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 안 해서 수술도 못 받는다”…유령아이 언제 없어지나읽음

이하늬 기자

지난 2017년 A씨(69)는 복통과 옆구리 통증, 혈뇨 등의 증상으로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요도협착이 심각한 상태라며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곧 병원에서는 A씨에게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렸다. A씨가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뒤늦게 출생신고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복잡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고 비용도 들었다. A씨는 이뇨제를 복용하며 버텼지만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그는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된 올해 7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법률구조를 받아 서울가정법원에서 출생확인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본인이 출생확인은 받을 수 있지만 출생신고는 직접 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이를 해줘야 하는 지자체와 검찰이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김상민 기자

김상민 기자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4항은 ‘신고의무자(부모)가 기간 내 신고를 하지 않아 자녀의 복지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의 신고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부모가 모두 사망한 A씨는 이를 근거로 지자체와 검찰에 문의했지만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지자체는 이 법 조항을 “아동학대 방지용”으로 좁게 해석해 A씨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검찰은 “처리하는 부서와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출생신고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 비혼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마련되고, 2016년에는 지자체장과 검사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장에선 법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A씨에게만 발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아이’들이 한 해 몇 백명씩 생기고 있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가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아동보호전문기관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9~2020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146명이었다.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네트워크와 함께하고 있는 사단법인두루의 마한얼 변호사는 “실태조사로 파악된 어떤 숫자도 실제 수치와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특히 가정 내에 있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동은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는 출생신고가 없으면 A씨처럼 교육이나 의료 등의 보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A씨는 평생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고 어린 시절부터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해 출생신고 누락 사실을 60년 동안 알지 못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학대로 사망하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1월 인천에서 친모에 의해 희생당한 8세 여아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교육단체나 지자체, 의료기관 등 어디에서도 학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다.

전문가들은 법에 명시된대로 지자체와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A씨를 대리하고 있는 이영임 변호사(김앤이 법률사무소)는 “법에 있는 그대로만 해주면 되는데 지자체와 검찰은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한얼 변호사는 “검찰의 경우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면서 출생신고를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형사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통로가 막혀있다“며 “법이 시행된 지 5년이 됐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지자체장이 출생신고를 한 경우는 한 건도 없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달 21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해,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도’를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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