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홍대 청소노동자에겐 '학생들의 연대'가 있었다읽음

림보 <회사가 사라졌다> 공저자
2010년 3월 서울 신촌역 앞에서 열린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에 참가한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밥 한끼’의 의미 등을 적어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10년 3월 서울 신촌역 앞에서 열린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에 참가한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밥 한끼’의 의미 등을 적어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가 2007년 7월에 출범하면서 대학 비정규직 용역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본격 시작됐다. 대학교 청소노동자 조직 1호는 고려대학교 분회다. 2002년 시도는 실패했지만, 2004년 용역 재계약과 맞물린 노동자들의 불만이 노조 결성의 불을 댕겼다. 2007년 성신여대, 2008년 연세대, 2010년에는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이화여대의 어느 청소노동자는 밥을 사먹기 힘들어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화재위험이 있다고 학교가 유난을 부리는 바람에 밥과 국을 데워먹기 힘들어 겨울이면 찬밥을 먹었다고 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가 2009년 9월부터 대학과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을 파악하면서 듣게 된 얘기다. 어느 학교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일하는 사람에 비해 턱없이 좁았고, 또 다른 학교는 남자 화장실을 개조해 휴게실을 만든 탓에 화장실 냄새가 지독했다.

2010년 3월 3일, 신촌에서 ‘청소노동자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1차 거리 캠페인이 있었다. 밥 한끼 따뜻하게 챙겨먹기 어려운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박탈당한 권리를 알리기 위해 공공노조와 사회단체가 진행한 캠페인이다.

2011년 배우 김여진씨가 주축이 된 트위터 모임 ‘김여진과 날나리 외부세력’이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농성을 지지하며 조선일보에 낸 지면 광고.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1년 배우 김여진씨가 주축이 된 트위터 모임 ‘김여진과 날나리 외부세력’이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농성을 지지하며 조선일보에 낸 지면 광고.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조 만들자 집단해고

2010년 당시 홍익대학교에는 170여명의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들이 용역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었다. 용역회사는 향우종합관리와 ㈜인광엔지니어링 두 업체였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있는 인근 학교들과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견주며 불만이 많았다. 이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했다. 주변 다른 대학들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과 비교하면 2시간이나 더 일한 셈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75만원의 임금(2010년 최저임금은 4110원, 주40시간 근무한다면 월급은 약 86만원은 넘어야 한다)과 한달 9000원(하루 300원×30일)의 식대를 받았다. 언제든 쓰레기가 생긴 곳에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휴게시간은 사실상 ‘대기시간’이었다. 근무지 외 청소노동 등 부당한 업무도 요구받았지만,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가 있는 대기실을 (학생) 두세명이 세 번씩 방문했어요. 처음엔 노조 얘기 안 하고 설문조사만 하다 두 번째 왔을 때 노조 얘기하는데 귀가 솔깃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도와주면 노조를 만들겠다 했죠.”(<나는 청소노동자다_홍익대 청소노동자, 김금옥 씨> 작은책)

다른 학교에 비해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이화여대는 노동조합 결성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홍익대 노동자들은 학생들과 만나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2010년 12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사항은 ▲최저임금을 넘어선 생활임금 보장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 ▲용역 재계약에 따른 고용불안 해결 ▲제대로 된 쉴 곳, 밥 먹을 곳 보장 ▲이 모든 문제를 진짜 사장, 대학총장이 책임질 것 등이다.

그러나 학교는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설 연휴가 끝나기 전날인 2011년 1월 2일 새벽에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같은 조건으로 3개월 연장하자는 제안을 용역회사가 거절했다고 했다. 용역회사가 바뀌어도 그대로 일했던 관례가 있었으므로, 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노동자들이 출근 도장 찍으려는데 출근 카드가 없었다. 학교는 “용역업체 측의 계약 포기가 주원인”이라고만 했고, 결국 노동자 170명 모두를 해고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장기간 농성에 들어갔다. 2011년 2월 20일, 농성 49일 만에 학교 측은 새로 계약한 용역업체들, 공공노조 서경지부와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 등을 골자로 한 잠정적인 합의안에 서명했다.

■2011년과 2021년

홍익대분회 조합원들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보여준 ‘존중하는 태도’에서 자신감도 얻었다. 배우 김여진씨가 1월 7일 농성장을 방문해 조합원들과 함께 밥을 차려먹고 농성장 분위기를 전하는 글을 쓰면서 트위터 이용자들과 만든 모임이었다. 이들은 조선일보 광고 게재, 우당탕탕 바자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덕분에 학생들과 시민의 연대가 이어졌다.

2011년 9월 경희대,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시립대, 인덕대, 2013년 이후 중앙대·광운대·서울여대·카이스트까지 노동조합 결성 분위기가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는 학생들의 연대가 큰 원동력이 됐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한창이던 올해 2월 22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 공공서비스지부는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고용승계합의 10주년 맞이 LG트윈타워 고용승계 촉구 토론회’를 열었다. 2011년 2월 20일 홍익대분회의 투쟁이 마무리된 날에 맞춰 열린 이 토론회 참가자들은 10년 전 홍익대 청소노동자들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아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홍대와 LG 측의 태도, 집단해고 정황과 논리는 정말 판박이다. 두곳 모두 노동조합을 만들자 용역계약을 종결하고 고용승계를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집단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도 청소노동자들의 두 싸움이 이렇게 닮았다는 것은, 여전히 청소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울산과학대도 7년째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고, 신라대 청소노동자들도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42일 이어오던 싸움을 지난 6월 승리로 마무리했다. 도시 곳곳에서 지치지 않고 싸우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엄한 인간으로 일하고자 하는 모든 행보를 지지한다. 그리고 6월 26일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참고자료| <우리가 보이나요>(이승원, 정경원·2011·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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