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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여성주의 성향의 단체 ‘신남성연대’가 회원들을 동원해 온라인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달거나 공감 비율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인터넷상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을 통해 동조자들을 모은 뒤 페미니즘으로 낙인 찍은 기사나 자신들 입맛에 맞는 기사에 몰려가 ‘반대’ 댓글을 달거나 같은 편 댓글에 ‘추천’을 누르게 하는 식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가 조직적인 여론전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 남성연대 카카오 채널의 소개 . 신 남성연대 운영진이 언론정화팀 채널에 기사 링크를 올리면 회원들은 악성 댓글을 달거나 ‘화나요’ 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고, 단체 의견과 비슷한 댓글에 추천을 몰아줘 ‘베스트 댓글’을 선점하게 했다.

신 남성연대 카카오 채널의 소개 . 신 남성연대 운영진이 언론정화팀 채널에 기사 링크를 올리면 회원들은 악성 댓글을 달거나 ‘화나요’ 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고, 단체 의견과 비슷한 댓글에 추천을 몰아줘 ‘베스트 댓글’을 선점하게 했다.

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신남성연대는 지난 2일부터 익명 기반의 메신저 프로그램 디스코드에 ‘우리가 남성연대 쉴드다’라는 대화방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신남성연대는 보수 성향의 유튜버 ‘왕자(실명 배인규)’가 지난 4월 만든 단체로, 네이버 공식 카페에 가입한 회원이 1만3000여명에 이른다. 이 단체가 만든 디스코드 대화방에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3만8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신남성연대 운영진은 자체적으로 판단하거나 제보를 받아 기사를 고른 뒤 디스코드 대화방 내 ‘언론정화팀’ 채널에 공지했다. 운영진이 언론정화팀 채널에 기사 링크를 올리면 회원들은 악성 댓글을 달거나 ‘화나요’ 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고, 단체 의견과 비슷한 댓글에 추천을 몰아줘 ‘베스트 댓글’을 선점하게 했다.

신남성연대 운영진이 디스코드 대화방에서 기사 링크와 여론 조작 지침을 공지하고 있다. 디스코드 화면 캡쳐

신남성연대 운영진이 디스코드 대화방에서 기사 링크와 여론 조작 지침을 공지하고 있다. 디스코드 화면 캡쳐

디스코드 대화방에 ‘좌표’가 찍힌 기사들의 댓글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집단 행동으로 전반적인 댓글 여론도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오후 7시25분에는 <“페미야?”…안산 괴롭힘 전부터, 여성에겐 일상인 ‘사상검증’> 기사에 대한 여론 조작 지시가 떨어졌다. 기사는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로 출전한 안산 선수를 향한 인신 공격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좌표가 찍히기 전 10분 동안 달린 댓글은 54개였지만 좌표가 찍힌 뒤 10분 동안 이전에 달린 댓글의 15배가 넘는 815개의 댓글이 추가로 달렸다. 주로 “페미니즘=절대악”, “페미니스트들의 선동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한 방송사의 유튜브 영상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안산 선수를 이용해 국민들을 선동했다”는 댓글이 잇따라 올라왔는데, 이 역시 신남성연대 운영진이 구체적인 문구까지 지정해 공지한 사안이었다.

한 언론 비평 전문지 인터넷판에 게재된 <○○일보 기자들, “나쁜 페미는 급진적 페미로 써라” 공지 비판>에도 신남성연대가 회원들이 달라붙었다. 이 기사에는 해당 링크가 신남성연대에 공유되기 전 20시간 동안 ‘여성혐오성’ 댓글이 34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신남성연대에 링크가 공유되며 ‘좌표찍기’가 시작된 이후 6시간30분 동안 새로운 댓글이 380개 달렸다.

특정 기사를 옹호하는 여론조작 시도도 포착됐다. 페미니즘과 관련해 대선주자 캠프의 한 인사가 한 비판적인 발언을 소개한 기사였다. 이들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받은 <윤석열 측 “페미니스트가 먼저 ‘한국남자=한남충’ 주장”> 기사에는 좌표 지정 이후 10분 만에 390개의 댓글이 쏟아졌다. “여성혐오가 아니라 페미혐오” “정상적인 여자들은 페미니즘이 여성이기주의고 남성혐오주의인 거 다 안다” 등 내용이었다. 운영진은 디스코드 대화방에서 “포커스는 윤 후보의 페미니즘 발언이 실언이 아니었음을 지적하면 된다”는 지침까지 하달했다.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는 여론을 다룬 한 방송사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달린 댓글. 유튜브 화면 캡처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는 여론을 다룬 한 방송사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달린 댓글. 유튜브 화면 캡처

채팅방 회원들은 운영진이 찍어준 좌표를 충실히 따라가며 댓글을 달았다. 지난달 12일부터 네이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한 ID(kimj****)로는 최근까지 댓글 26개가 달렸는데, 이 중 24개의 댓글이 신남성연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였다. 신남성연대는 해당 ID 이용자가 남긴 댓글 가운데 1개를 콕 집어 회원들에게 ‘좋아요’를 요청하기도 했다.

운영진은 “화력을 보여줍시다”라며 회원들의 활동을 독려했다. 운영진은 “좌표를 찍었는데도 화력이 밀린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제보해달라. 내가 (인터넷) 방송을 켜면 10분 만에 제압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여론 조작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오늘 기사도 먹었다”거나 “페미니스트들아 너흰 우리 못 이긴다”고 했다.

운영진의 지침은 구체적이었다. 운영진은 한 기사를 공유하며 “기사 화나요, 공감비율 순 누른 후 우리편 댓글 좋아요, 페미니스트 댓글 신고”라고 지시했다. “우선 베스트 댓글을 차지해야 한다. 댓글 많이 써주는 것은 그 다음”이라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네이버 기사의 경우 공감 표현을 하루에 50번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총알을 아껴 전략적으로 하자”거나 “위 기사는 점령했으니 총알 낭비 말고 다음 기사로 가자”는 내용도 공유했다.

신남성연대는 ‘페미니스트들이 먼저 여론 조작을 했기 때문에 대응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남성연대를 창설한 ‘왕자’는 한 유튜브 영상에서 “우리는 (여초 커뮤니티의) 여론 조작을 막고자 모인 순수한 청년들이다. 뉴스가 그들에게 먹혔기 때문에 우리가 들고 일어난 것”이라며 “이 화력 전쟁에서 밀리면 페미니스트들의 여론이 대한민국 국민의 여론으로 호도되고, 정치인들도 페미니스트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법안을 발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댓글 여론 조작 시도를 한국전쟁에서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다 반전에 성공한 ‘인천상륙작전’에 비유하기도 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작으로 만들어지면 ‘과대 대표’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최근엔 유튜브 등에서 ‘여성 혐오’를 통해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구조가 생긴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han.kr
이홍근 기자 redroot@khan.kr
한수빈 기자 subinhan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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