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무엇이 문제인가

②‘위험관리의 외주화’만은 막아야

손익찬 변호사 민변 노동자건강권팀장
[릴레이 기고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무엇이 문제인가]②‘위험관리의 외주화’만은 막아야

내년 1월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서는 경영책임자가 종사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할 의무가 있다고 정한다. 즉 이 법은 생산이나 판매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지키는 일도 최고경영자의 역할이라고 정해준 것이다. 그중에서도 법률 제4조 제1항 제4호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책임지고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에서 정하기로 했다.

이를 자세히 보기 위해 입법예고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5조 제2항 제1호 및 제2호를 보자.

시행령을 보면, 최고경영자가 반기별 1회 이상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였는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으라고 정한다. 그리고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최고경영자가 보고받을 경우, 법을 지키기 위해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한다. 즉 최고경영자는 사업장에서 법령을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고, 보고받고,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점검 자체를 외부에 위탁할 수 있다고 정한 부분이다(제1호 제2문). 최고경영자가 안전보건과 관련된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문을 받을 수는 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자문을 구하든지, 아니면 전문가를 채용할지는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아예 점검업무 자체를 맡겨도 된다고 허용한 것은 외부에서 자문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법예고안처럼 정할 경우에는 최고경영자가 ‘나는 외부에 점검을 맡겼고 그 결과를 보고받았기 때문에 내 할 일을 다 한 것이다’라고 변명하며 빠져나갈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다.

둘째로, 법률에서는 안전보건 법령에서 정한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하라고 정한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이를 좁혀서 ‘의무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최고경영자가 보고받은 사항에 한정하여 조치할 의무’가 있다고 정한다. 즉 법률에서 법령준수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정한 것과는 달리 시행령에서는 보고받은 범위에 한정하여 조치만 하면 된다고 정한다. 그러나 보고내용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누가 책임을 지는지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손쉽게 면죄부를 줄 수만 있다고 보인다

점검과 보고를 외부에 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과, 최고경영자가 보고받은 범위 내에서 조치할 의무만 있다고 정한 내용을 결합하면 ‘위험관리의 외주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외부기관으로부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점검결과를 보고받았고, 그 보고에 따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라면, 설령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경영책임자가 면책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경영단체들은 지난 4월13일에 최고경영자가 연 1회 이상 의무사항의 이행여부를 점검하고 보고받기만 하면 그 의무를 다한 것으로 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그 점검과 보고 전체가 외부기관에 위탁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양향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기 전부터도 경영단체들과 유사한 내용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 점에서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경영단체들과 양향자 의원이 주장한 내용과 본질적으로 같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적어도 점검업무 자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안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최고경영자가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외부에 맡겨놓고 나몰라라 하는 것은 ‘위험관리의 외주화’를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점검·보고받은 내용에 따라서 필요한 조치를 하기에 앞서서, 최고경영자가 자신이 보고받은 내용이 타당한 것인지를 한 번 더 숙고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으로 시행령이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외부에 일을 떠넘겨 처벌을 피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사고를 예방할지를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안전보건 문제에 관해 충분한 고민과 그에 따른 조치를 한 사업주는 면책하는 방향으로 법과 정책이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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