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변영주·핫펠트 “N번방이 가능했던 한국 사회, 조직적으로 뒤집겠다”

이하늬·허진무 기자
<b>서지현·변영주·핫펠트</b>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TF’ 팀장인 서지현 검사,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된 변영주 영화감독, 가수 핫펠트가 지난 12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서지현·변영주·핫펠트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TF’ 팀장인 서지현 검사,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된 변영주 영화감독, 가수 핫펠트가 지난 12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가 지난 12일 공식 출범했다. 법조, 언론·시민사회, 예술, 정보기술(IT) 등 분야별 전문가 10명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위원회는 ‘장년 남성 위원회’란 공식에서 벗어나 출발했다. 평균 연령 36세, 일단 젊다. 전문위원들은 각자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들이다. 여성 영화 여러 편을 연출한 변영주 감독이 위원장을 맡았고,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가수 핫펠트(본명 박예은), 디지털성범죄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불꽃)과 ‘리셋’이 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가 있다.

서 검사는 위원회 출범에 앞서 지난 6월 법무부·검찰 인사에서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아 전문위원들을 직접 섭외했다. 일면식이 없던 핫펠트에게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다. “가수가 무슨 전문성이냐”는 공격에 서 검사는 “1세대 아이돌로 시작해 14년 동안 여성 K팝 가수로 활동했다”며 “공연·예술 분야의 전문가”라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TF와 함께 성폭력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선 전문위원회 활동과 성과에 쏠릴 것이다. 전문위원 위촉식과 첫 회의가 열린 지난 12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서 검사, 핫펠트, 변 감독을 만나 활동 계획을 들어봤다.

서지현

‘미투’를 한 뒤 가장 힘들었던 건
변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성범죄 전반의 대응체계 점검해
종합대책 만들어가는 게 목표
바로 실현 안 돼도 ‘이정표’ 될 것

- 전문위원회가 어떻게 꾸려졌고, 전문위원을 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지현(이하 ‘서’) = 저희가 정부 위원회 중 가장 젊은 위원회일 것 같습니다. 평균 연령이 36세거든요. 디지털성범죄 가해자·피해자 대부분이 10~30대입니다. 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목소리를 반영하려고 합니다. 같은 세대의 불꽃·리셋 활동가가 있습니다. 여러 의견을 법제화하기 위해 법률가들과 함께 실효적 방안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변영주(이하 ‘변’) = 서 검사가 시스템 안에서 정의를 세워보겠다고 하니 수락할 수밖에 없었죠. N번방 사건 초기에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것도 아닌데 오버하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들의 명령을 따르는 거냐’ 같은 반응이 나왔어요. 기성세대로서 피해자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있어요. 그런 반응이 리셋이나 불꽃 같은 자경단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리셋과 불꽃은 용감하죠. 하지만 정의는 시스템이 만들어줘야 합니다.

핫펠트 = 서 검사로부터 법무부에서 이런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함께하고 싶다고 인스타그램에서 메시지를 받았는데 ‘법무부’라는 단어를 보고 너무 깜짝 놀랐어요(웃음)…. 제가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이돌 피해자가 많고 제가 오래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도움이 될 거라는 설명을 듣고 바로 ‘하겠다’고 답했어요. 너무 필요한 일이니까요.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핫펠트

서 검사에 제안받고 놀랐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수락
현재 한국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일정한 법률상담 지원에 그쳐
피해 끝까지 책임지는 체계 필요

- 소속사의 반대나 부정적인 여론이 걱정되지 않았나요.

핫펠트 = 걱정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옳은 일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원회 참여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요. 그리고 욕은 좀 먹으면서 사는 거죠(웃음).

변 = 저는 어떤 욕에도 멘털이 잘 흔들리지 않아요.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다른 분들이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TF와 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변 = 법무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거예요. 법무부가 이런 위원회를 만든 것 자체를 칭찬해줘야 해요. 광야에 있던 자경단을 부르고, 응원하던 나 같은 사람을 불러서 ‘너희가 의견을 주면 우리가 법제화해볼게’라고 한 거예요.

