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총여학생회’ 폐지 수순···‘캠퍼스 페미니즘’의 미래는

강한들·오경민 기자

서울 소재 49개 대학 중 총여 남은 학교 5곳으로 전멸 수준

총학생회 내 대체기구 논의 중···독립적 활동 어려울 거란 우려도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총여)가 존폐 기로에 섰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지난 16일 1차 공개간담회를 열어 2017년 ‘우리사이’ 이후 4년간 집행부가 없었던 총여의 미래와 존폐 결정방식, 폐지시 대안 등을 논의했다. 학생회는 22일 2차 간담회에서 의견을 수렴한 뒤 학생 대표자들이 모인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총여 존폐 여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확정할 예정이다. 남우석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타 대학은 학생 총투표를 통해 졸속으로 총여를 폐지해왔지만 다수결이 꼭 민주적 절차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충분한 논의의 장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와해된 총여

경희대의 총여 존폐 논의는 2010년대 들어 대학에서 총여가 급속히 퇴조한 흐름을 타고 있다. 1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 소재 49개 대학 중 25개 대학에 총여가 있었는데, 이 중 20대 개학에서 총여가 폐지됐다. 2013~2014년 건국대, 서울시립대, 중앙대, 홍익대에서 총여가 사라졌다. 2016년에는 숭실대가, 2018년에는 성균관대와 동국대, 광운대가 총여를 없앴다. 2019년에는 연세대가 총투표를 통해 총여를 폐지했다. 현재 총여 간판이 남은 대학은 경희대, 한양대, 총신대, 감리신학대, 한신대 등 5곳이다. 이 대학들도 총여학생회장 입후보자가 없어 수년째 집행부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상태라는 얘기다. 서울 소재 대학의 총여가 전멸한 것이다.

2019년 7월7일 서울 여의도 여의나루역 앞에서 열린 ‘대학 내 권력형 성범죄 해결을 위한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대학내 성폭력 사건을 담당하는 인권센터 내실화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2019년 7월7일 서울 여의도 여의나루역 앞에서 열린 ‘대학 내 권력형 성범죄 해결을 위한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대학내 성폭력 사건을 담당하는 인권센터 내실화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백래시’와 학생운동의 퇴조

일각에서는 총여가 막 설치되던 1980년대와 달리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학내 성차별이 사라졌기 때문에 총여가 존재이유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 등에 설치된 고충상담창구를 통해 접수된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신고인 대부분은 여성 학부생이다. 교수들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대학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는 2018년에서야 시작됐다. 학생간 성폭력은 ‘단체카톡방’ 등에서 발생하는 성적 인권침해나 에브리타임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한 여성혐오, 불법촬영 등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들은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고 안전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아직은 (총여를 폐지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강해져 총여회장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2017년 한양대 총여 후보로 나섰던 김모씨와 선거운동본부는 “자살을 추천한다” “총여학X들 죄다 성노리개로 써야 한다” 등 악성 댓글과 메시지에 시달렸다. 2010년 연세대에서 총여 활동을 했던 이경은씨는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가 궐위라고 해서 없애자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며 “여학생 대표이기 때문에 반발이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자기계발과 취업 준비 등에 힘을 쏟으면서 ‘학생 자치’가 전반적으로 와해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학생운동 전반의 퇴조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다. 김예은 ‘모두의 페미니즘’ 대표는 “학생사회 자체가 해체돼 총학생회나 과학생회도 서지 못하는 곳이 너무 많다”며 “총여에 대한 공격이 너무 심하긴 했지만, 총여가 무너진 이유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총여는 1990년대까지 학생운동 안에서 모순된 성문화를 바꿔왔다”며 “2000년대서부터 학생운동 자체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총여도 주춤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와 동국대 총여학생회와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재건단체 등이 2018년 12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잇단 총여학생회 폐지 움직임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고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연세대와 동국대 총여학생회와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재건단체 등이 2018년 12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잇단 총여학생회 폐지 움직임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고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전체 소수자 위한 기구로 재정립해야

대학에서는 총여의 대안으로 총학생회 내 여성위원회나 인권위원회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총여의 대체기구가 총학생회 산하 기구가 될 경우 학내 성폭력 방지·해결, 여학생 권리 보장을 위한 독립적 활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동국대에서 여학생총회 성사를 위한 모임을 이끌었던 문모씨는 “(대안 기구가) 이전과 달리 집행기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문기구로서만 존재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총여를 대체하는 기구는 여성·남성의 성별 이분법을 넘어 소수자를 위한 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현재 교수는 “페미니즘은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차별 자체를 반대해야 옳다”고 했다. 이경은씨는 “소수의 목소리를 대표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한 노력의 결과가 총여였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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