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같이 써내야 하는 ‘이동 동선’·자가격리에도 ‘연차 쓰라’…요양보호사에 가혹한 2021년읽음

유선희 기자
경기도 지역의 한 노인요양센터에서 보호사들에게 받고 있는 이동 동선 기록지.

경기도 지역의 한 노인요양센터에서 보호사들에게 받고 있는 이동 동선 기록지.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수도권 전체가 ‘일시 멈춤’에 들어간 와중에도 특히 고충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노인요양보호사들이다. 주로 80~90대 고령층을 대상으로 일하는 자신들이 혹여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바이러스를 옮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만 있는 게 아니다. 요양보호사들은 날짜와 시간, 활동 내역, 동선 등이 속속들이 포함되는 ‘이동 동선 일지’를 매일 작성해 병원이나 요양시설 등에 보고하고 있다.

실제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대중교통 이용 자제’, ‘공용 엘리베이터 이용 시 별도 사용시간 지정·운영’, ‘타 시·도 이동 자제’ 등을 권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인요양보호사들은 자신들의 이동 동선을 ‘자체 검열’하는 실정이다. 휴일이나 휴가를 쓴 날에도 예외가 없다.

노인요양보호사 배모씨(67)는 지난 1년 동안 연차 때도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했다. 배씨는 “휴가 때도 이동 동선을 다 기록해야 하니 눈치가 보여 그냥 집에만 있게 되더라”며 “동료 보호사 선생님이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서 자고 왔는데, 그걸 두고서도 병원 측에서 사표를 쓰라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배씨는 “최근 백일 된 손자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요즘에는 일반인도 QR코드 입력 등의 방식으로 이동 동선이 확인되는데, 이와 별도로 이동 기록이 세세하게 드러나는 일지를 작성하도록 한 것은 지나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노인요양보호사 강모씨(56)는 “지난해부터 요양보호사들에게 이동 동선을 일일이 기록하도록 했는데, 그때는 QR코드와 같은 시스템이 없었으니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지금은 왜 굳이 일지까지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인권침해로 느껴져 시설 측에 항의도 했지만, 4차 대유행이 터지면서 당장은 저희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지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요양병원에 종사자의 동선 관리 점검표를 매주 작성해 승인받도록 한 보건복지부의 안내를 ‘기본권 침해’로 판단하고, 복지부 장관에게 “동선 작성·제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최소한의 동의만 받을 것”을 지난달 권고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 이후 진단검사를 받거나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연차 사용’을 강요받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 강씨는 “지난 3일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공가가 아닌 연차를 쓰라고 해 직접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관련 서류들을 찾아 제시한 끝에 공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전지현 민주노총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방문과 면회가 막혀 보호사들의 역할은 더 커졌는데, 정작 감시와 감독은 심해지고 처우는 여전히 나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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