서 = 성범죄 전반에 대한 대응체계를 점검해 종합적인 대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제가 ‘미투’를 한 뒤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변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어요. 위원회에서 대책을 내놓는다고 바로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면 된다는 ‘이정표’를 세우는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2018~2020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한 디지털성범죄 정보 6만8172건 중 삭제 조치에 성공한 정보는 국내에 서버가 있던 148건에 불과했다. TF와 위원회에는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다. ‘디지털성범죄’가 위원회 이름에 명시된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해 사회적 공분을 자아낸 N번방 사건 이후 국회에서 ‘N번방 방지법’을, 법원은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었지만 디지털성범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 검사는 “N번방은 제대로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당연한 결과물”이라며 “이제는 대규모 조직에서 장기전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 대중문화 분야는 성희롱 댓글이나 딥페이크 성착취 등의 범죄가 심각한데 현장에서 어떻게 느끼나요.

핫펠트 = 성적인 악플은 굉장히 많죠. 전에는 기사 댓글만 있었다면 요즘에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플을 다니까 안 볼 수가 없어요. 연예기획사에서도 법적 조치 등의 대응을 하는 추세입니다. 딥페이크도 많은데 주로 해외에서 제작·유포되기 때문에 대응이 쉽지 않아요.

변 = 한국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성폭력 예방교육과 산업안전교육이 필수가 된 지 꽤 됐어요. 별거 아니라고 하기엔 굉장히 많은 걸 바꿔요. 이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대응할지를 고민합니다. 이건 환경의 힘이에요.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뀝니다. 이런 교육이 각 분야에서 필요합니다.

변영주

법무부가 현장 소리 듣겠다는 것
나도 기성세대로서 ‘부채감’
‘정의’는 시스템이 만들어줘야 해
유명한 사건만 세게 처벌 말고
모든 사건에 같은 수준 대응해야

- 디지털성범죄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서 = 여러 법률 개정이 이뤄졌지만 다소 단편적인 내용들이었어요. 특히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선 처벌 조항이나 성착취물 소지죄 신설 정도에 그쳤거든요. 디지털성범죄의 핵심은 빠르게 발전하는 범죄 속도에 신속하게 대응해 수사하고, 영상물을 차단·삭제하는 것입니다. 호주는 한국의 국가정보원 같은 기구에서 사이버 테러에 준해 디지털성범죄를 취급합니다.

변 = 유명한 사건뿐 아니라 모든 사건에 같은 수준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키운 10분의 1은 선생님의 공명정대한 벌이었다고 생각해요.

- 피해자 지원은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핫펠트 = 끝까지 책임지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일정한 법률상담 지원 정도입니다. 이후에는 개인이 다 감당해야 하죠. 해외처럼 성범죄 수익을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서 = 미국은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는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전제해 손해배상액을 산정합니다. 성착취물의 완전한 삭제를 보장할 수 없으니까요. 여러 국가가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한국도 여러 시도를 하다 보면 효과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핫펠트는 성상품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연예계에서, 변 감독은 여성의 자리가 좁은 영화계에서, 서 검사는 남성중심 문화가 지배하는 법조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사회와 갈등하는 과정에서 차별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이들은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변 = 우리는 상업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누군가가 이렇게 비참해지는 꼴은 못 보겠다’ 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러면 잠시 멈춰서죠. ‘노동자가 왜 공장이 아니라 길바닥에 있어야 하나’ ‘N번방 사건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나’와 상업적인 고민을 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존재인가요? 돈도 벌고 싶고, 잘나가고 싶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람 이하로 만드는 일은 두고 볼 수 없는 거죠.

서 = 한번도 스스로 ‘여검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검사인 거죠. 그런데 자꾸 여검사라는 정체성을 씌우려고 하는 것이 괴로웠어요. 나아가 검사라는 직업은 제가 걸치고 있는 옷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서지현은 그와는 별개의 존재죠. 검사가 제 정체성이 될 수는 없어요.

핫펠트 = 누구나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차별을 겪어요.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원래 이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거죠.

- 한국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핫펠트 = 데뷔할 때만 해도 ‘악플도 관심’이라는 분위기였어요. ‘연예인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당연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연예인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순간순간은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면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변 = 제가 30~40대일 때 ‘영페미’로 불리던 과격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성기모형 만들어서 길에서 행진하고(웃음)…. 최근에 <우리는 매일매일>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에서 그 무서운 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봤어요. 내가 알던 40대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40대로 살고 있더라고요. 그러면 세상이 조금 바뀐 게 아닐까요. 저도 ‘기존의 50대가 아니라 조금 다른 50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서 = 변화하는 속도에 절망할 때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투표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때가 겨우 100년 전이야’ 같은 생각을 합니다. 더디지만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맞겠죠. 그래도 그 변화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싶어요. 이 위원회가 작은 역할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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