 추모 시설을 분리하지 않는다.

독일은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베를린 중심부인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에 설치했다. 9·11테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 ‘그라운드제로’는 테러 현장인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그대로 보존됐다.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맨해튼 한복판을 ‘빈 공간’으로 두어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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