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도심-도시숲 온도 모니터링
건물 옥상-가로수 그늘 온도차 27도
기후위기 시대 '생존의 문제'가 된 도시숲
“아, 어지럽네요.”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3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 오른 서홍덕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나무 그늘 한 점 없는 공터에 설치된 열화상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지난달부터 폭염 상황에서 도심과 도시숲 간 온도 차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오후 3시쯤은 종일 햇볕에 달궈졌던 건물과 지면이 품고 있던 열기가 서서히 방출되기 시작하는 때다. 아직 지지 않은 해와 방출되는 열기가 더해져 체감온도는 높다. 카메라 앞에 선 지 10분이 되지 않았는데, 이미 열화상카메라에 측정된 서 박사의 얼굴표면온도는 38.1도를 기록했다. 대기 중 온도를 측정하는 간이 온도계에 나타난 39~40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대, 응봉산 바로 앞의 서울숲에서 잰 얼굴표면온도는 2.1도 낮은 36도였다. 나무 그늘 밑과 그늘 밖에서의 온도 차가 2도 넘게 난다. 서 박사는 “보통 숲의 기온 저감 효과는 3~7도로 발표되지만, 여름에 온도 차가 많이 날 때는 얼굴표면온도가 10~15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지난 3~4일,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의 서울과 대구 모니터링 현장에 동행했다.
■ 붉은 도심, 나무 있는 곳 파란색
서울 성동구에 2005년 조성된 서울숲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숲 옆으로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이 중에는 전면이 짙은 색 유리로 된 것들도 있다. 이 전경을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해보니 온도 차가 뚜렷했다. 서울숲 안 큰 나무들이 있는 곳은 낮은 온도를 의미하는 하늘색으로 표시됐고, 고층 건물은 높은 온도를 나타내는 노란색과 주황색, 붉은색이 섞여 있었다. 평균값을 조절한 숲은 28.8도, 건물의 온도는 37.4도로 기록됐다. 숲과 바로 옆 고층 건물 간 온도 차가 8.6도나 되는 것이다. 모니터링을 진행한 지난 3일은 소나기가 내려 서울 평균기온은 31.3도로 최근의 폭염 때보다는 다소 낮았지만, 습도가 67%에 달하면서 체감온도는 매우 높았다. 고온건조한 날씨에는 숲과 건물 간 온도 차이가 더 벌어진다. “건물 색깔에 따라서 차이가 확실히 많이 나요. 밝은색 건물보다 짙은 색 건물, 통유리로 된 건물에서 온도 차가 커요.” 서 박사가 말했다.
숲의 온도가 낮은 이유는 나무 때문이다. 나무는 나뭇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직사광선을 막아주고, 흡수한 물을 잎을 통해 다시 내뿜는 증산작용으로 열을 식혀준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심에 열섬현상이 있다면, 도시숲에는 ‘냉섬현상’이 있는 것이다. 나무는 한 그루보다는 두 그루가, 아스팔트에 홀로 식재된 나무보다는 잔디나 관목이 함께 있는 나무가 온도를 낮추는 데 더 효과가 좋다.
오정학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숲은 상대적으로 온도변화에 민감하지 않아서 도심의 완충재 역할을 해준다. 도로와 건물은 직사열, 반사열을 받아 온도가 급격히 오르내리기도 하고, 아니면 완만하게 떨어지면서 열대야 현상을 일으키지만 숲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응봉산에서 촬영된 열화상 사진에선 ‘숲의 효과’를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서울숲과 거의 붙어있는 한 시멘트 공장의 온도는 43.7도였다. 공장 앞 도로 온도는 40.7도, 숲 뒤 건물은 37.6도를 기록했다. 그 중간에 위치한 숲 온도만 29.7~30.2도로 최대 14도가량 차이가 났다.
■ 한 그루만 있어도 제 역할
서울숲의 면적은 115만6498㎡로, 도시숲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다. 숲이 커서 열을 낮추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4일 찾은 대구의 국채보상공원은 공원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국채보상공원의 면적은 4만3000㎡, 서울숲의 26분의 1 규모인 소공원이다. 여의도공원(22만9539㎡)의 5분의 1 정도 크기다. 대구 중구청 바로 앞의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덥기로 유명한 도시의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공원이다.
공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대구 중구청 옥상에서 국채보상공원이 포함된 전경을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이날 중구청 옥상은 간이 온도계로 41도 이상을 기록했다. 오후 2시 기준 열화상 사진에 촬영된 건물은 41.3도, 숲의 온도는 이보다 8.2도 낮은 33.1도였다. 도로를 따라 가로수가 빽빽하게 심긴 곳에서도 온도 차가 나타났다. 도로는 51.8도였지만, 그 옆 가로수길은 28.5도였다.
온도 차는 얼굴표면온도 측정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났다. 그늘이 없는 공터에서 촬영한 얼굴표면온도는 40.7도였다. 공터에서 100m쯤 떨어진 숲 안으로 들어가 그늘 밑에서 촬영한 얼굴표면온도는 36.6도로, 4.1도 차이가 났다. 공원이 작아도,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제 역할을 한다.
■ 서울에 도시숲을 만들려면
2019년 말 기준 우리나라 도시면적은 261만㏊인데, 이 중 121만2000㏊가 도시숲이다. 전체 도시의 46%에 해당한다. 1인당 도시숲 면적은 256.62㎡이다. 하지만 이 중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인당 11.51㎡로, 전체 도시숲 면적의 4.5%, 전체 국토 면적의 0.5%에 불과하다. 생활권 도시숲은 집과 멀리 떨어진 산이 아닌, 집 근처 공원이나 가로수길 같은 실제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접근성이 높고 일상에서의 효능감을 줄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지역 차도 크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수도권 인구 수(2596만명)는 비수도권 인구(2582만명)보다 많다. 인구가 밀집한 도심은 여름에 더 덥다. 도시숲의 효능감을 높이려면 인구가 많은 곳에 숲도 더 많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과 수도권의 도시숲 면적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서울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6.87㎡, 경기 8.37㎡, 인천은 9.89㎡다.
서울에 대규모 도시숲을 조성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비싼 땅값이다. “서울은 지가가 높기 때문에 공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요.” 김평기 산림청 사무관이 말했다.
인구는 많고, 땅값은 비싼 서울에 도시숲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숲’이라는 단어가 붙어 ‘도시숲’이라고 하면 최소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원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도시숲의 기준은 ‘나무 한 그루 이상’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공원뿐만 아니라 도로 옆에 줄지어 있는 가로수, 아파트 단지나 학교 내의 조경, 건물 옥상과 벽면의 녹화사업, 수목원이나 정원 같은 것까지 모두 도시숲에 포함된다. 서울숲 같은 규모가 큰 공원을 조성하면 좋겠지만,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녹지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 사무관은 “도시권에 산재된 국유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효과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생활권 도시숲이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시숲 모니터링 과정에서 굳이 얼굴표면온도를 측정하는 것도, 사람들이 ‘체감’하는 온도 차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기후위기, 공원은 생존의 문제
“이젠 ‘공원 있으면 좋지’가 아니에요. 생존의 문제예요.”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숲과 같은 녹지는 ‘조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
9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최신 보고서는 21세기 중반까지 지구 평균기온은 계속해서 상승할 예정이며,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온난화가 진행될 경우엔 ‘극한 고온’ 현상이 과거보다 8.6배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보다 강도 높은 폭염이 더 자주 나타날 것이란 경고이다.
서 위원은 “지금은 폭염의 서막”이라며 “대도시에서 (도시숲 문제를)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여름에 도시에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