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중대재해처벌법 정부 시행령안이 모호하다며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대재해처벌법 및 정부 시행령안은 사실상 재계의 요구에 따라 통상 형사법에서 통용되는 명확성 원칙의 법리 이상의 과도한 명확성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죄형법정주의의 위반 소지가 있고 위헌, 위법이며 오히려 중대산업재해 책임자의 처벌 범위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혹은 그 이하로 좁힘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과 취지를 훼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태생부터 중요한 반성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미 형법 제268조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있고,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경우 처벌을 하는 벌칙 조항이 있지만, 형법에서는 과실범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이라는 이유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에 소홀했다. 기존 법령으로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유의미한 처벌은 힘들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천물류창고 화재사건에서 한익스프레스 측은 피해 사망자의 유족들에게 ‘발주처는 처벌된 적이 없다. 법적 책임이 없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중대산업재해 상당수는 애초에 예견 가능하고 선택 가능했다.
예컨대 발주처가 더 많은 이윤과 비용절감을 위해 공기를 단축하고, 위험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안전로를 폐쇄하는 등의 근로자 안전을 희생하는 선택을 해서 발생했다. 노골적으로는 안전비용보다 싼 벌금을 내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선택의 결과였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적인 과실범과는 달리 미필적 고의에 의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마치 이제는 더 이상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우연이라고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애초에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형사법(법 제1조 목적)이다. 다시 말해 일반 과실범보다는 엄격한 처벌을 하고, 근로자의 보호기준을 정한 근기법이나 산안법의 사각지대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근로자의 최소한의 보호기준을 정한 근기법이나 산안법과 교집합은 있지만, 그 법들의 특별법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산업재해 처벌의 구조는 단순하다. 법 제2조에서 중대산업재해를 정의하고, 제4·5조에서 의무사항을 정하고, 법 제6·7조에서 위 제4·5조의 의무사항을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법 제2조 제2호의 중대산업재해 정의 중 ‘다.’목 질병 부분과 법 제4조 제1항 제1호와 제4호의 의무사항의 구체적인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점이다.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원칙적으로 범죄의 내용은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
살인죄는 형법에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도 이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다며 대통령령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자고 하지 않는다. 모든 법률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래야 사각지대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조항들은 통상의 형사법 조문들이 갖추고 있는 명확성을 갖고 있다. “명확성원칙이란 기본적으로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명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법 문언이 법관의 보충적인 가치판단을 통해서 그 의미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보충적 해석이 해석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없다면 명확성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헌재 2011헌바225 결정)”는 확립된 판례 법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소위 재계는 이에 반하는 과도한 명확성의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마치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해야 살인죄로 처벌받는지를 더 자세히 명확하게 규정하라는 것과 같다. 이쯤 되면 재계가 죄형법정주의에서마저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 등에 대한 특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제발 원칙을 지켜서 본말전도만은 막자. 권한 있는 사람이 책임자고,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 사망재해만은 겨우 막을 수 있다. 하루 평균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2.4명이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