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와 자원 소비의 최소화·자연 에너지 이용 원칙에 따라 건물 짓는 것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인간활동 전 분야에서 탄소중립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물과 건설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건물 및 건설 부문은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수요의 36%를 차지한다. 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기준 97억t으로 그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380억t)의 25.5%를 차지했다.
세계녹색건축위원회는 산업화 이후 온도 상승폭을 1.5℃ 내로 유지하려면 건물·건설 분야의 대폭적인 탄소 감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모든 건물 신축과 리노베이션 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최소 40% 줄이자는 목표를 제시했다. 모든 신축 건물의 운영 중 탄소배출량은 제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2050년에는 건물 신축과 리노베이션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순제로로, 기존 건물을 포함한 모든 건물의 운영 중 탄소배출량 역시 제로가 돼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 역시 비슷한 목표를 제시했다.
탄소는 건물을 사용하는 동안만 나오는 게 아니다. ‘내재된 탄소(embodied carbon)’로 불리는 양도 상당하다. 건설 자재를 만들고 운송해 건물을 짓는 과정은 물론 건물을 유지·개보수하고 철거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이런 이유로 영국왕립건축가협회는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최대한 그린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과 맞닿은 것이 생태건축이다. 생태건축은 건축이 환경파괴의 주범이 된 것을 반성하면서 에너지와 자원 소비의 최소화, 자연에너지 이용, 생태계 다양성 보존이라는 원칙에 따라 건물을 짓는 것이다. 친환경건축, 제로에너지빌딩, 그린건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되고 있다.
생태건축 분야에서 프리츠커상 나올 가능성
글로벌 각지에서 생태건축에 기반을 둔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도시의 버려진 건물과 시설을 허무는 대신 새로운 쓰임새를 가진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건축가인 남상문 날곳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꼽은 대표적 사례는 지난 5월 뉴욕 허드슨강에 개장한 리틀 아일랜드 수상공원이다. 철길을 정원으로 만든 뉴욕 하이라인 파크처럼 버려진 부두를 도심 공원으로 만들었다. 덴마크 건축사무소 BIG가 설계한 코펜힐도 좋은 사례로 들었다. 코펜하겐시가 2025년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세운 열병합발전소인데 2019년 말 85m 높이의 옥상을 스키장과 등산길로 만들어 화제가 됐다. 국내 사례로 부천의 아트벙커B39를 들 수 있다. 폐소각장을 전시·공연 등이 가능한 문화시설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정수장을 생태공원으로 바꾼 서울 영등포구의 선유도공원과 석유비축시설을 재사용한 상암동 문화비축기지도 모범 사례로 들 수 있다.
도심의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하는 것은 도시재생과 콤팩트시티 개발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콤팩트시티는 도시의 버려지거나 이용이 저조한 땅을 주거와 일자리, 문화시설로 재창조해 도보권으로 묶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가 대표적이다. 남상문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신도시 개발보다 기존 도시를 직주근접이 가능한 콤팩트시티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대표는 “일본도 그랬지만 인구가 줄면 결국 베드타운에 불과한 신도시는 폐허가 되고 다시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오게 된다”면서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직주근접이 가능한 콤팩트시티를 만들어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고, 그 안에서도 절대다수인 노후 건물과 공동주택을 그린 리모델링해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주거·상업지구로 도시구역을 나누는 대신 한공간에 주거와 업무, 문화시설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복합용도 지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개발 위주의 도시 정책이 이어져 생태건축의 발전이 더디지만 해외에서는 프리츠커상 수상 가능성이 점쳐질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햐얏트재단이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프랑스의 안느 라카통과 장 필립 바살을 선택한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이들은 기존 건물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투명패널과 온실기술을 이용해 거주 공간의 면적과 기능을 확장하는 작업을 했다. 남 대표는 “하얏트재단은 작품성과 예술성을 위주로 심사하는 보수적 성향을 보였는데 올해엔 도시재생과 도시빈민 운동에 관심을 보이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전환의 과정을 보였다”면서 “이젠 생태건축 분야의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린 리모델링 위한 제도 지원 필요
생태건축에 기반을 둔 신축 프로젝트도 많아지고 있다. 수직정원·옥상정원을 활용한 건물 녹화가 대표적이다. 최근 사례로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건설될 ‘피렐리(Pirelli) 39’를 들 수 있다. 기존 건물을 친환경 건물로 리모델링하면서 동시에 그 옆에 새롭게 주거타워를 세우는 사업이다. 주거타워에는 여러층에 걸쳐 1700㎡의 초목을 심었는데 여기서 연간 14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9t의 산소를 생산한다. 2770㎡의 태양광 패널을 갖춰 에너지 요구량의 65%를 자체 생산한다.
아마존이 버지니아주 알링턴 본사 사옥으로 세우는 ‘헬릭스(Helix)’도 주목받는다. 나선형 건물 지붕을 따라 옥상정원을 만드는데 나무숲을 따라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 예정이다. 2025년 완공 예정인데 자연광을 최대화하고 에너지를 태양열 발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로 설계된다. 차태권 더이레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옥상정원만 제대로 해도 도심 열섬효과를 완화하고, 에너지 절약으로 탄소를 절감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면서 “선진국은 근대건축의 후유증을 몇십년 전부터 깨닫고 대안적인 건축을 연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데 국내에선 학계의 연구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0년부터 신축 건물의 제로에너지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구축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도 필요하다. 송두삼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탄소세와 같은 징벌제도로 건물의 탄소배출을 자발적으로 줄이도록 유도하면서 한편으로 오래된 건물은 정부 예산을 투입한 그린 리모델링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우리 건물 전체의 74%는 15년 이상된 노후 건물이다”면서 “결국 기존 건물을 그린 리모델링해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로 개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린 리모델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 그만큼 탄소배출권을 인정해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건물의 전체 생애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할 때 건설 과정에서 생기는 내재 탄소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면서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들도 기존 건물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자원과 에너지 투입을 최소화하는 리모델링을 했는데 수상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근본적으로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도심엔 콤팩트시티가, 신도시엔 자족적 기능이, 전원에는 타운하우스처럼 밀집한 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