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향평가 부실” 제주 제2공항 제동

김한솔 ·송진식기자

환경부 ‘국토부 평가서’ 반려

사실상 사업 전면 재검토 수순

제주 제2공항 사업예정지에 철새들이 모여 있다. 환경부는 20일 국토부가 제출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다며 반려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제공

제주 제2공항 사업예정지에 철새들이 모여 있다. 환경부는 20일 국토부가 제출한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다며 반려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제공

환경부가 20일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다며 이를 국토부로 다시 돌려보냈다.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사업을 다시 추진하려면 재조사 후 평가서 본안을 새로 작성해 검토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사업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당분간 제주 제2공항 사업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이날 “전문기관의 의견을 받아 검토한 결과, 협의에 필요한 중요 사항이 (국토부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에 누락됐거나 보완이 미흡해 반려 조치했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제시한 구체적 반려 사유를 보면, 환경영향평가서 보완 기회를 모두 줬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부가 비행안전과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 등 사업 초기부터 문제가 제기된 사항들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환경부는 먼저 비행 시 조류충돌 문제에 대한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환경부는 참고자료에서 “비행안전이 확보되는 조류 및 그 서식지 보호 방안에 대한 검토가 미흡했다”고 밝혔다. 항공기 소음영향평가에서 최악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점, 모의 예측 결과에 오류가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저소음 항공기 도입’ 등 소음 예측 조건에 대한 담보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멸종위기종과 보전가치가 있는 특이 지형 훼손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점도 반려 사유가 됐다. 환경부는 국토부가 제시한 사업 예정 부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에 해당하는 맹꽁이가 다수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지만, 이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대한 검토 결과가 없었다고 했다. 맹꽁이를 안정적으로 포획해 이주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보전가치가 있는 지형인 숨골에 대해서도 보전 방안이 따로 제시되지 않았다.

비행안전·생물 보호 대책 요구에
국토부 사실상 ‘빈칸’ 제출

환경부는 특히 숨골은 지하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지하수 이용에 대한 영향 조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책연구기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제주 제2공항 재보완서를 검토한 뒤 사업 예정지에 서식하는 생물과 숨골, 용암동굴 등 보호가치가 있는 지형을 보호할 수 없고, 조류충돌 위험까지 있어서 안전하지도 않다며 사실상 부동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바 있다.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지역 내 여론도 부정적인 가운데 정부가 국책사업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검토의견을 받는 KEI 의견도 ‘부동의’ 쪽으로 나오면서 환경부가 부동의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럼에도 환경부가 ‘반려’ 결정을 한 것은 국토부 자료 자체가 미흡해 사업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찬용 환경부 환경영향평가과장은 “부동의 또는 조건부 동의를 하려면 해당 사업이 부적정하거나 적정하다고 판단돼야 한다. 하지만 재보완서까지 받아 검토했을 때,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국토부가 제출한) 자료가 작성되지 않았다고 봤다”고 말했다.

평가서 보완할 기회 줬지만
국토부, 별다른 대안 못 내놔
숨골 지형 보전 방안도 없어

‘부동의’ 아닌 반려 결정 놓고
일각 ‘대선 앞 미루기’ 비판도

환경부가 이번 사업에 대해 ‘부동의’ 대신 ‘반려’라는 애매한 결정을 한 것을 두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미룬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환경부의 ‘반려’ 조치는 무책임하다. 최종 결정권자로서 국토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전에 ‘부동의’라는 결정을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은 성명서에서 “국토부는 제2공항 사업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환경부가 반려 사유로 제시한 조류 서식지 보전 등은 제2공항 건설 시 훼손이 불가피해 절대 해소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국토부는 “현재 환경부로부터 반려 사유를 넘겨받아 검토하는 중”이라면서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환경부가 반려 결정을 내린 환경영향평가서는 국토부가 2019년 9월 환경부에 ‘본안’을 제출한 뒤 두 차례나 보완해 올린 평가서다.

환경부가 이날 밝힌 반려 사유를 보면 과거 국토부의 본안에 대해 ‘보완’ 요청을 내릴 당시 사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부는 반려 사유를 검토한 뒤 향후 계획 등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환경영향평가서 제출 및 평가는 일반적인 행정절차”라고 말했다.

반려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토부가 계속 제주 제2공항 사업을 추진하려면 사업 예정지 등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한 후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다시 제출해야 한다. 제주 제2공항 사업의 경우 2019년 6월 초안이, 같은 해 9월 본안이 제출됐다. 본안 제출 후 두 차례 보완 작업을 거쳐 이날 최종 결론이 나오는 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 국토부가 환경부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지만 노 장관의 발언을 고려하면 법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항공업계에서는 국토부가 재차 사업을 추진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사업 추진이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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