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일제 강제동원 증거···“왜 군함도에만 분노하십니까”읽음

김찬호 기자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마켓 전경. 과거 일본육군 조병창 지역이었다. 이석우 기자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마켓 전경. 과거 일본육군 조병창 지역이었다. 이석우 기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 역사를 담고 있는 단 하나뿐인 건물이 철거된다. 증거를 없애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 강제동원 피해국 한국 스스로 결정했다. 건물을 철거한 부지에는 공원과 관청 건물을 만들 계획이다. 해당 부지 바로 옆에 이미 공원이 있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특색 없는 공원이라도 크고 넓게만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이미 강제동원 역사를 바라보는 한국의 두가지 시선을 전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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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일본 군함도의 강제동원 역사를 밝히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확보한 강제동원 증거를 없애는데 열중한다. 두가지 상반된 노력 중 잘 알려진 것은 오직 군함도를 둘러싼 외교전 뿐이다. 국민 대다수는 국내에 있는 피해 증거들이 파괴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철거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불시에 진행된다. 밀어버리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헐린 건물이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경향신문은 지난 한달, 우리 손으로 피해 증거를 없애는 과정을 추적했다. 취재가 시작된 후 철거책임을 두고 정부 기관들 사이에 치열한 ‘핑퐁게임’이 벌어졌다. 어느 한 곳도 “최종 철거 결정을 우리가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결정 권한이 없다. 우리는 의견만 전달했을 뿐이다”는 입장은 마치 약속한 듯 같았다. 누구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역사적 건물이 철거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앞으로는 역사적 증거만으로 일본과 사실관계를 따져야 한다. 그때가 되면 누가, 왜 국내에 남아 있던 증거들을 파괴했는지 따지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은 ‘돈’, ‘기간’, ‘법의 부실’, ‘책임 회피’가 망라된 증거 파괴 과정을 기록해 훗날 판단의 근거로 삼고자 한다.

■인천시 부평구 ‘삼릉’마을

인천시 부평2동은 토박이들에게 ‘삼릉(능)’마을로 불린다. 마을 곳곳에 있는 ‘삼능OO’이라는 간판은 이곳이 ‘삼릉’이라는 단어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인천 부평지역에서 3대째 거주하고 있는 박명식씨(59)에게도 ‘삼릉마을’은 추억의 공간이다. 어릴적 할아버지 집이 있던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이기도 했다.

삼릉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을 이름이 포함된 상점 간판. 김찬호 기자

삼릉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을 이름이 포함된 상점 간판. 김찬호 기자

그런데 ‘삼릉’이라는 지명에는 달갑지 않은 역사가 숨겨져 있다. 박씨 역시 “삼릉이라고 하니 무덤이 3개 있나 보다 했지. 그런 뜻인지 알았겠어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삼릉(三菱). 한자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미쓰비시’. 한국인에게 익숙한 전범기업 그 ‘미쓰비시’다.

삼릉마을은 이곳에 미쓰비시 공장으로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박씨에 따르면 부평지역에는 일본식 이름의 건물이 많았다. “동네에 아베라는 이름이 붙은 극장, 창고, 사무실도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광복절이면 소개되는 ‘미쓰비시 줄사택’도 바로 이곳에 있다. 4개동이 남은 줄사택은 폐허와 다름없다. 집 외벽에 붉은 글씨로 ‘철거예정’이라고 적혀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보존되고 있다기보다는 방치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한 상황이다.

인천시 부평구 삼릉마을에 있는 이른바 ‘미쓰비시 줄사택’. 이석우 기자

인천시 부평구 삼릉마을에 있는 이른바 ‘미쓰비시 줄사택’. 이석우 기자

광복절 ‘반짝’ 관심은 ‘미쓰비시 줄사택’을 둘러싼 갈등을 키웠다. 이곳을 개발하려는 쪽은 줄사택에 대한 관심이 걸림돌이다. 개발론자들의 바람은 이곳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보존하고 싶은 쪽은 줄사택의 가치가 광복절에만 조명받는 것이 아쉽다. ‘왜 미쓰비시 사택이 있는지’, ‘노동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등은 주민들에게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렀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이곳에 남은 일제강점기 유적들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철거 후 개발을 하든, 보존 후 활용을 하든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절차는 과거에는 불가능했고, 현재는 무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삼릉마을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미군기지 ‘캠프마켓’에 있다.

