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편의점·카페 등서 일하는 초단기 근로자에게 ‘4대 보험’은 딴 나라 이야기읽음

박상영·윤지원 기자

취업과 실업 사이, 노동시장에서 경계로 내몰린 청년들에게 사회안전망은 남의 얘기다. 편의점·카페 등에서 자투리 근로를 하고, 보온·보랭 가방을 짊어지고 배달 플랫폼에서 주문을 받아도 근로시간이 주당 15시간 미만인 초단기 노동자는 주휴수당과 퇴직금, 연차는 물론 4대 보험 적용에서 배제된다. 빈번한 ‘쪼개기 고용’으로 사각지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청년유니온이 지난 6월 편의점과 카페, 음식점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만 39세 이하 청년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49.1%가 주당 15시간 미만 일을 했다고 답했다. 10시간 미만도 응답자의 20.3%에 달했다. 이지연씨(20·이하 가명)는 “일을 하려고 해도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밖에 없다”며 “요즘 장사가 되지 않다 보니 카페에서도 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처럼 바쁜 시간대에 잠깐 일할 사람만 찾는다”고 말했다.

문종인 전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초단시간 일자리는 노동자도 스스로 ‘직업’보다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항의하지 않고 그냥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만큼 이들에 대해서도 노동자로서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지는 사각지대…멈춘 ‘고용 안전망’

정부가 올해 예산 6449억원을 투입해 ‘데이터댐’을 추진하는 등 디지털 혁신은 산업의 미래로 꼽히지만, 청년들이 실제로 얻는 일거리는 저임금·초단기 단순노동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 예가 ‘디지털 라벨링’이다. 인공지능(AI)이 학습할 수 있도록 각 데이터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일일이 입력하는 업무라 ‘21세기판 인형 눈알 붙이기’로 불린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 ‘온라인 마이크로워크 노동 상황’을 보면 절반가량이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도 사회보험 미가입자 비율(국민연금 35.5%, 고용보험 56.3%, 산재보험 61.1%)이 비정규직 평균(약 33%)보다 높았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온라인 노동 보호는 일반적인 노동 규율과 규칙의 기준(법률)과 함께 구체적인 규칙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시적으로 취업과 실업을 오가는 프리랜서도 안전망 밖에 놓여 있다. 일러스트 외주 노동자인 노윤호씨(27)는 “일감이 없을 때는 실업상태인 터라 ‘갑’이 계약보다 임금을 적게 또는 늦게 줘도 감내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일하기 위한 대기시간이나 다음 일감을 찾는 등의 비생산적 시간이 상시적으로 발생한다”며 “고용보험은 실업으로 인한 소득 단절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인데 ‘실업’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온전히 기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초단기 일자리마저 부족한 상황에선 저임금을 감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20대 근로자 중 18.4%(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기준)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받고 일했다.

■세대 내 양극화…대안 없는 ‘청년 공약’

일자리에 따른 청년 양극화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대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은 ‘코로나19 이후 월급이 20만원 깎였지만 주 4일 근무로 전환돼 만족스럽다’는 등의 반응이 많다. 소득이 대체로 유지되면서 여가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반면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청년들은 상시적인 해고 위험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더 심화되고 구조적으로 굳어질 청년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대선 주자들의 청년담론에서 이 같은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승윤 교수는 “ ‘노조 때문에 청년이 힘들다’ ‘586 때문에 청년이 힘들다’는 식의 주장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청년담론을 활용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금성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기존 복지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미비해서 이 같은 공약이 제기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교육과 직업훈련의 기회를 보편적으로 확대하고 질도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절대 규모를 늘리려는 기존 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고용 창출’보다 ‘고용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문유진 대표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고 새로운 산업 출현이 이뤄지고 있는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이 같은 산업 전환 과정에서도 안정적인 생활여건을 유지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각종 시험을 통해서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산층까지 지원 대상을 더 두껍게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족해진 청년 일자리와 노동시장 충격의 부담을 사실상 부모세대가 떠안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자녀를 둔 김인수씨(53)는 “아이의 한 달 용돈과 학원비 등으로 100만원가량 지출하는데, 취준 기간이 길어지면 부담이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 제도상 주거나 대출 지원에서 청년층은 부모가 재산이 있는 경우에는 같이 살고 있지 않아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자기 명의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모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며 “부모와 분리해 청년을 독립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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