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대자보가 사라진 대학가읽음

이두리 기자
대자보가 사라진 서강대학교 게시판. 이두리 기자

대자보가 사라진 서강대학교 게시판. 이두리 기자

대학가에서 오프라인 공론장 기능을 해온 ‘대자보’가 사라졌다.

1980~1990년대만해도 학생운동의 전유물이었던 대자보는 2010년대 들어 대중화와 함께 부활의 날갯짓을 했다. 2010년 고려대 재학생 김예슬씨가 무한경쟁의 대학사회를 비판하며 자퇴를 선언한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대자보가 신호탄이 됐다. 그러나 비대면 수업의 일상화로 학교를 찾는 발걸음이 줄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매개로 한 온라인 공론장이 활성화되면서 대자보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지난 16일 경희대 총학생회는 공개간담회를 열어 총여학생회(총여)폐지 여부를 논의했다. 경희대 총여는 서울 소재 대학에 남아 있는 마지막 총여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학내에서는 관련 대자보를 찾아볼 수 없다. 2년 전만 해도 각종 대자보가 빼곡히 붙어 있던 단과대학 게시판은 텅 비어 있다. 경희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20일 “총학생회 공지 외에는 대자보가 거의 붙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측의 게시판 관리도 소홀해지고 있다. 서강대 총학생회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는 갈기갈기 찢어져 내용도 알아보기 어렵다. 바닥에 나뒹구는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이 대학 수학과에 재학 중인 홍현택씨(26)는 “항상 (게시판에) 읽을거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취업게시판이 됐다”고 했다.

2010년대에 대자보는 디지털 시대에 다시 등장한 복고풍의 재현으로 주목받았다. 2013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주현우씨가 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대학생뿐 아니라 철도 파업 노조원,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등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2017년 9월 숙명여대에 걸린 ‘미투(#MeToo)’ 대자보는 교수들의 성차별 발언을 고스란히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최재훈 연세대 사회학과 연구교수는 ‘집합행동의 개인화와 사회운동 레퍼토리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하던 이전 세대들에게 날린 카운터펀치”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대자보는 각 대학 페이스북 계정이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에 밀려나고 있다. 온라인 공론장은 게시물 작성이 간편해 진입장벽이 낮고, 의제를 빠르게 확산시킨다. 동시에 혐오 표현이나 악성 댓글이 끊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지난해 한 대학에서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이용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SNS 사용 여부에 따른 정보 격차도 문제로 꼽힌다. 경희대 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김정현씨(23)는 “개인적으로 SNS를 거의 안 해서 대자보를 보고 정보를 접해왔다”이라며 “요즘에는 학내 정보가 대부분 SNS를 통해 공지되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놓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텅 빈 경희대학교 게시판. 이두리 기자

텅 빈 경희대학교 게시판. 이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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