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는 평등과 통합 포기하는 것” 김경선 차관 인터뷰읽음

글 김서영 기자 ·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여성가족부에 대한 오해, 사실은 이렇습니다’ 지난 7월 15일 여성가족부(여가부)가 공개한 ‘팩트체크’ 자료에 붙은 제목이다. 야당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여가부에 대한 ‘폐지론’이 다시금 불붙고 있는 상황에서 여가부가 ‘정공법’으로 반박에 나섰다. 팩트체크에서 여가부는 “리얼돌을 여가부가 규제한다”, “여가부는 유일하게 한국에만 존재한다” 등의 주장을 바로잡았다. 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재 일주일 만에 트위터에서 158만8000회 가까이 노출됐고, 페이스북에서도 4만3000명 가까이 도달했다.

여가부는 존폐 여부가 주기적으로 입길에 오르내리는 사실상 유일한 정부 부처다. 여가부가 ‘욕을 먹는’ 이유는 다른 정부 부처와는 다소 다르다. 개중에는 따끔한 비판도 있지만, 불성실한 편견과 루머가 크게 작용한다. 지난 7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경선 여가부 차관을 만나 폐지론을 둘러싼 고민, 여가부의 근본적인 존재의의를 비롯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었다. 김 차관은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것은 평등과 공존, 통합이라는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월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월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여가부에 대한 루머는 아주 오래됐지만(죠리퐁 판매 금지 등) 그동안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최근엔 대응 전략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전략은 아니다. 과거엔 여가부에 대한 오해가 일부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주로 얘기된 반면 최근엔 ‘폐지론’이 정치 이슈화가 됐다. 국민께서 똑바로 알고 판단하려면 사실이 아닌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는 건 막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저희가 역할을 다 하지 못한 부분에는 겸허하게 생각하지만 정말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 정확하게 알릴 건 알려야 한다고 봤다.”

-내부 구성원들이 사기가 저하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하나.

“너무 과격한 표현들, 예를 들어 ‘암적인 존재’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비수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막 부임한 어린 직원들도 마음 아파하고 상처를 받더라. 공무원으로서 ‘우리가 좀더 잘해야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도 하고 다들 좀 힘든 시기다.”

-폐지론을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나.

“정말 여가부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대로 가선 안 된다’,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가부가 하는 일을 제대로 몰라 과소평가하는 부분도 있지 않겠나. 여가부는 평등과 통합을 지향하는 조직이다.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것은 그 정부가 평등과 공존, 통합이라는 가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다른 부처가 가지지 못하는 여가부만의 역할과 존재의의는 무엇인가.

“여가부의 업무가 다른 부처와 결코 중복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중복의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특화되고 통합된 지원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를 들어 여성인력 차원에서 보자면 고용노동부가 고용정책을 담당하긴 하지만 이는 기능적인 구분이고, 여가부 쪽에선 현재 한국서 가장 심각한 고용문제는 여성들의 경력단절이다. 경력단절 여성은 육아, 돌봄과 관련돼 있다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고용정책이나 고용서비스만으론 안 된다. 돌봄 문제 해결, 성희롱·성폭력에서부터 안전한 근무환경, 가족친화적인 문화를 만드는 일을 여가부가 고민한다. 또 성폭력 문제는 단순히 처벌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예방과 피해자 보호가 중요하다. 법무부와 경찰이 처벌은 할 수 있겠지만 성폭력 문제엔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방과 보호를 통합적으로 할 수는 없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은 일반적인 ‘복지’의 지원 대상은 아니다. 여가부가 이들을 지원하는 통합 체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폐지할 수는 없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여가부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했다.

“여가부가 여성권익 향상만을 위한 조직이라고 생각해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이미 2014년에 여성발전기본법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바꿨다. 어떤 조직이 특정 성으로만 지배돼선 안 되고 양성이 균형되게 가자는 취지고, 그 혜택을 남성도 받는다. 양성평등채용목표제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혜택을 본 이들 중 남성이 75.7%였다.”

-폐지론자들은 박원순·오거돈 성폭력 사건 등에서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근거로 댄다.