■‘캠프마켓’과 ‘인천 일본육군조병창’

인천시 부평구에 자리 잡은 ‘캠프마켓’은 2002년 미군의 평택이전이 확정되며 반환이 결정됐다. 현재는 전국 미군기지에 보급하는 ‘빵’ 공장만 운영 중이다. 2019년에는 캠프마켓 일부 지역이 반환됐다. 하지만 아직도 가장 넓은 크기의 기지 중심부는 반환되지 않았다. 이는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의미다. 바로 이 상황이 부평에 남은 일제강점기 유적들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한다. 미군기지가 앉은 자리가 바로 옛 일본육군 ‘조병창’이라고 불리는 유일무이한 곳이기 때문이다.

조병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에서 부르던 고유 명칭이다. 병기와 탄약 등의 제조와 수리를 담당했던 공장을 의미한다. 부평 조병창이 특별한 것은 그 희귀성에 있다. 일본 육군은 전쟁 말기까지 조병창을 총 8개 운영했다. 일본 본토에 6개,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 1개, 부평이 마지막 1개다. 당시 부평 조병창의 공식 명칭은 ‘인천 일본육군조병창’이다.

일본이 부평을 조병창 부지로 선택한 것은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조건 박사는 “부평은 당시 경성과 인천을 잇는 중간에 위치하면서 한강을 통한 수로 접근이 용이하고 계양산, 철마산, 원적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하고 있다”며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병참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부평이 조병창으로 낙점된 것은 1939년 초로 보인다. 1939년 8월 9일 일본육군 조병창 장관 고스다 가쓰조가 육군대신 이타가키 세이시로에게 보낸 ‘토지 매수의 건 신청’이라는 문서에 부평 일대의 토지 매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육군성이 고스다의 요청을 허가함과 동시에 조선에 ‘제조소’ 증설이 필요한 이유를 기재한 1939년 9월 1일 문서도 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조병창 설립 목적은 ‘만주와 중국 일대로 보낼 병기를 신속히 생산한다’와 ‘부평 조병창은 총기류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부평 조병창 산하에는 부평 제1제조소와 평양제조소가 속해 있었다. 제1제조소 아래는 다시 3개의 공장이 있었는데 공장마다 소총과 탄약, 총검, 군도 등을 나눠 생산했다. 이 밖에도 기숙사와 병원, 매점 그리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킬 기능자 양성소도 만들었다.

부평 조병창의 생산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총검 45만개를 만들었는데 이는 일본 전체에서 생산된 30년식 총검 전체 수량의 5% 이상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육군은 부평 조병창 산하에서 ‘마루유’라고 불렀던 수송 잠수함까지 생산했다. 이렇게 놀라운 생산이 가능했던 근원에는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생산한 총과 총검. 이석우 기자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생산한 총과 총검. 이석우 기자

부평 조병창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두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각각 ‘조병창 등 관련 시설물 건축 단계’, ‘조병창 완공 후 무기 생산 단계’다. 이상의 인천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부평 조병창을 건설하기 위해 김포, 강화,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등 전국에서 강제동원을 했다. 이 교수는 “공사 규모가 컸던 만큼 최소 수천명의 인력이 동원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기 생산 단계에서는 더 많은 조선인이 동원됐다. 일본군이 제작한 ‘유수명부’와 ‘임시군인군속계’ 등의 자료에 따르면 부평 조병창 소속으로 기재된 조선인은 총 1만2584명이었다.