“그분들이 여가부의 피해자 지원체계 안에 계셨고, 우리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미진했다는 지적은 달게 받겠다. 하지만 그 역할(피해자 지원)이 필요 없다는 의견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부분에 있어 여가부를 비판했던 단체도 여가부 폐지에는 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여가부가 똑바로 하란 것이지, 없어지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여가부에는 충분한 예산과 권한이 부여돼왔다고 볼 수 있나.

“예산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예산과 권한이 많다고 곧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없는 살림이지만 여가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겐 충실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산사업과는 별도로 여가부에는 제도나 법률을 추진하는 역할이 있다. 여가부 장관은 국무위원이기 때문에 국무회의에서 양성평등에 필요한 제도에 대해 의견을 내고, 이것이 부처로서 역할을 다하는 데에 꼭 필요한 요소다. 일각에선 여가부를 없애고 성평등위원회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위원회는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인 국무회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법안도 발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이름을 바꾸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명칭을 바꾸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명칭 문제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양성평등가족부, 양성평등가족청소년부 이런 식의 이름도 좋을 것 같다. 평등과 통합, 균형 등 우리 부가 추구하는 가치가 포함된 명칭이면 좋겠다.”

-특히 청년층에서 젠더 이슈에 대한 인식 차이가 몹시 크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자신의 경험에서 인식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청년기 남성들이 특별히 자신이 뭔가 혜택을 봤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인식 격차를 어떻게 하면 좁힐 것인가를 가장 고민해야 한다.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 여가부가 주력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화와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젠더갈등이 심하므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동감하기 힘들다.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은 같지 않은가.”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월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7월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앞으로 여성가족부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보나.

“여가부의 존립 기반은 평등이라는 가치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통합 기능이다. ‘평등 가치 추구’가 여가부가 계속해야 할 핵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과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을 제대로 예방하고 피해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일이 중점이 돼야 할 것 같다. 또 사회통합 차원에서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족과 자녀를 위한 포용 정책을 힘줘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여가부 현안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한국에도 유엔 위민(UN Women)이 출범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었는데, 정식 출범은 언제쯤인가.

“유엔에서 ‘대한민국 성평등 정책이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며 우리에게 먼저 제안을 해왔다. 지난 5월 MOU를 맺은 이후 연말까지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출범하면 유엔 기구로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어떤 역할을 할지는 우리와 협정을 맺을 때 미션을 공유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국제기구가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지난 3월 발표한 ‘여성고용 위기 극복 및 대책’에서 여가부는 올해 안에 약 77만개의 여성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 성과는 어느 정도로 잠정 집계되나.

“‘여성(she)’과 ‘불황(recession)’을 합친 ‘쉬세션(shecession)’이란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전 세계 여성들이 코로나19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은 코로나19로 대면 서비스가 위축되면서 여성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돌봄 때문에 일을 쉬는 ‘이중고’를 겪는 상태다. 그래서 여가부가 주관해 정부 주도 일자리 77만개를 공급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현재까지 80%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 차원에선 여성 일자리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같이 벌고 같이 돌보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고 여성들도 정말 힘들지만, 자신의 일자리에서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는 1인 가구, 비혼 동거, 한부모, 청소년 부모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언급했다.

“정부의 기능은 1인 가구와 다문화 가족의 증가 같은 사회의 변화에 맞춰가야 한다. 1인 가구는 최근 38%에 달하고,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의 5.9%가 다문화 가정 소속이다. 가족정책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과는 차별화되기 때문에 복지정책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가장 핵심은 사회통합이고 이 같은 역할은 앞으로 점점 확산되고 커져야 한다. 특히 헌법에도 보장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핵심가치, 양성평등 원칙이 이뤄져야 한다.”

-양육비 이행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치까지의 절차를 줄이고 처분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지적에 우선은 공감한다. 감치명령까지 받는 데에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우려를 한 바 있다.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 신상공개의 세가지 조치가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일단 제도가 시행되는 것을 보고 평가하면서 추가적인 개선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게임 셧다운제를 두고 최근 김부겸 총리가 ‘전향적인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가부의 입장은 어떤가.

“셧다운제 시행 10년이 되면서 규제방식이 과도하다, 게임 환경이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예전보단 실효성이 적다, 어느 정도 자율적인 문화가 정착됐다는 등의 논거가 나왔다. 폐지, 부모선택제 등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여가부도 폐지를 포함해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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