동원자 중에서 주목할 것은 국민학생을 포함한 학생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매일신보 1944년 5월 10일자에서도 확인 가능한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경성공업, 인천중학, 인천상업 등에서 동원이 됐다. 결국 부평 조병창 건물은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조선인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부평 조병창의 가치

전쟁 이후 일본은 서둘러 조병창 관련 역사를 지웠다. 조병창은 전쟁 당시 일본육군의 무기 생산 정도와 의도를 드러낸다. 전후 평화헌법을 채택한 일본국에게 있어 제거해야 할 최우선의 대상이었다. 일본은 내부에 남아 있던 조병창 건물을 없애고, 부지는 공원 등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 사가미 조병창, 부평 조병창 딱 두군데만 현재까지 남아있게 됐다. 두 조병창이 보존된 것은 미군이 주둔기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일본 사가미 조병창 부지의 미군은 이전 계획이 없다. 결국 조병창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부평이 유일하다.

캠프마켓 지역을 구역별로 구분한 지도. 독자제공

캠프마켓 지역을 구역별로 구분한 지도. 독자제공

현재 부평에 자리 잡은 미군기지는 44만㎡에 달한다. 이를 편의상 A·B·C·D 구역으로 나누면 2019년 A구역 10만9961㎡, B구역 10만804㎡의 반환이 완료됐다. 각각의 구역에는 조병창 건물들이 산재돼 있다. 기지 반환 전, 문화재청은 해당 건물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조병창으로 이용될 당시 건물의 정확한 용도와 가치에 대한 조사까지는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아직 반환되지 않은 기지 중심부인 D구역에 주요 건물들이 몰려 있다. 반환 후 정확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지역 반환과 함께 즉시 생겨났다. 미군기지로 사용됐던 지역에 환경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이하 ‘주한미군 특별법’) 제12조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은 반환공여구역을 징발해제 또는 양여, 매각 등 처분하기 전에 지상물, 지하 매설물, 위험물, 토양오염 등을 제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부평 조병창 지역은 이중 토지오염 문제가 있다. 지역에는 여러 소문이 떠돈다. 다이옥신과 같은 심각한 오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부터 단순 유류 오염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만약 다이옥신 같은 심각한 오염이라면 즉각 시민에게 공개하고 근처에 대한 접근도 차단해야 한다.

국방부에 사실관계를 문의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환경공단에 조사용역을 발주해 토지오염 정도를 확인했다. 그 결과, 미군 기지 일부에서 중금속, 유류 오염이 확인됐다. 다이옥신은 없었다. 특히 유류 오염의 경우 반환되는 미군기지 대부분에서 크든 작든 확인되는 오염이다. 오염이 확인된 만큼 법에 따라 국방부는 토지를 정화해야 한다. 그후, 인천시에 부지를 반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화가 필요한 토지 위에 특별한 가치가 있는 건물이 있는 경우다. 이미 반환된 부산 하야리아 부대, 앞으로 반환될 용산 미군기지 등에서도 생겼거나 생길 문제다.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평 조병창 지역은 바로 이 문제가 아주 ‘특별한’ 형태로 발생했다.

캠프마켓 B구역 내에 있는 1780호 건물의 오염도 표시 지도(왼쪽). 초록색은 단순 유류오염을 의미한다. 독자제공

캠프마켓 B구역 내에 있는 1780호 건물의 오염도 표시 지도(왼쪽). 초록색은 단순 유류오염을 의미한다. 독자제공

문제가 된 곳은 B구역 내에 있는 일명 ‘1780호 건물’이다. 이 건물의 용도가 밝혀진 것은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미군 기지 이전에 일본군 조병창이었다는 점에서 건물이 갖는 의미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병원으로 밝혀지기 전에는 이 건물이 조병창 본부 건물로 알려져 있었다”며 “미군 부지가 반환된 2019년, 다른 구역에서 본부 건물을 확인한 후에야 이 건물의 진짜 용도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780호 건물은 병원의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북한군 포격으로 병원 중앙 부분이 파괴돼 별개의 건물처럼 보이게 됐다. 원래 2층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1층만 남아있다. 건물 아래 토지가 유류로 오염됐지만, 건물의 가치는 전문가들 모두 “특별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일제 침략, 6·25전쟁, 미군기지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총망라하는 보기 드문 건물이다”고 평가했다. 굳이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1930~1940년대 건물이라는 점에서도 가치는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지난 6월 철거가 결정됐다. 배 교육부장은 “아직 건물의 내력이나 변천 과정에 대한 조사가 한 번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철거 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캠프마켓 내에 있는 옛 일본육군 조병창 병원건물. 1780호 건물로도 불린다. 이석우 기자

캠프마켓 내에 있는 옛 일본육군 조병창 병원건물. 1780호 건물로도 불린다. 이석우 기자

■누가 철거를 결정했나

1780호 건물의 철거 결정 과정에는 인천시, 국방부, 환경공단, 문화재청, 인천시가 조직한 시민참여위원회까지 다양한 기관과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아닌 저쪽 책임이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만큼 이해를 위해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먼저 철거에 대한 인천시 입장을 들어봤다. 인천시 관계자는 “시에서 철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다”며 “지난해부터 환경공단, 국방부, 시민참여위원들과 함께 회의를 했는데 보존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천시는 관련 조례에 따라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들의 (철거)의결을 따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설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시민참여위원회’의 존재다. 경향신문은 철거 의견이 결정됐다는 시민참여위원회의 지난 6월 17일 ‘제3회 캠프마켓 반환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시민참여위원회(제5기)’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 말미에 위원장은 “국책사업 반납할 지경, 환경정화 1년 반~2년 늦춰지고 비용 증가 등 고려해서 부득이 철거하지만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서 나중에 복원하는 방향으로 모으면 어떻겠나? 이렇게 의견을 모으는 것으로 하고 표결절차는 안 거치고 반대의견을 달아서 위원회 의견으로 정리하겠음”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건물은 특별한 조사도 없이 비용과 시간 문제로 철거한다. 철거에 대한 표결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회의록에는 묘한 대화도 있다. 한 인천시 관계자는 “건물 하부 오염정화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예를 들면 시민참여위원회가 오염된 것을 인정하고 건물을 보존하자는 서명을 하는 등 의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한 위원은 “시민참여위원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표현하셔서 듣기에는 부담된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철거는 시민참여위원들의 의견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나오기까지 인천시의 영향력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수 밖에 없다.

이날 회의의 특이한 부분은 또 있다. 역사적 가치를 이유로 건물 보존을 주장했던 위원들 일부가 참석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연경 인천대 교수다. 이 교수는 미군기지 반환 사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용산 미군기지 반환에도 참여하는 전문가다. 이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가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만약 1780호 건물의 철거가 결정되는 회의라는 걸 알았다면 어떻게든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안건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위원은 또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위원 A씨는 “회의 안건이 철거여부 결정이란 것을 당일 아침에야 알았다”며 “이날 회의에는 국방부, 환경공단 관계자들까지 참석해 건물 철거 외에 토지를 정화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미 철거가 결정된 상황에서 회의를 하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회의록에 따르면 국방부 관계자는 “정화를 하면서 보존할 수 있는지 깊게 고민했으나 이 건물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환경공단 관계자는 “굴착이 확실하고 단기간 저비용인데 다른 방법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정화비용을 떠나서 확실한 정화가 가능한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기간도 예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굴착은 건물 철거 후 오염된 흙을 파내는 것이다.

기술적 문제는 의사결정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다양한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특히, 정화사업 경험자의 조언은 더욱 가치가 있다. 부산 하야리아 미군 부대 이전 당시 환경정화 문제 등에 관여했던 경성대 도시공학과 강동진 교수에게 문의했다. 강 교수는 “건물을 부순 뒤 흙을 파서 세척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식을 택한 것”이라며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건물을 유지한 상태에서 자연 치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사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강 교수는 하야리아 부대 이전 사업에서 얻은 교훈도 들려줬다. 그는 “당시 기름에 오염됐다는 이유만으로 총 380동의 건물 중 355동을 헐어냈다”며 “그 건물들을 어떻게든 남겼더라면 부산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공원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해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유류 오염 때문에 건물을 헐어내는 잘못을 제발 반복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6.25 전쟁으로 파괴되기 전 일본 육군 조병창 병원 중앙부/국사편찬위원회(왼쪽),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6.25 전쟁으로 파괴되기 전 일본 육군 조병창 병원 중앙부/국사편찬위원회(왼쪽),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국방부에 정말 ‘건물 철거가 공식입장’인지 물었다. 국방부는 서면으로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면서 법적 기준 이하로 정화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환경공단과 함께 설명했지만 건물 존치 여부는 인천시가 결정했다”고 답했다. 이후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에 따라 토지 위의 건물 가치가 아닌 환경문제에 대해서만 판단한 것”이라며 “건물 존치, 철거 여부에 대한 결정 권한은 국방부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국방부가 기자에게 보낸 답변을 입수한 인천시가 기자에게 연락해 왔다. 인천시 관계자는 “건축물 철거 결정 권한은 인천시에 없다”며 “향후 활용할지 말지 시민참여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국방부가 환경정화를 해서 철거를 할지 최종 결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철거를 최종 결정 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경향신문은 두 기관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양쪽 입장을 공평하게 실었다. “우리는 건물 철거의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다. 이에 관한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다”는 것이 두 기관의 공식입장이다. 다만, 인천시는 이 입장마저도 시가 아닌 ‘시민참여위원회’가 결정한 의견이라고 했다. 해당 위원회에는 당연직으로 인천시 및 시의회 관계자들 총 7명이 참여하고 있다. 인천시는 “국방부에 건축물 활용계획을 전달하였다”고 했다. 철거는 모르는데, 향후 활용계획은 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 아닌 시간, 비용의 문제

그렇다면, 1780호 건물은 왜 이렇게 급하게 철거해야 할까. 6월 회의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환경정화중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화를 내기 보다는 환경이 이렇게 중요성이 크구나 배우는 기회로 삼았다고 본다. 주변을 폐쇄한 상태에서 ‘정화중이고 건물을 보존하는 중이다’고 하는 것이 환경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 건물의 의미를 살리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B구역에서 (1780호 건물)을 철거한다면 다른 건물을 남길 필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해당 회의에서 건물 철거가 결정됐다.

경향신문은 그 이유를 시민참여위원회의 3월 25일 회의록에서 찾았다. 이날 회의에서 한 위원은 오염 조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토양오염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보면 건축물 아래도 오염돼 있는 걸로 보이는데 건물 아래 기초가 있고 잡석이 깔려 있고 조사가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조사했을까 궁금하다”고 묻는다. 그러자 시청 관계자는 “건물 최대한 인접한 곳에 보링(지질을 조사하기 위해 땅속 깊이 구멍을 뚫는 일)을 한다”고 답한다. 이에 위원은 “몰라서 질문을 드린 게 아니다”며 “건물을 철거하면 그 안쪽은 오염과 별로 상관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건축물은 현 상태로 놔두고 활용계획까지 나온 다음에 철거를 해도 토양오염 정화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청 관계자는 “토양정화 명령권자는 부평구청장인데 3년 이내에 완료를 해야 한다”고 답한다. 철거가 속전속결이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행정기간’ 문제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이다. 또 다른 한 위원은 “1780호 건물 같은 경우 오염은 됐지만 존치를 위해 국방부와 재협의한다고 돼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시청 관계자는 “국방부에서는 건물 주변은 정화할 수 있는데 건물 하부까지 정화하지 못한다고 한다”고 답한다. 이에 위원은 “결국 방법은 건물을 차폐하고 사후 관리를 하는 것이다”고 보존 방법을 설명한다. 그러자 시청 관계자는 “토지 소유권이 넘어오면 오염정화에 대한 책임까지 넘어오게 된다. 추후 비용 부담은 인천시 책임이다”고 답했다. 쉽게 말해, 국방부 비용으로 토지정화를 할 수 있는데 건물 보존을 위해 정화를 하지 않고 소유권을 이전받으면 인천시가 향후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속전속결의 두 번째 이유는 ‘비용’, 좀 더 정확히는 ‘보존 시 인천시가 지불할 비용’의 문제다.

1780호 건물의 중요성은 시민참여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 지역 사학자, 이미 사업을 진행해 본 전문가들이 강조했다. 기술적 한계가 있다면 일단, 차폐 등의 조치를 해두고 적정기술을 찾아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 시민참여위원의 발언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돈과 행정절차 기간 때문에 추후에 후회할 수 있는 건물들을 멸실할 수 있는 겁니다”

■세계문화유산의 꿈

누군가에게 1780호 건물을 철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키고 싶은 이유가 있다. 부평문화원은 일찍부터 조병창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이들의 꿈은 진취적이다. 부평 조병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꿈꾼다. 문화원 소속 허광무 박사는 “일본 군함도 문제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정작 국내에 있는 강제동원 증거는 오늘 철거될지, 내일 철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부평문화원 차원에서 조병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는데 건물이 철거되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사가 진행 중인 캠프마켓 B구역. 옛 일본 육군 조병창 건물들이 보인다. 이석우 기자

공사가 진행 중인 캠프마켓 B구역. 옛 일본 육군 조병창 건물들이 보인다. 이석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30일 한국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를 두고 “갯벌을 지켜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갯벌도 누군가 지켰기 때문에 전 세계의 유산이 됐다. 한 번 파괴된 건물은 어떻게 복원을 하든 본래와 같을 수 없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추진은 통일부에서도 활용해 볼 수 있는 사안이다. 부평 조병창의 부속 기관은 평양제조소다. 북한 역시 해당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평 조병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남북이 함께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의미가 된다.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다양한 기회에 대한 박탈이 될 수 있다.

이 문제가 인천지역에서 결정할 문제가 맞느냐는 지적도 있다. 인천지역 사학자 B씨는 “부평 조병창은 인천의 역사만이 아닌 한반도의 역사”라며 “전국 곳곳에서 국내 최다 인원이 동원된 조병창을 두고 몇몇 사람끼리 이건 철거하고, 저건 남기고 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에 분노한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천시에 보존을 권고했다”며 “인천시처럼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철거를 하더라도 법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권고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은 책임에서 벗어날 증거를 남겨둔 것 정도의 의미”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 역시 철거되는 1780호 건물이 어떤 것이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취재 중 만난 주민들 다수는 “공원을 만드는 것으로 안다”고만 답했다. 철거되는 건물에 인천 지역 10대 소년, 소녀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 있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사 할 수 있는 기회 한 번만”

강제동원은 한국 역사의 문제다. “일제 피해의 역사가 뭐가 중요한가. 모두 덮어 버리자”고 주장하는 정부나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강제동원 실태 조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강제동원 관련 건물, 증거를 남기자는 사람들이 “친일파냐, 미쓰비시 장학생이냐”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미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다툼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역사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증거 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인지부조화’의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개발은 하고 싶지만 역사 문제를 외면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상황. 말과 행동이 양립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것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불시에 증거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미래에도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이 전략의 최선이다.

아직 반환되지 않은 캠프마켓 D구역, 옛 일본 육군 조병창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석우 기자

아직 반환되지 않은 캠프마켓 D구역, 옛 일본 육군 조병창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석우 기자

부평 지역 관계자들은 “8월 초 인천시가 건물을 철거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7일 인천시에 구체적 철거 일정에 대해 질의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8월 초 철거계획은 취소됐다. 먼저 건물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해당 용역 작업을 발주하고 이 작업이 끝나야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취재가 종료된 지난 7월 31일, 지역에서 “8월 20일부터 건물 철거가 시작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예정이 맞다면 취재 후 단 3일 만에 철거 계획을 확정했거나 이미 잡혀 있는 철거 계획을 말하지 않은 셈이다.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은 공통적인 부탁을 했다. “1780호 건물 철거가 선례가 돼 앞으로 반환될 D구역 주요 건물들도 환경정화를 이유로 철거될 것 같다. 조사라도 해볼 수 있게 국민 여러분들이 제발 조금씩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군함도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국내 강제동원 유적들이 사라지는 것에도 문제제기를 해달라”고도 당부했다.

경향신문은 다음 주 부평 조병창 지역의 숨겨진 의미를 후속 보도한다. 일제가 꿈꾼 부평의 활용방안, 그 의도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들이다. 부평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역사적 가치를 갖는 지역이다. 특히 조병창은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조사해보지 못한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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